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 해냈다, 그리고 또 꼭 해낼 거다. 통쾌한 일이다. 얼마나 노심초사 했던가? 오늘은 서울시청, 내일은 여의도 그리고 그 다음은 청와대. 목표가 분명하고 의지도 단단해졌으며, 힘도 세졌다. 연합군의 위력도 보였고, 민심이 무얼 원하는지도 명쾌해지지 않았는가?
1979년 10월 26일이 유신체제를 막 내리게 한 날이었다면, 2011년 10월 26일은 지난 30년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이 땅을 지배해온 그 후예 세력들의 정치적 미래가 더는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한 날이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따라서 "혁명투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특권을 누리며 반역사적 행위를 해왔던 세력에 대한 심판,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선택했다는 것이 이번 선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이 막중한 작업의 선두에는 바로 그 암울했던 시대의 폭력에 맞서 싸워온 박원순이 있다는 것은 역사의 사필귀정이다.
10.26 선거의 세계사적 의미와 촛불세대의 진화
뿐만 아니라 서울이라는 대한민국 정치수도의 중심이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는 근거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다만 우리의 현실에만 그치는 일이 아니다. 세계사적 사건의 한 맥이다. 서울의 정치는 바야흐로 세계의 역동적인 흐름과 한 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번 선거 결과는 90세가 넘는 노익장 레지스탕스 출신의 스테판 에젤이 외친 "분노하라"가 유럽 청년들을 뒤흔든 이래, 미국 뉴욕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에 이르는 세계사적 변화와 그대로 일치하는 사건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모두의 삶을 힘겹게 만들어 온 이명박 정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있었으며, 이걸 뒤집고 역사의 심장부를 정렴할 의지가 타올랐다. 이는 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변혁의 힘이 이 땅에도 여지없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웠다. 후퇴할 수 없는 운동의 탄생이다.
"분노"와 "점령"이라는 두 단어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 거기에는 특권과 독점체제를 누리던 세력이 빼앗아간 그 모든 우리의 권리를 도로 찾아오는 대중적 의지가 압축되어 있지 않은가? 이는 오늘날 거대 자본이 거의 모든 것의 상전노릇을 하면서 소수의 특권세력을 옹호하면서 다수의 민중들의 삶을 파괴해온 상황에 대한 일격이다.
이는 새로운 시민의식의 역사적 형성이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달리 말해, 99퍼센트를 소외시키고 짓밟아온 1퍼센트에 대한 격분이자, 99퍼센트가 역사를 주도하는 절대다수임을 확인시키는 민주주의 혁명이다. 지난 2008년 촛불시위와 이를 주도한 세대의 진화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이 이를 진압하고 이겼다고 여겼던 모양인데, 철저한 오판이었다.
▲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프레시안(최형락) |
통합의 새로운 틀 짜기
이제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총선과 대선 국면으로 곧장 들어가게 되었다. 시민운동을 포함한 야권의 통합정치는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음이 확인되었고, 이토록 어렵사리 만들어진 정치적 공간을 최대한 살려나가는 노력이 절실해졌다. 여기서 수를 잘못 두면 서울시장 선거의 승리는 단일성 사건으로 머물게 된다.
박원순, 안철수의 등장은 기존의 정당체제에 대한 실망과 혐오, 그리고 반발의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정당정치의 종식을 대중들이 바라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번 선거에 기존 정치세력이 하나로 결합했다는 사실은, 정당체제의 존재양식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변화의 주도력이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통합의 틀을 하루 속히 짜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 없이 활기찬 동력을 가지고 그 다음 단계로 치고 들어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진보대통합은 기존의 틀로서는 이미 어려워졌고, 진보신당의 경우는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통해 독자노선을 걸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의 경우에는 거대야당의 존재감 이상의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박원순 당선은 이러한 구도에서 볼 때, 선거 승리의 과정에서 체험한 통합의 동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특히 시민사회 진영이 기존의 정당체제에 흡수되지 않고 박원순 역시 과거처럼 정당에 수혈된 인사가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이번의 경우에는, 거꾸로 기존의 정당이 정당 외적 요인을 중심으로 결속력을 다졌다는 사실은 기존의 정치적 틀 밖의 공간에서 하나가 되는 노력의 의미와 가치를 주목하게 했다.
'한-미 FTA 저지'로 하나 되어 뭉치자
그러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당장에 두 가지 사안이 있다. 한-미 FTA 저지와 곽노현 살리기를 위한 야권 전체의 통합력 발휘가 그 시험대이다.
한-미 FTA는 그 어떤 말과 논리로 포장한다고 해도, 현재 심화되고 있는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모순을 이 땅에 보다 확대 악화시키는 통로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 속에 담겨 있는 미국 시민운동의 목소리는 세계적 울림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의 비중과 의미를 가진 것이다.
따라서 한-미 FTA는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한국에 이전되고 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협정이다. 한-미 FTA 저지는 그런 의미에서, 시민운동과 함께 야권 전체가 고강도의 결속력을 가지고 확고히 마무리 지어야 할 사안이다.
이걸 바로 해결하면, 신자유주의 문제를 놓고 진보세력과 개혁 세력 내부의 갈등과 대립은 사실상 종결된다. 통합의 걸림돌이 현저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곽노현 살리기"에 들어가야 한다
이와 함께 곽노현 교육감 석방을 위한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져야 한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는 왜 있게 되었는가? 곽노현 교육감의 무상급식 정책에 대한 오세훈 전 시장의 저지가 발단이 되었던 것 아닌가?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만든 세력은 이 점을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 된다.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사법적 조처는 복지정책의 기초를 꺾으려는 이명박 정권의 의지가 실린 일이며, 무상교육, 무상의료로 가는 길을 봉쇄하려는 작업의 일환 아닌가?
기소부터 영장 발부 그리고 보석 거부에 이르기까지 사법부가 이명박 정권의 의지를 대변하고 수행했다는 혐의는 벗어나기 어렵다. 진보교육감 선출의 과정에서 생겨난 부담을 곽노현 교육감 혼자에게 모두 지게 한 뒤, 윤리적 질타나 방관 내지는 사법적 결론이 난 후 보자는 식의 태도는 사안에 대한 이해력 부족과 함께 이명박 정권과의 전투의지 박약이다.
박원순에게 휴식을
이제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그러자면 우선 박원순과 그의 선거진용에게 휴식을 줘야 한다. 그 휴식은 매우 소중하다.
선거과정에서 캠프는 제대로 돌아갔는지, 잘 했는지, 문제는 없었는지, 연합군의 가동에 혹 다시 성찰하고 점검할 바는 없는지, 새로운 도시 서울의 구상을 위해 보다 필요한 새로운 발상은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등 휴식의 과정에서도 여전히 머릿속 에서 바쁘게 돌아가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선거과정이야 워낙 비상상황의 연속이니 문제가 되지 않을 일도, 일상적 정치행위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선거과정을 복기하는 일은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래야 박원순 자신의 장점과 약점 모두 바로 정리할 수 있으며, 향후의 조직 구성에도 치밀함과 안정감을 갖출 수 있다. 이러자면 몸과 마음을 쉬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을 내다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당선된 그를 무익하게 괴롭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번 선거는 그를 지지하는 시민 모두가 해낸 일이다. 그러니 각자 기여한 바에 대한 논공행상을 노리는 일일랑도 없어야 한다. 지금은 박원순이 최대한 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 급선무이다. 자천타천의 무리가 떼를 지어 그의 귀를 자신에게 가깝게 하려는 일은 삼갈 일이다.
정치적 내전에서 이기는 길
이와 함께, 보다 진지하고 심도 있게 기존의 정당구조를 재구성하고 혁신하는 노력에 진보세력의 힘이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깨어 있는 정치의식과 활동 그리고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없으면, 이번 정치혁명의 기세는 흩어진 서 말의 구슬이 되고 만다.
대중적 기대를 모으고 있는 지도력 있는 인사들이 보다 자주 회합하고 대중들의 기대를 좀더 밀착해서 파악하며, 시민사회 진영을 비롯한 진보-개혁 세력의 "매력적인 정치활동"이 펼쳐져야 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새로운 정치의 미래와 도시의 내적 풍요함을 이뤄내는 계획을 보다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해서 구체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보다 자신을 갖게 되었다. 역사적 싸움의 제1회전에서 승리했다. 전투력을 비축하고 장수를 기르며, 새로운 부대를 창설해서 훈련시켜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정치 전쟁의 중심에 서 있다. 이건 지젝이 "혁명의 문턱 앞에서"라는 글에서 언급한 대로 혁명의 시대를 열기 위한 "정치적 내전"이다.
양심과 상식을 가진 세력이 정치적 내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한반도의 운명은 또다시 괴로운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말 것이다.
우린, 이기는 싸움을 이미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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