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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지혜란 큰 도적 위해 재물을 모아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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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지혜란 큰 도적 위해 재물을 모아주는 것”

신영복 고전강독 <110> 제9강 장자(莊子)-15

너무 딱딱한 이야기로 끝내는 것 같습니다. 지식론(知識論)이 아닌 장자의 지혜론(智慧論?) 하나를 소개하지요.

“지혜란 무엇인가?”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를 여는 도둑을 막기 위하여 사람들은 끈으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를 채운다. 그러나 큰 도적이 오면 큰 궤를 둘러메고 가거나, 주머니째 들고 가면서 끈이나 자물쇠가 튼튼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세속의 지혜란 이처럼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모아주는 것이다.”

오늘날의 지식이 하는 일이란 대체로 이런 역할에 지나지 않지요. 정권을 유지하게 하거나, 돈을 벌게 하거나 나쁜 짓을 하고도 그것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일을 대행하는 일이지요.

도척(盜跖)은 도둑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데 실은 공자 당시의 노나라 현인 유하계(柳下季)의 동생으로 무리 9천을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침략한 대도(大盜)였습니다.

장자는 “도적질에 도가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도척에게 합니다.
도척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감추어진 것을 알아내는 것이 성(聖)이다.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勇)이다.
늦게 나오는 것이 의(義)이며,
도둑질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지(知)이다.
도둑질 한 물건을 고르게 나누는 것이 인(仁)이다.“

‘장자’에는 노자의 죽음과 장자 아내의 죽음 그리고 장자 자신의 죽음에 관한 부분이 실려 있습니다. 물론 사실적 근거로서의 의미는 없으며 장자의 사상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지만 간단히 소개하지요.

노자가 죽었을 때 진일(秦佚)이 조상(弔喪)을 하는데 세번 곡하고는 나와버렸다.
이를 본 진일의 제자가 물었다.

“그 분은 선생님의 친구가 아니십니까?”
“그렇다네.”
“그렇다면 조상을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가 않네. 늙은이는 자식을 잃은 듯 곡을 하고, 젊은이는 어머니를 잃은 듯 곡을 하고 있구먼. 그가 사람의 정을 이렇듯 모은 까닭은 비록 그가 칭찬을 해달라고 요구는 아니 하였을 망정 그렇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며, 비록 곡을 해달라고 요구는 아니하였을 망정 그렇게 하도록 작용하였기 때문일세.

이것은 천도에서 벗어나고 자연의 정을 배반하는 것이며 타고난 본분을 망각하는 것일세. 옛부터 이러한 것을 둔천(遁天:천을 피함)의 형벌이라고 한다네. 자연에 순응하면 슬픔이든 기쁨이든 스며들지 못하네. 옛날에는 이를 천제(天帝)의 현해(縣解:속박으로부터 벗어남)라 하였네. 손으로 땔나무를 계속 밀어 넣으면 불의 번짐은 꺼질 줄을 모르는 법이라네.”(養生主)

장자가 바야흐로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제자들이 장례를 후히 치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장자가 그 말을 듣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을 널(棺)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玉)으로 알며, 별을 구슬로 삼고, 세상만물을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내 장례를 위하여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데 무엇을 또 더한단 말이냐?”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파먹을까봐 염려됩니다.”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땅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될 것이고, 땅 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될 것이다. (장례를 후히 지내는 것은) 한쪽 것을 빼앗아 다른 쪽에다 주어 편을 드는 것일 뿐이다. 인지(人知)라는 불공평한 측도로 사물을 공평하게 하려고 한들 그것은 결코 진정한 공평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노자’와 ‘장자’를 끝내자니 어째 너무 약소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노자’와 ‘장자’의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것을 하나로 묶어서 이해하는 태도를 갖기 바랍니다. 진(秦)나라와 한(漢)나라를 묶어서 하나의 사회변동과정으로 이해하듯이 ‘노자’와 ‘장자’도 하나로 통합하여 서로가 서로를 도와서 완성하게끔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새삼스레 노자와 장자가 어떻게 서로 보완(補完)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과제로 남겨두겠습니다.

끝으로 잡편(雜篇) 외물(外物)의 끝 구절을 소개하고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이 구절은 여러분도 잘 아는 득어망전(得魚忘筌) 득토망제(得兎忘蹄)의 출전입니다.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리고 토끼를 잡고 나면 덫을 잊어버린다는 뜻이지요.

“筌은 물고기를 잡는 통발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기 마련이고,
蹄는 토끼를 잡는 올무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그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말은 뜻을 전하는 것인데, 뜻을 얻으면 말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나도 이렇듯 그 말을 잊어버리는 사람을 만나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싶구나!”
(得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 而與之言哉.)

‘노자’나 ‘장자’의 텍스트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노장(老莊)’사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리고 노장사상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이해하였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득어망전으로 끝내려는 것이지요.

득어망전(得魚忘筌)으로 끝내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관계론(關係論)의 관점에서 부언해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득어망전의 筌은 통발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아마 통발을 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기도 하려니와 이 통발(筌)을 그물(網)로 바꾸어서 생각하기 바랍니다. 筌을 網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이유는 관계망(關係網)을 이야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노자가 이야기한 천망(天網恢恢 疎而不淚)이나 제석천(帝釋天)에 있다는 인드라網을 이야기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得魚忘筌이든 得魚忘網이든 고기를 잡고 나면 그 고기를 잡는데 소용되었던 기구를 잊어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그 반대로 고기는 잊어버리고 網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忘魚得網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기는 이를테면 하나의 현상입니다. 반면에 그물은 모든 현상의 저변에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그물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망라하고 있는 천망(天網)인 것이지요.

고기는 잊어버리든 잃어버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물입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태가 그 위에서 생성 변화 발전하는 거대한 관계망(關係網)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지요.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천하의 봄을 깨닫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마리의 제비가 아니라 천하의 봄이지요. 남는 것은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동료들의 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는 것은 그물입니다. 그리고 그물에 관한 생각이 철학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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