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가 반전평화론을 전개하면서 부딪친 가장 힘든 장애는 당시 만연하고 있던 사회적 관념이었습니다. 부국강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 전쟁이라는 패권시대의 관념이 최대의 장애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전쟁이란 국위를 선양하고 백성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전쟁이란 비록 의(義)로운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이(利)로운 것이라는 지배계층의 사고가 피지배계층의 의식에까지 깊숙이 침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전쟁이 상시화되어 있는 사회의 전쟁 불감증(不感症)까지 감안한다면 묵자의 고충이 어떠하였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묵자의 고민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소염론(所染論)입니다.
子墨子見染絲者 而歎曰 染於蒼則蒼 染於黃則黃 所入者變 其色亦變
五入必而已則 其五色矣 故染不可不愼也 非獨染絲然也 國亦有染.
천자문에 '묵비사염(墨悲絲染)'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묵자가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탄식하였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구절이 원전입니다. 바로 묵자의 소염론(所染論)입니다.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묵자가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탄식하여 말하였다.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랗게 되고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랗게 된다. 넣는 물감이 변하면 그 색도 변한다. 다섯 가지 물감을 넣으면 다섯 가지 색깔이 된다. 그러므로 물드는 것은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단 실이 물드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도 물드는 것이다."
"나라도 물드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 묵자가 가장 절실하게 고민했던 문제였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인간의 행동은 욕구로부터 나오며(窮知而顯於欲也) 욕구는 후천적으로 물들여지는 것(所染)이라고 주장합니다. 백지와 같은 마음이 '마땅하게 물들여져야'(染當)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물든다는 것은 곧 묵자의 사회문화론이 됩니다. 물건을 많이 소비하는 것을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전쟁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나라가 그렇게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개술국에서는 맏아들을 낳으면 잡아먹으면서 태어날 동생들에게 좋은 일이라 하고, 할아버지가 죽으면 할머니를 져다 버리면서 귀신의 아내와 함께 살 수 없다고 한다는 것이지요. 담인국에서는 부모가 죽으면 시체의 살을 발라내고 뼈만 묻어야 효자라 한다는 것을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소염론은 묵자의 학습론과 문화론의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에 묵자가 나타난다면 나는 묵자가 여전히 탄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크게 탄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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