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래 30년간 중국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왔다. 그러다 이 달 들어 비로소 중국땅을 밟아보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을 절감했다.
중국이 덩치 큰 나라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속에 들어가 보고는 나라의 ‘덩치’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차를 밤새워 타며 먼 곳을 구석구석 다녀본 것도 아니다. 북경에 며칠 머무르고 여행이라면 3백 킬로미터쯤 떨어진 산해관쪽을 둘러본 정도다. 그러나 바닷물 한 방울을 맛보고 바닷물 맛을 아는 격이랄까, 북경의 골목들을 산책하고 시장바닥을 둘러보고 이런저런 식당에서 음식 맛을 보며 은연중 느끼게 되는 것이 이 나라의 덩치다.
유럽은 구석구석 다녀본 셈이다. 서쪽의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동쪽의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까지. 유럽을 다니면서 자주 중국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크기도 하고 조금 작기도 한 여러 나라들을 모두 합친 유럽 전체와 맞먹는 것이 중국의 덩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중국에서 며칠 지내보며 절감한 것은 유럽의 크기와 중국의 덩치는 함께 비교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러 나라를 합친 유럽의 크기라는 것은 산술적 합계일 뿐이다. 비슷한 크기의 영토와 인구지만 하나의 역사배경을 가지고 하나의 언어를 쓰며 하나의 정부에 통제받는 하나의 나라를 이룰 때 그 크기는 각 지방의 산술적 합계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중국의 물가구조에서 이 특이한 덩치의 존재를 느낀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엄청나게 싸다. 싼 물가수준은 싼 임금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급기술과 고급재료가 필요한 고급상품일수록 국제수준과 가격의 차이가 적다. 자동차는 우리나라보다 더 비싸다. 재래식 주거는 매우 싸지만 고급 아파트는 우리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
대다수 국민은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물가가 싸기 때문에 먹고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화장실조차 없는 집에 살지만 골목에 몇십 미터 간격으로 공중화장실이 있다. 볼 일 보러 집밖에 나가야 하고, 고급 전자제품을 집집마다 갖추지 못하고 살 뿐이다.
마이카가 없는 대신 중국 서민들에게는 자전거가 보물이다. 그리고 이 보물은 길에서도 보물 대접을 받는다. 모든 길 설계에는 자전거가 배려되고, 교통단속도 자전거길 침범에 엄격하다. 북경에서 운전을 시작한 한 한국인이 몇 달 동안 적발을 당한 것은 우회전할 때뿐이었다고 한다. 넓은 길의 맨 바깥 차선이 보통 자전거 차선이기 때문에 우회전을 하더라도 회전지점까지 그 안쪽 차선으로 가야 하는 것이 외국인에게는 익숙치 않은 것이다.
기차로 같은 거리를 여행하는 데 싸구려칸과 고급침대칸 운임에는 열 배의 차이가 있다. 모든 분야에서 사치와 필수 사이에 비슷한 수준의 격차가 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 중산층 수준의 안락한 생활을 하려면 절대다수 국민보다 열 배 이상의 비용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중국의 덩치를 어떤 식으로 느끼는가. 최저생활 개념에 가까우면서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안정된 생활조건을 누리는 10억 안팎의 인구가 하나의 정부를 쳐다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 물가구조의 배경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임금과 물가의 국제수준과의 격차를 매우 천천히 줄여나가고 있고, 대다수 국민은 이 정책에 순응하고 있다. 그 동안 중국의 많은 수출품이 국제시장에서 낮은 임금수준 덕분에 압도적인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10여 년 전 공산권 붕괴 후 중국이 본격적인 개방의 길로 접어들 때 외부의 중국 전문가 사이에는 중국의 분열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나도 이것을 솔깃하게 들었다. 공산혁명의 신화가 색이 바래 문화대혁명 같은 폭력으로 버텨 오던 나라가 개방의 길에 들어설 경우 각 지방 사이의, 그리고 사회계층 사이의 경제적 격차를 견뎌낼 힘이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저력을 서서히 드러내면서 21세기 슈퍼파워의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각 지방 사이의 개발편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지만 효과적인 보완관계를 중심으로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극심한 빈부격차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빈부격차는 사회불안의 씨앗이면서 또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댐의 낙차가 클 때 에너지를 많이 얻을 수 있지만 위험요인이 커지는 것과 같다.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등 공권력으로 이 낙차를 크게 유지함으로써 대외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우리도 개발독재 과정에서 겪은 일이다.
생활수준 향상의 열망을 가진 10억의 인구가 상당히 안정된 정책노선에 따라 세계를 상대로 그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역천자(逆天者)는 망하고 순천자(順天者)는 흥하리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기세다. 무역장벽은 갈수록 낮아지는데, 농산물이건 공산품이건 중국제품과의 정면대결은 밝은 전망을 가질 수 없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그리 크지 않은 돈으로 안락한 관광과 풍성한 쇼핑을 즐기며 중국의 임금-물가 수준을 깔보는 마음을 품는다. 그런데 바로 이 낮은 임금-물가 수준에 근거를 둔 막강한 경쟁력이 세계시장을 뒤덮으려 하고 있다. 비슷한 분야에 생산력을 가진 데다 바로 이웃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이 이 경쟁력의 첫 번째 표적이 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섬뜩한 일이다.
중국이 슈퍼파워가 되더라도 미국처럼 국민의 소비수준을 높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다섯 배 인구가 미국처럼 무절제한 소비의 길로 접어든다면 지구가 오래 견뎌내지를 못할 테니까. 그 대신 소비수준 높은 국가들이 버텨내지 못하도록 경쟁력의 압박을 통해 ‘소비수준의 하향평준화’를 이끌어내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든다. 하늘을 따르는 길과 거스르는 길이 어떤 방향인지, 조금 짐작이 갈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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