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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혼란의 원인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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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혼란의 원인은 어디서 오는가

신영복 고전강독 <114> 제10강 묵자(墨子)-4

3) '묵자' 예제(例題)

聖人以天下爲事者 必知亂之所自起 焉能治之 不知亂之所自起 則不能治. 譬之 醫之攻人之疾者然 必知疾之所自起 焉能攻誌 不知疾之所自起 則不能攻 治亂者 何獨不然(兼愛)

天下爲事者(천하위사자) : 천하의 일을 도모하는 사람.
亂之所自起(난지소자기) : 혼란의 근본 원인.
焉(언) : 乃와 같은 뜻.
攻(공) : 이 경우는 의사의 처방과 치료.

"천하를 다스리는 성인은 반드시 혼란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아야 다스릴 수 있다. 혼란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면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그 병의 원인을 알아야 병을 고칠 수 있으며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 고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의 혼란을 다스리는 것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묵자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겸애편(兼愛篇) 상(上)의 첫 구절입니다.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매우 논리 정연하게 전개해 갑니다. 비유도 적절합니다. 문장이 반복되기 때문에 핵심적인 구절만을 뽑아서 소개하겠습니다. 묵자는 혼란의 궁극적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제시합니다.

天下之亂物 皆起不相愛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군신(君臣) 부자(父子) 형제(兄弟)간에도 자기를 앞세우고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묵자는 천하의 이로움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로움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인인(仁人)의 도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천하의 해로움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국(國)과 국(國)이 서로 공격하고, 가(家)와 가(家)가 서로 찬탈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기의 국(國), 자기의 가(家), 그리고 자기(自己)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본문을 소개해둡니다.

子墨子曰 仁人之所以爲事者 必興天下之利 除去天下之害 以此爲事者也 然則天下之利何也 天下之害何也 子墨子言曰 今若國之與國之相攻 家之與家之相纂 人之與人之相賊 君臣不惠忠 父子不慈孝 兄弟不和調 則此天下之害也

묵자는 천하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어떠한 사태로 전락하는가를 매우 설득력 있게 전개합니다. 소위 묵자가 규정하는 해지대자(害之大者) 즉 가장 우려할만한 사태입니다. 본문을 소개하겠습니다.

天下之人 皆不相愛 强必執弱 富必侮貧 貴必傲賤 詐必欺愚
凡天下禍纂怨恨 其所以起者 以不相愛生也

"천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강자는 반드시 약자를 억누르고, 부자는 반드시 가난한 사람을 능멸하고, 귀한 사람은 반드시 천한 사람에게 오만하며, 간사한 자들은 반드시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게 될 것이다. 이처럼 천하의 화와 찬탈과 원한이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묵자는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이롭게 해주도록 하는 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묵자의 사상인 겸애(兼愛)와 교리(交利)가 제시됩니다. 이 부분이 묵자의 겸애사상과 교리상의 원전이기 때문에 원문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겸상애와 교리지법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묵자가 말하기를 그것은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가(家) 보기를 자기 가(家)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보기를 자기 보듯이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以兼相愛 交相利之法 易之 然則兼相愛 交相利之法 將奈何哉
子墨子言 視人之國若視其國 視人之家若視其家 視人之身若視其身

겸애(兼愛)는 별애(別愛)의 반대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겸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평등주의, 박애주의입니다. 묵자는 세상의 혼란은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별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나아가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상리(相利)의 관계를 만들어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리의 관계는 개인의 태도나 개인의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구조와 제도의 문제임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도적 법제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에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 대하여는 특별한 언급이 없습니다. 애정(愛情)과 연대(連帶)라는 원칙적 주장에 머무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若使天下 兼相愛 愛人若愛其身 惡施不孝

"만약 천하로 하여금 서로 겸애하게 하여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한다면' 어찌 불효가 있을 수 있겠는가?"

故天下兼相愛則治 相惡則亂 故子墨子曰 不可以不勸愛人者此也

"그러므로 천하가 서로 겸애하면 평화롭고 서로 증오하면 혼란해지는 것이다. 묵자가 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까닭이 이와 같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 원문에서 매우 낯익은 구절을 발견할 것입니다. '愛人若愛其身'이 그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視人之身 若視其身'이란 구절도 같은 구조입니다. 성경구절과 너무 일치하고 있음에 놀라울 뿐입니다.

비단 이 원문구절뿐만 아니라 묵자의 하느님 사상(天志)은 기독교의 사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사랑이듯이 묵자의 하느님 역시 겸애이기 때문이지요. 묵자가 중국에서 자취를 감춘 때가 BC.100년경이었기 때문에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 찾아온 동방박사가 망명(亡命) 묵가(墨家)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다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정보과학관 휴게실에 '兼治別亂'이란 액자(額子)가 걸려 있는 것 알고 있습니까? 내가 쓴 글씨입니다. 겸애하면 평화롭고(治) 차별하면 어지러워진다는 뜻이며 물론 묵자의 글에서 성구(成句)한 것입니다.

묵자의 겸(兼)은 유가의 별(別)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 별이야 말로 공동체적 구조를 파괴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심각한 해악(害惡)이라는 것이지요. 나와 남의 차별에서 시작하여 계급과 계급, 지역과 지역, 집단과 집단간의 차별로 확대되는 것이지요. 가(家)와 가(家), 국(國)과 국(國)의 쟁투가 그것입니다.

묵자는 해지대자(害之大者) 즉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장 큰 해악은 바로 서로 차별하는 것(交別者)이라고 주장합니다.

"큰 나라가 약소국을 공격하고, 큰 家가 작은 家를 어지럽히고, 강자가 약자를 겁탈하고, 다수가 소수를 힘으로 억압하고, 간사한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천한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대하는 것 이것이 천하의 해로움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의 세계질서와 우리의 사회적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大國之攻小國 大家之亂小家 强之劫弱 衆之暴寡
詐之謀愚 貴之傲賤 此天下之害也.(兼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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