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기능은 여전히 베일로 가려져 있다. 이번에는 이 신비의 뇌를 음양 오행을 써서 세 번에 나누어 알아보고자 한다.
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니 먼저 간단하게나마 뇌의 구조에 대한 상식부터 알아두는 것이 편리할 것 같다. 보통 뇌를 설명할 때, 대뇌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필자는 역순으로 얘기하는 것이 뇌의 구조를 이해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의 등뼈 속을 타고 올라오는 굵은 신경 줄기를 척수라고 한다. 이 척수는 뇌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연수(延髓)라는 곳에 연결된다. 연수는 척수의 연장이라는 뜻인데, 갑자기 굵어지고 커져서 원통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뇌구(腦球)라고도 한다. 연수는 다시 교(橋), 우리말로 다리라고 부르는 부위와 연결되고 동시에 작은 뇌와도 연결된다.
교에서 다시 중뇌와 간뇌로 이어지는데, 사실 간뇌와 중뇌, 교, 연수는 막대기 모양을 한 일련의 조직체로서 막대기 간(幹)을 써서 뇌간(腦幹)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뇌간을 위와 곁에서 감싸고 있는 반구형의 조직이 우리가 대뇌라 부르는 부위이다. 대뇌반구는 좌우 대칭으로 되어있고 좌우뇌를 연결하는 조직을 뇌량(腦梁)이라 부른다. 양(梁)은 들보라는 의미이니 좌우 뇌를 연결하는 들보라 생각하면 되겠다.
또 대뇌는 굵게 패인 도랑을 따라 앞부분을 전두엽, 머리 꼭대기 부분을 두정엽, 뒤를 후두엽, 옆을 측두엽으로 나누는데, 맡은 바 기능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전두엽은 대뇌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등 포유류일수록 잘 발달되어 있다. 인간은 전두엽의 발달이 현저한 동물이다. 그러나 과연 전두엽 때문에 인간의 지능이 뛰어난 지는 아직 설이 분분하다.
뇌의 구조를 다시 정리하면 척수가 올라와서 뇌간의 연수와 교, 중뇌, 간뇌에 이어지고, 그 뇌간을 덮고 있는 부분이 대뇌이고 소뇌는 별개로 뇌간의 교에서 연결되고 있다.
자 이제 뇌의 구조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추었으니, 뇌의 음양 오행에 대해 얘기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전에 또 한가지 알아둘 것이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장상학(贓象學)이라는 것이다. 장상학이란 인체의 각 장부들을 그것의 기능상(象)에 비추어 음양 오행에 배속하여 연구하는 한의학의 분야이다.
전통 장상학의 이론에 따르면 인체의 간과 담, 근과 눈, 손톱을 목에 배속하고, 심장과 소장, 맥과 혀, 얼굴을 화에 배속하며, 비위와 살, 입과 입술을 토, 폐와 대장, 피부와 체모, 코를 금에, 신장과 방광, 골수와 귀, 머리카락을 수에 배속하고 있다. 장상학의 이론 체계는 한의학의 소의 경전인 내경(內經)에서 골격이 잡혔고 그 이후 수많은 검증과 실험을 통해 발전된 체계이며, 지금도 한방에서 사람을 치료할 때 늘 사용하는 이론 체계이다.
장상학은 따라서 단순한 직관적 인식 체계가 아니다. 내경이 만들어지던 시대에 이미 시체 해부가 인체를 연구하는 중요한 방법임이 인식되었었다. 내경에 나타나 있는 골격과 혈맥의 길이, 내장 기관의 위치, 크기와 용량 등은 기본적으로 실제 상황과 부합한다. 그 예로 내경에서는 식도와 장의 길이 비를 1 : 35 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 해부학의 1 : 37과 매우 근접한다. 내경의 기록은 서양에서 최초로 기록을 남긴 다빈치의 그것보다 1,500년 정도 빠른 것이다.
그런데 장상학은 뇌를 골수의 바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소위 5장 6부에 포함시키질 않고 있다. 다시 말하면, 뇌 기능을 5장6부 전체에 걸쳐 작용하는 것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결국 뇌는 한의학의 발전 과정에서 이해와 연구가 충분치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뇌에 대한 연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교적 최근에 활발히 이루어진 새로운 분야에 속한다. 따라서 여전히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다.
뇌와 관련하여 인류가 오랫동안 궁금해 오던 숙제가 하나 있다. 무슨 숙제인고 하니, 마음이란 것이 인체내의 어디에 머무는 것이냐 하는 의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동서양 공히 심장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마음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몸 속 어디에 머무느냐 하는 질문 자체가 사실 좋은 질문은 아니다.
동양에서 사용하는 마음의 대표 주자는 심(心)이지만, 정신(精神)이란 단어도 있다. 여기서 정(精)이란 신장에 머무는 것이고 신(神)이란 심장이 주관한다고 본다. 뜻(志)이란 단어도 있는데 이는 간담에 머문다고 보았다. 이처럼 한의학에서는 앞서 말한 오행 배속에 따라 마음의 기능을 장기들이 분담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서양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신의 뜻을 가진 mind 가 있고, 다소 감정적인 마음을 뜻하는 heart 가 있다. 그런가 하면 의지를 말하는 will 이 있고, 생각을 뜻하는 thought 가 있다. 모두 다른 말이다. 그런데 마음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사실은 답답해진다. 다만 서양 사람들은 처음에 마음은 심장, 즉 heart 에 있다고 생각했다가 오늘날 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뇌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뇌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무리가 있다. 간단한 예로 거세당한 수컷은 성욕이 일지 않는다. 마음이 뇌 속에만 있는 것이라면 생식선이 파괴당했다고 성욕이 없어질 리가 없다. 우리가 어딜 보는 순간 마음은 눈에 가 있는 것이고, 성욕이 일어 여인의 살을 더듬는다면 뜻은 손가락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은 마음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골'이라는 순 우리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골은 뇌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되어 있는데, 정말 싫다. 순 우리말은 왜 속된 말이 되어야 하는가? 뇌는 한자어이니 고상하고 골은 순 우리말이라 속되다? 사전 편찬하는 이들은 왜 그 모양인지 어이가 없다. 이 자리에서 골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설명하겠다.
골의 원 뜻은 봉우리나 높게 솟은 곳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골이란 신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부위를 일컫는 말로서 머리가 된다. 우리 조상들은 생각이 없는 사람을 두고 '골이 비었다'라고 했는데, 이로서 우리 조상들은 마음이 골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덧붙여서, 골이라는 말은 골짜기란 어휘 속에도 남아있다. 원래 골짜기란 골과 골 사이, 즉 골과 골이 짝을 이룬 사이에 있는 낮은 곳을 뜻한다. 골은 다시 말해서 봉우리이고, 골짜기가 낮은 계곡인데, 오늘날 우리말에서 골은 골짜기의 준말로 되어 있다. 따라서 골로 간다 하면 골짜기로 간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처럼 원 뜻이 반대되는 의미로 옮겨가는 현상은 언어의 세계에서 흔히 나타난다. 또 성내는 것을 '골이 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화가 나면 머리 위로 기가 뻗치는 느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말에는 영혼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 있다. '얼'이 그것이다. 얼은 알과 대조되는 말이다. 경상도 방언으로 아이를 '알라'라고 하는데, 우리 고어와 가장 가까운 어휘이다. 알라는 알이고 새끼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얼은 어른이라는 말과 통한다. 그 뜻은 성숙이다. 알라가 어른이 되는 것이고, 알이 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얼은 영혼을 뜻하는 말이 되고 어른은 성인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이처럼 순 우리말은 이처럼 밝은 모음과 어두운 모음으로 사물의 의미에 차이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나'와 '너'이다. .
자, 이제 비로소 뇌의 음양 오행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할 때가 되었다.
앞서 장상학에서 뇌는 골수의 연장으로 수기(水氣)에 배속되었지만, 필자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이를 정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척수와 뇌간, 즉 간뇌와 중뇌, 교와 연수는 여전히 수기에 배속해도 맞지만, 대뇌와 소뇌는 목(木)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필자의 막연한 직관만은 아니고, 한의학과 서양의학에 대한 공부와 실제 사주 감정을 통해 얻어진 생각이다.
몇 년 전 정신지체아의 사주를 감정한 적이 있었다. 보니, 사주의 화 기운이 막혀 있었다. 화 기운이 막혀 있으면 당연히 심장과 관련되는데, 정신지체아 역시 그렇다는 사실을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후로도 몇 번 지진아의 사주를 감정하면서 화기가 지장을 받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현상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심장은 신명(神明)을 주관하니, 지체아의 문제는 신명과 관계됨을 인지하고, 뇌는 화(火)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생각을 접어야 했다. 뇌란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쏟다보니 자연히 길이 열리기 마련. 우연히 알게 된 정신과 의사 분을 통해 정신분열증이나 기타 신경 쇠약 증세, 노이로제 등등의 정신 병리 현상을 가진 환자 수 백명의 생일을 순수 연구 목적이라는 보장과 각오를 몇 번이나 한 후에 입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보물을 얻은 느낌이었다. 생시를 알 수 없어 약간 답답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그 사람들의 생일을 가지고 분석한 결과 사주내의 목 기운이 부실할 경우 뇌에 병리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가 결여되어 목을 생하지 못하거나, 금기가 바로 목기를 누르거나, 아니면 화기가 약한데 그것을 받쳐주는 목기가 없거나 그런 식이었다. 뇌의 병리현상은 사주 내에 목 기운이 약할 때 나타난다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경험을 얻어가면서, 한편 뇌에 관한 서적들을 많이 읽게 되었다. 뇌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내분비와 신경계에 대한 책도 읽게 되고, 그러다 보니 유기화학 공부도 새로 했다.
그런 경로를 거쳐 필자가 내린 심증은 대뇌는 간과 같이 목에 속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전제가 하나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뇌 전체를 대표하는 기운을 목기로 정의한다는 것이다. 뇌도 세분해 들어가면 수많은 기능 단위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뇌를 목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목화토금수의 오행이 다 들어가 기능하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체용(體用)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체용 개념은 원래 성리학(性理學)에서 사용하는 철학 용어인데, 어렵게 말하자면 무척이나 어렵게 설명할 수 있지만, 쉽게 얘기할 수도 있으니 겁먹을 필요 전혀 없다.
나무를 예로 들자. 나무는 오행상 목에 속한다. 문자 그대로 목(木)이다. 이것이 나무의 체, 즉 기본 몸통, 또는 body 가 된다. 하지만 봄에 꽃이 피면 그 꽃은 오행상 불이 된다. 이를 나무의 용(用) 또는 쓰임이라 한다. 꽃이 지고 여름에 잎새가 무성해지면 그 용은 토(土)가 된다. 토란 무성함을 말한다. 그리고 가을에 열매를 맺으면 그것은 용이 금(金)이 된다. 금이란 결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잎새가 지고 나면 나무는 겨울 준비에 들어간다. 이 때 나무의 용은 뿌리로 내려간다. 그것이 수(水)로서 수란 잠복을 뜻한다. 그러다가 다시 입춘이 되는 2월초부터는 땅속으로부터 맹렬히 수분을 빨아올리는 물 올림을 시작한다. 이 상태의 용은 뿌리에서 줄기로 올라가니 목이 된다. 나무는 그 체(體)가 목이지만, 그 작용(用)은 계절을 통해 목화토금수의 오행을 순환한다. 이것이 체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무를 상징하는 것은 목이지만, 줄기와 가지는 그 중에서도 목에 속하니 용(用) 역시 목이고, 꽃은 화, 잎새는 토, 열매는 금, 뿌리는 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뇌 역시 체는 목이지만 그 작용은 오행을 구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 뇌에 접근해보자.
먼저 뇌가 왜 목인가 하는 점에 대해 직관적인 생각을 말하겠다. 가장 간단한 증거는 우리가 생각에 빠져들면 소화가 안 된다는 점이다. 골몰히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서 식욕이 없다. 생각한다는 것은 뇌가 맹렬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럴 경우 위장으로 흐르는 피 흐름이 떨어지고 그 결과 위의 연동기능이 약해지면서 소화 기능에 무리가 간다. 그런데, 위장은 토이고 생각에 몰두하면 위 기능을 약하게 하니 그것은 목이 토를 극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뇌는 목이 된다. 또 노(怒)하면 특히 위장에 해로운데, 노한다는 것을 한의학에서는 간의 작용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간이 직접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뇌가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또한 뇌가 간과 같은 목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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