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달초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차관보 방북 당시 핵무기 개발을 추진중이라는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져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93~94년 한반도를 전쟁직전의 위기로까지 몰고갔던 '북핵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16일 제임스 켈리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이달초 특사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측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계속 추진하고 있으며 앞으로 핵비확산협정(NPT)에도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측이 처음에는 핵무기 개발계획을 부인하다 켈리 특사가 북한의 제네바합의 위반 증거를 제시하자 핵개발 계획을 시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핵개발계획을 시인함으로써 제네바합의는 사실상 파기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북한이 또다시 '핵'을 협상카드로 내세워 93~94년도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벼랑끝 협상전술을 구사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이태식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정부는 미 특사 방북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밝혔다는 사실을 통고받았다"며 "우리는 그 어떤 북한의 핵개발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 차관보는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이 제네바에서 합의한 비핵확산협정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며 "북핵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하며, 한미일 공조를 통해 풀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를 위해 현재 진행중인 남북대화협력을 통해 북측에도 이같은 입장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CNN과 MSNBC 등 주요 방송과 통신, 일본 언론들은 북한의 외신들은 북핵 소식을 긴급뉴스로 다루고 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17일 "켈리 미국무차관보가 이달초 북한을 방문했을 때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포함하는 핵개발을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미국에 인정했다는 사실이 16일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아미티지 미국무부장관도 16일 방미중인 하시모토 류타로 전총리와의 회담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아미티지는 하시모토에게 "이는 명백한 합의 위반으로 미국은 중대한 우려를 하고 있다. 관련 각국에 국무부 볼튼 차관과 켈리 차관보를 파견해 협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최초의 북미대화를 가졌던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오는 20일 한국과 일본을 방문,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전달해 재협의할 계획이다.
미국의 AP통신은 "북한 관리가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와의 핵확산방지협약 파기를 의미하는 비밀 핵무기 계획을 갖고 있다. 더 이상 미국과의 반핵 협약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는 북한이 94년 10월17일 제네바에서 미국과 체결한 기본합의 파기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미 행정부는 의회와 동맹국 등과 함께 이번 문제를 협의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이 내려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한 고위관리는 "핵문제를 갖고 북한과 협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앞으로 북-미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 사실을 미국에 통보한 것과 관련, 북한이 또다시 '핵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는 현재 미국 부시정부가 이라크전 및 테러와의 전쟁을 병행하고 있는 까닭에 동시에 북한과의 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고도의 외교전술이 아니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카드를 꺼내듦에 따라 현재 진행중인 북-일 수교협상 및 남-북 교류에 치명적 장애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함께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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