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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학자·군주는 하늘을 뛰어넘지 못해”

신영복 고전강독 <121> 제10강 묵자(墨子)-11

묵자의 도(道) 역시 근본에 있어서는 관계(關係)입니다. 묵자는 결코 일방적인 사랑이나 희생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맺고 있는 상호관계를 강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고 주장합니다.

겸애와 함께 교리(交利)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관계의 본질을 상생(相生)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나아가서 묵자는 겸애와 교리를 하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묵자의 천지론(天志論)입니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은 묵자의 천(天)은 인격천(人格天)이나 절대적 천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묵자의 천지론(天志論)은 사람들로 하여금 겸애(兼愛)의 도를 실행하게 하기 위한 장치(裝置)라는 것입니다. 묵자에게 있어서 천지(天志)와 명귀(明鬼)는 종교적, 정치적 제재장치(制裁裝置)라는 것입니다.

명귀(明鬼)는 천지(天志)가 올바르게 관철되는가를 감시하고 그에 따라 화복(禍福)을 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묵자의 하느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현세(現世)와 인간세계(人間世界)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묵자의 천지론이 전체 체계에 있어서 그러한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묵자는 바로 이 삼표론에서 천(天)이 단순한 기능적(機能的) 천(天)이 아님을 천명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천(天)은 도(道)와 마찬가지로 진리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겸상애(兼相愛)와 교상리(交相利)가 하늘의 뜻이라는 주장은 그것이 세계의 본질적 구조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묵자는 바로 이러한 천지(天志)가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이외의 어떤 것도 표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묵자의 비명사상(非命思想)입니다. 이 삼표론 역시 비명편(非命篇)에 있는 것이지요.

비명(非命)이란 하늘이 정한 운명과 숙명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화복(禍福)은 인간이 자초하는 것이며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귀가 내리는 것이 아니지요.

묵자는 상(商)나라와 하(夏)나라의 시(詩)를 인용하여 “천명(天命))이란 폭군이 만들어 낸 것이다(命者暴王作之)”라고 하고 있습니다. 폭군이 자의적인 횡포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것이 천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묵자의 천(天)은 인격천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노자의 도(道)와 같은 진리(眞理)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뜻이 상애상리(相愛相利)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우라는 것이 곧 하늘의 뜻이라는 형식으로 그의 사상을 개진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늘의 뜻을 따라 겸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우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모 학자 임금은 법이 될 수 없다.”
(莫若法天以其兼而愛之 人無貧富貴賤 皆天之臣也 是以天欲人相愛相利也. 父母學者君 三者莫可以爲法 : 法儀)

하늘 이외의 존재 즉 부모(父母), 학자(學者), 군주(君主)는 법(法)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부모는 자기 자식을 남의 자식보다 더 사랑하며, 학자는 하느님보다 지혜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자의 지식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죽은 관념에 불과하고 그나마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어서 평등한 사랑을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주(君主)란 인민의 의(義)를 하느님의 뜻과 화동일치(和同一致)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수단일 뿐 그 자신이 가치의 표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묵자의 주장입니다.

여러분은 묵자의 사상체계가 매우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묵자’의 모든 내용은 묵자의 사회적 입장과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묵자의 하느님 사상까지도 묵자의 전체체계의 일환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국초기 사회운동 과정에서 이러한 묵자의 천지론을 종교적이라고 단정한 좌파의 비판은 결과적으로 매우 교조적인 해석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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