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萬乘之國虛數於千 不勝而入 廣衍數於萬 不勝而辟 然則土地者所有餘也 王民者所不足也 今盡王民之死 嚴上下之患 以爭虛城 則是棄所不足 而重所有餘也 爲政若此 非國之務者也(非攻)
乘(승) : 戰車를 의미한다. 동시에 나라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쓰인다.'손자병법' 작전편에 의하면 1승은 말4필, 射手1, 槍兵1, 馬夫1 그리고 보병으로 구성된다. 보병의 수는 춘추시대에는 10명, 전국시대에는 1백명이 전차 1대에 배치된다.
虛(허) : 虛城. 비어 있는 성.
辟(벽) : 다스리다.
棄所不足(기소부족) : 부족한 것을 버리다.
國之務者(국지무자): 국가가 할 일.
"이제 만승의 나라가 수천의 빈 성을 빼앗았다면 그 수천 개의 성 모두에 입성하기 어려울 것이며, 수 만리에 달하는 넓은 땅을 빼앗았다면 그 넓은 땅을 모두 다스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땅은 남아돌고 백성은 부족한 것이다. 이제 백성들의 생명을 바치고, 모든 사람들을 도탄에 빠트리면서 하는 일이 고작 빈 성을 뺏는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부족한 것을 버리고 남아도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정치가 이러하다면 그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묵자의 반전론은 매우 정연한 논리를 가지고 전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단한 설득력을 갖습니다. 묵자는 공전(攻戰)을 예찬하는 자를 반박합니다. 공전이 비록 불의(不義)하지만 이익(利益)이 된다는 논리에 대하여도 반박합니다.
제(齊)나라와 진(晋)나라가 처음에는 작은 제후국이었으나 전쟁을 통하여 영토가 확장되고 백성이 많은 강대국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공전을 예찬하는 논리에 대하여 묵자는 단호하게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논박합니다.
만(萬)명에게 약을 써서 3, 4명만 효험을 보았다면 그는 양의(良醫)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약이 아니다. 그러한 약을 부모님께 드리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몇 개의 전승국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수많은 패전국가의 비극과 파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쟁은 인명과 재산의 엄청난 파괴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묵자는 전쟁의 파괴적 측면에 대하여 매우 자세하게 예시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수년, 빨라야 수개월이 걸린다. 임금은 나라 일을 돌볼 수 없고 관리는 자기의 소임을 다할 수 없다. 겨울과 여름에는 군사를 일으킬 수 없고 꼭 농사철인 봄과 가을에 벌인다. 농부들은 씨뿌리고 거둘 겨를이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국가는 백성을 잃고 백성은 할 일을 잃는 것이다. 화살, 깃발, 장막, 수레, 창칼이 부서지고, 소와 말이 죽으며, 진격시와 퇴각시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게 된다. 죽은 귀신들은 가족까지 잃게 되고 죽어서도 제사를 받을 수 없어 원귀가 되어 온 산천을 떠돈다. 전쟁에 드는 비용을 치국(治國)에 사용한다면 그 공(功)은 몇 배가 될 것이다.
묵자에게 있어서 전쟁은 국가가 근본을 잃게 되는 것이며 백성들이 그 생업을 바꾸어야 하는 일입니다.(國家失本 而百姓易務也) 천하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일입니다.(天下之害厚矣)
전쟁의 폐단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이나 대신들이 그런 짓을 즐겨 행한다면 이것은 천하의 만백성을 해치고 죽이는 것을 즐기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는 것이 묵자의 비공의 논리입니다. (王公大人樂而行之 則此樂賊滅天下之萬民也)
그러나 우리들의 전쟁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전쟁관에 앞서서 소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부터 생각해보야야 합니다. '묵자'의 반전 평화론은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물들어있는가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됩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이 곧 제(齊)나라와 진(秦)나라가 추구했던 부국강병의 과정을 반복한 것이 사실이지요.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파괴와 처참한 죽음이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를 살리는 자본축적의 돌파구가 되어 왔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29년의 세계공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케인즈적 처방의 덕분이 아니라 2차대전이라는 전시경제(戰時經濟)의 덕분이었다는 것이지요. 2차대전의 엄청난 파괴가 최대의 은인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입니다. 마치 소비가 미덕이듯이 전쟁이 미덕이 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체제입니다.
자본주의 발전과정은 제국주의적 팽창과정이었으며, 체제적 모순을 해소하는 방식이 냉전(冷戰)이든 열전(熱戰)이든 항상 전쟁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10년 주기로 경제공황이 반복되었으며 대규모 전쟁 역시 10년을 주기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전쟁사(戰爭史)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지요.
묵자의 비공편이 갖는 의미는 전쟁에 관한 허위의식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허위의식을 다시 한 번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그 현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묵자는 비공편의 결론으로서 대국이 소국을 공격하면 힘을 합하여 소국을 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제후국들이 서로 교상리(交相利)의 평화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평화구조를 만들어내야만 전쟁의 파괴를 막고, 신의와 명성을 얻고, 천하에 끼치는 엄청난 이익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전쟁발발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곧 국가간의 교상리의 구조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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