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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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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55>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언제 시작될까?

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것인지 그 의도는 사실 애매하다. 선제공격 논리는 미국과 같은 대국의 자세는 아니니, 사실 말이 안 되고, 사담 후세인이 9.11 테러의 배후라는 믿음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은데, 어쩌면 그런 것을 도외시하더라도 후세인이 미국의 대 아랍 전략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것이 본질적인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저번의 걸프 전쟁이 미완(未完)의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저번 걸프 전쟁에서 미국의 전략적 목표의 하나가 후세인의 제거였는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걸프전과 이번 이라크 전쟁은 일련의 시리즈로 보는 것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저번 걸프전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걸프전의 발발은 미국의 외교적 실수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원래 미국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했다. 이란에서 참담한 외교적 실패를 겪은 미국은 아랍권의 맹주 자리를 놓고 벌어진 전쟁에서 이라크를 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정보 인력들도 훈련시켜주고 정보 자체도 공유할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에 친미 성향의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라크-이란 전에서 1백20억 달러의 재정지원을 이라크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그런 지원 속에 성장한 후세인이 나중에 미국과 이렇게 되리라고는 CIA를 비롯하여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이란에서 실패한 미국은 후세인과 든든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중 1990년 여름,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원유생산량 증가와 그로 인한 유가 하락 문제로 불화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때 후세인과 쿠웨이트간에는 일종의 기 싸움이 전개되었다. 아랍권의 맹주임을 자처하는 후세인으로서는 체면이 중요했는데, 끝내 쿠웨이트가 고분고분하지 않고 당초의 주장을 계속하자 화가 난 것이었다. 그러자 후세인은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 글래스피를 통해 미국의 의향을 물어보게 된다.

그때 미국 대사는 실수를 했던 것 같다. “미국은 당신네와 쿠웨이트간의 국경 분쟁과 같은 아랍 나라들간의 분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라고 이야기했다는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쿠웨이트를 침공해도 미국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청신호로 간주한 후세인은 바로 다음 달 8월 2일에 신속하게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점령해 버렸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이 역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이쯤에서 후세인의 사주를 알아보자.

년 丁丑
월 甲辰
일 乙酉
시 --

매 9세부터 맞이하는 대운은

09 癸卯
19 壬寅
29 辛丑
39 庚子
49 己亥
59 戊戌
69 丁酉

생시를 모르니 언제나 정확한 판단은 할 수 없지만, 년간에 丁火가 있어 머리가 비상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만 65세인 후세인은 1957년에 단일한 아랍사회주의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바트당(黨)에 입당하여, 1959년 대통령 암살음모사건으로 체포되는 등 투쟁경력을 쌓아오다가 1969년 쿠데타에 참가하여 혁명평의회 부의장이 되었고, 1979년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69년은 己酉년이고, 79년은 己未년이다. 이처럼 후세인은 재운(財運)에 성취가 큰 인물이며, 특히 39세 이후부터는 庚子운이라 관운이 들어오니 최고의 권력을 잡았으며,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이란과의 9년간에 걸친 전쟁을 개시하면서, 아랍권의 맹주로 부상했다.

그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1990년 庚午년 癸未월 己亥일이니 욕심이 동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다음 해 辛未년 庚寅월에 가서 군대가 모두 무너지는 결과를 맞이했는데, 을목인 후세인에게 경금과 신금이 함께 들어와 짓눌러대니 한마디로 고생수였다.

만일 그때 조지 부시 대통령이 군대를 몰아 이라크 영내로 깊숙하게 들어갔더라면 끝났을 것을 월남전에 경을 쳤던 미국인지라 조심성이 발동한 나머지 끝내지 못한 미완의 전쟁이 된 것이다.

그러면 전쟁의 경과를 살펴보자.

미국은 월남전에서의 패배 이후 처음 맞이하는 전면전이라, 이번에는 지나치게 철저한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더 이상 UN군은 불가하니, 다국적 군대라는 명칭하에 전 우방국들을 동원한 미국이었지만, 내심 자신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후세인의 전력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고, 시체 운반용 부대만도 초기 발주량이 무려 1만 5천개나 되었으니 속으로 얼마나 초조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리하여 엄청난 병력을 걸프 일대에 집결시킨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다음 해인 1991년 1월 15일까지 이라크군을 철수시키라는 통고를 했고, 이 기간이 지나자 1월 17일에 공중 공격에 들어갔다. 재미난 것은 1월 15일은 乙酉일인데, 미국은 언제나 을이 붙는 날이나 월, 그리고 해에 힘을 낸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중 공격이었기에 이틀이 지난 丁亥일에 공격을 개시했다. 정화는 일반적으로 불을 의미하지만, 하늘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중 공격에 대항한 이라크 공군기는 거의 없었으며, 방공망도 무력했다. 그리고 이 공격은 역사상 최초로 ‘TV 전쟁’이 되었다. CNN이 들어가서 공습 장면을 멋지게 생중계했던 것이다.

전 세계사람들은 스마트 폭탄이 지상 목표물에 정확하게 명중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미국의 엄청난 첨단 능력에 경의를 표했지만, 사실 무수한 실패 사례들은 공개되지 않고 숨겨졌다. 그리고 공중 전역에서 2 가지 핵심 목표인 후세인의 제거와 스커드 미사일의 파괴는 완전히 실패했다. CNN 기자들은 후세인과 계속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지만, 미국 군사정보팀은 별별 수단을 다 썼어도 한번도 그의 위치를 포착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라크 군이 철수를 하지 않자 드디어 미국은 2월 24일, 辛未년 庚寅월 乙丑일에 지상 공격을 개시했다. 앞서처럼 乙木이 들어오는 날이었고, 지상 공격이기에 바로 공격을 개시했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막의 폭풍’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은 내심 떨면서 진격해 들어갔는데, 이라크군의 저항은 미미했고, 막강한 것으로 알려졌던 공화국수비대 역시 항복하려는 열망이 전투 의지보다도 더 강해 보였다.

이라크의 병력도 60만으로 평가했는데 알고 보니 20만 정도였고, 투지도 없는 수준 이하의 부대였다. 1백시간 여의 지상 공격에서 이라크군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미국의 기갑부대는 준비한 탄약의 2%도 채 사용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를 두고 사전 공중 공격이 철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라크 군의 전력이나 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 더 큰 요인이었다.

미국의 사상자 수는 사망 3백90 명과 부상 4백58명이었으며, 사망자중 교전으로 인한 사망은 불과 1백48명이었다. 이라크 군의 경우, 15만명이 사망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8천-1만5천명 정도였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엄청난 준비 끝에 월남전의 악몽으로 내심 떨면서 시작한 전쟁이 사막에서의 화려한 불꽃놀이로 끝난 셈이다. 월남은 너무 끈질겼고, 이라크는 너무 허무맹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걸프 전쟁에서 미국은 당초의 의도를 관철하는 데 실패했다. 가장 큰 목표였던 후세인 제거에 실패한 것이다. 세계 각국은 스마트 폭탄이 명중하는 장면, 바다의 전함에서 크루즈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들을 미디어를 통해 보면서 미국의 힘과 첨단 전쟁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지만, 실은 빛 좋은 개살구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걸프전은 미완의 전쟁으로 남았다. 그것을 이번에야말로 진짜 끝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은 저번 걸프전에서 수십만 군대를 동원했던 것이 지나친 준비였다는 평가 때문에 이번에는 불과 10만 정도면 충분하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이 문제를 놓고 미 군부 내에서는 격렬한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걸프전쟁은 1990년 庚午년에 시작해서 辛未년 2월에 끝났는데, 금년 2002년 壬午년은 그로부터 정확하게 12년의 한 순환 주기가 지난 시점이다. 음양 오행으로 볼 때, 미국의 공격 시점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乙木인 후세인의 투지가 약해지고 운기가 비교적 좋지 못한 금년 11-12월, 즉 辛亥, 壬子월에 공격을 개시하는 것이다. 이 시기는 특히 일간이 辛金인 현 부시 대통령이 용기를 내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기의 공격은 생각보다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시점은 앞서도 얘기했듯이 미국이 힘을 내는 乙木이 들어오는 시점이 되는데, 내년 3월 乙卯월이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이 시기가 정답이다. 내년 3월에 전쟁을 개시하면, 후세인을 제거하고 확실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내년 癸未년은 이라크에게 대단히 어려운 한 해가 된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미국은 전쟁에서는 승리하겠지만, 궁극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은 전쟁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예방전쟁이나 선제공격이라는 개념은 근대사가 성립된 이래 용납되지 않는 명분인데, 초강대국인 미국이 이런 식으로 나간다는 것은 결국 무력으로 세계를 휘두르겠다는 것이며, 이로서 세계의 안정은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이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미국의 손에 의해 자진 철회되고, 푹누스 아메리카나(Pugnus Americana: Pugnus는 fist, 즉 주먹이라는 뜻)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또 전쟁의 결과, 미국의 의도대로 친미 정권-미국측 표현으로는 민주 정권-을 세움으로써, 아랍권의 저항을 완전 진압하고 석유 자원의 안정적 확보라는 목표 역시 기대보다 훨씬 지난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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