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노무현의 13억원과 이회창의 118억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노무현의 13억원과 이회창의 118억원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22> 개혁당 대 보수당으로의 재편 조짐

공교로운 일인지는 모르나 대통령 선거를 50일 앞둔 지난 29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는 각각 후원금과 관련한 행사를 동시에 가졌다.

한나라당은 최근 계속되고 있는 이회창 후보 지지율 1위의 프리미엄을 과시라도 하듯 서울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7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후원회 행사를 가졌다는 것이며, 민주당은 그보다는 좀 초라한 규모지만 온라인으로 모금한 소액 후원금과 희망돼지저금통 등으로 모인 돈의 일차 정산금을 노무현 후보에게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본격적인 대통령선거철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후원회가 자주 열리고 모금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손가락만 빨며 선거운동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목표액인 80억원을 훌쩍 넘어 세자리수(1백17억원)를 모금했다고 하며, 민주당은 1차로 13억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도 돈이다. 돈 없이는 정치 자체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

좀 우스운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전두환 노태우 독재정권시대에는 정권차원에서 마련한 '검은 돈'으로 정치권을 주물렀고,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 등 이른바 3김시대의 구가에는 각기 지역기반에 근거한 은밀한 후원금, 그리고 재벌의 보험성 후원금 등으로 축적한 나름대로의 재력이 바탕이 됐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나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이른바 과거 3김식 모금기반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요, 무슨 독재정권을 배경에 두고 있어 아쉬우면 꺼내쓸 쌈짓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철저하게 국고지원금과 후원회의 모금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국민통합21의 정몽준 의원측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한다).

국고지원금이야 총선 등에서의 득표비율 등 기준에 따라 나라에서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돈이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되는 돈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국민 전체에 대해서 부담을 느껴야겠지만, 우리 정치권이 그렇게 도덕적이지는 않은 편이니, 아마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국고지원금을 사용하리라고 믿는다(이 경우 교섭단체를 아직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통합21이 가장 불리하다. 국고지원을 거의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원금은 좀 다르다. 특정한 당, 특정한 후보를 겨냥해서 들어오는 돈이 바로 후원금이다. 그래서 후원금이 아쉬우면서도 사실 무서운 돈인 것이다.

왜 그런가. 정당이나 정치인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후원금을 받는다는 것은 명백하게 정치적으로 빚을 지는 행위다. 과거 독재정권시대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은밀하게 지원했던 재벌들은 지원에 상응하는 대가를 예외없이 챙겼다. 재벌 입장에서 볼 때는 채권자로서의 권리를 챙긴 것이요, 정치인 입장에서 본다면 정치적 채무를 다른 특혜로 상쇄한 것이라고 하겠다. 바로 이것이 정경유착이었다.

지금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과거의 어두운 전철을 밟을 리는 없다. 그러나 두 당의 모금 방식은 그야말로 두 당이 갖고 있는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 후원회를 한번 보자. 7천여명이 참석했다고는 하지만 집안 식구들 빼면 순수하게 돈내러 온 사람들은 그보다 적을 것이니 한 5천명 된다고 가정해 본다면, 1인당 2백만원은 내야 1백억원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법정 한도 내에서겠지만, 1천만원 이상 후원금을 낸 사람(혹은 법인)들이 상당수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백만원 이상을 선뜻 쾌척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 연봉 1억원 이상인 개인이거나 큰 회사의 중역 내지는 경영자 정도는 될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당을 후원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가진 자, 기득권자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개혁적일 수가 없다. 후원회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보수당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제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빚을 진 이상 정책이나 모든 공약을 내걸 때 이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래야만 한다. 그게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정당활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사람이나 계층의 이익을 반영해내지 못한다면 정당으로서 존립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어떤가. 소액다수의 후원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만원에서 5만원, 많아야 10만원 정도 후원한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이 정도 후원이면 전형적인 월급쟁이 후원규모다. 서민들이 주류라는 얘기다.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가 정치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계층이 어딘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노무현 후보가 내걸 정책이나 공약이 우리 사회의 어떤 계층을 겨냥할 것인지는 후원의 양상만 봐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민주당도 후원회 행사를 할 것이고, 어쩌면 한나라당과 유사할지 모른다. 물론 잘 나가는 한나라당만큼 모금은 못하겠지만, 재벌들도 보험차원에서 후원금을 낼 수도 있다. 사실 이런 보험차원의 후원은 차츰씩 사라져야 한다. 보험차원의 후원이란, 이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집권했을 경우 있을 수 있는 불이익을 막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곧 정치보복이란 말과 동의어다. 따라서 정치보복이 없는 환경이 되면 보험차원의 후원이 필요없게 된다. 그야말로 자신의 이익이나, 지향점을 정치적으로 구현해주는 정당을 후원한다는, 정치후원의 본뜻에 맞는 후원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이번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후원관련 행사는 좁게 보면 특정 정당의 대통령선거 자금을 마련하는 당내 행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후원금의 성격을 분석해 보면 정치사적으로는 이제 우리 정당도 보수당인 한나라당과 개혁당인 민주당으로 재편될 단초를 보여준 행사라고 평가한다 해도 크게 틀림은 없을 것 같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