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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가에서의 판단의 세가지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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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가에서의 판단의 세가지 표준

신영복 고전강독 <120> 제10강 묵자(墨子)-10

묵가를 설명하면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묵자사상의 철학적 방법론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묵가의 강력한 조직(組織)과 실천(實踐)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묵가의 철학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삼표(三表)의 원문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삼표란 세 가지 표준(標準)이란 의미입니다. 판단에는 표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준이 없는 것은 마치 녹로(轆轤)위에서 동서(東西)를 헤아리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지요.

어떤 것이 이로운 것인지 어떤 것이 해로운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표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표론(三表論)은 이를테면 인식(認識)과 판단(判斷)의 준거(準據)에 관한 논의입니다.

묵가가 제자백가 중에서 현학(顯學)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논리적 정합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묵자는 윤리적 차원의 주장에 그치지 않고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적 구조, 또는 철학적 사유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잠시라도 언급이 필요한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이러한 철학적 사유를 내장하고 있는 것과 함께, 밖으로는 종교적인 가치를 천명해두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묵자의 천지론(天志論)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합니다.

묵자는 우리의 사유는 사실판단(知)의 기초 위에서 가치판단(意)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실판단의 기초가 되는 지각과 경험이 없으면 그 주장이 망상에 빠지게 되고, 또 가치판단이 없는 지각과 경험만으로는 사실을 일컬을 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감각을 기초로 하는 감성적 인식이 없으면 이성적 인식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성적 인식(意)은 감성적 인식(知)에 의존(依存)하고 감성적 인식은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發展)한다는 논리입니다. 지(知)와 의(意)가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항상 판단의 표준을 세우지 않으면 가치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묵자의 주장이며 삼표가 바로 판단의 표준입니다.


何謂三表...有本之者 有原之者 有用之者 於何本之
上本於古者聖王之事 於何原之 下原察 百姓耳目之實 於何用之
發以爲刑政 觀其中國家百姓人民之利 此所謂言有三表也(非命 上)

表(표) : 표준(標準). 本(본) : 역사적 검증.
原(원) : 사실과 현실. 用(용) : 실천과 실용.

“무엇을 삼표라고 하는가. --- 본(本), 원(原), 용(用)이 그것이다. 어디에다 본(本)을 둘 것인가? 위로 옛 성왕의 일에 본을 두어야 한다. 어디에다 원(原)을 둘 것인가? 아래로 백성들의 이목이라는 현실에 원을 두어야 한다. 어디에다 용(用)을 둘 것인가? 나라의 법과 행정을 시행(發)하여 그것이 국가, 백성, 인민의 이익에 합치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소위 판단(言)의 세 가지 표준이라고 하는 것이다.”

묵자의 삼표는 첫째는 역사적 경험이며 둘째는 현실성이며, 셋째는 민주성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의 표준인 용(用) 즉 국가백성인민의 이익에 대하여 묵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부(富) 상(象) 안(安) 치(治)가 그것입니다.

부(富)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만 묵자의 경우 풍요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상(象)은 인구를 늘리는 것입니다. 안(安)은 삶의 안정성입니다. 그리고 치(治)는 평화입니다.

어느 것이나 묵자사상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가 주장하고 있는 겸애(兼愛) 비공(非攻) 절용(節用) 사과(辭過)의 내용과 같습니다. 한 마디로 묵자에게 있어서 판단의 표준은 묵자의 사회정치적 입장(立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묵자의 입장은 기층민중의 이익입니다.

그리고 기층민중의 이익은 전쟁을 반대하고 서로 사랑하고 나누는 것(交利)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묵자에게 있어서 그의 사상의 핵심은 겸애와 교리이며 이 겸애와 교리가 당대의 사회적 조건에서 반전(反戰) 평화(平和) 절용(節用)이라는 실천적 과제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제자백가 중 어떠한 학파의 사상보다 관계론(關係論)에 철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전(攻戰)은 별애(別愛)와 마찬가지로 존재론적 패러다임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배타적으로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전쟁과 병합의 밑바탕에는 바로 이 존재론적 원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묵자는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존재론적 패러다임이 불식되지 않는 한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한 것이지요. 자기의 국(國)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가(家)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몸(身)만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회는 무도(無道)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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