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 12일 유엔 연설을 통해 이라크에 대해 최후통첩을 보낸 이후 국제사회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다.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파기 등 부시가 내건 5가지 조건을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이 수락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주, 또는 수개월후 미국은 이라크 공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위해서이다. 후세인 현 대통령을 축출한 후, 대량살상무기 파기 등 국제사회의 룰을 지키며 국내적으로는 민주화를 진척시킬 지도부를 옹립하겠다는 것이 이라크 정벌에 나서는 미국측의 공식적인 명분이다.
그렇다면 이라크 정권교체는 미국측 군사행동의 최종 목표인가, 아니면 더 큰 노림수가 있는가. 이와 관련 미국의 한 언론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중동지역 전체를 재편하기 위한 보다 원대한 계획의 서곡에 불과하다는 요지의 보도를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의 보스턴글로브는 지난 10일자 보도(Iraq War Hawks Have Plans to Reshape Entire Mideast)를 통해 이라크전쟁을 주장해온 미국내 강경파들의 목표는 이라크 정복 이후 시리아, 이란 등의 반미정권 교체, 사우디에의 석유의존도 감축 및 석유수출국기구(OPEC) 약화를 통한 석유자원의 안정적 공급, 그리고 이스라엘의 안보 강화 등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스턴글로브 보도에 따르면 이같은 계획이 부시 행정부의 공식정책으로 채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년전부터 워싱턴의 보수적 싱크탱크와 강경파 그룹 내부에서 논의돼 온 이같은 계획은 강경파 인사 중 상당수가 현 부시행정부 내에서 발언권을 강화함에 따라 점점 현실성을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폴 월포비츠와 더글라스 페이스, 체니 부통령의 측근인 루이스 리비와 존 한나, 국무부의 존 볼튼 등이 그들이다.
이 신문은 특히 강경파의 보스격인 체니 부통령이 지난 8월 26일 해외참전용사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같은 계획을 일단을 내비쳤다고 지적했다. 당시 체니는 후세인을 제거할 경우 "중동 지역에 여러가지 혜택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강경파에 속하는 한 분석가는 "이라크 정권 교체가 목표의 전부는 아니다. 목표는 새로운 중동이다"라면서 "이같은 목표야말로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을 밀어부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이들 강경파에 따르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릴 경우 미국은 시리아 및 이란의 정권교체, 또는 반미정책 억제를 유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leverage)을 획득하게 된다.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이라크에 친미적 정권이 세워질 경우 현재 보수파 성직자와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란의 개혁파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시리아에 대해서는 레바논내 과격파 단체인 헤즈볼라나 시아파 게릴라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추가로 무력을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강경파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라크 공격을 통해 미국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언제라도 무력을 행사할 의지가 있음을 과시하는 것만으로도 지역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가 있는가 하면 추가적 강경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지난 7월 랜드연구소가 작성해 국방정책기획단에 보고한 사우디 관련 보고서(프레시안 8월 6일 보도)는 가장 극단적 강경책에 속한다. 이 보고서는 사우디를 '미국의 적' '악의 핵'으로 지칭하면서 사우디 정부에 대해 이슬람 과격파와의 관계청산을 요구하는 동시에 필요하다면 사우디의 유전 및 해외자산을 강제로라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또 이라크를 중동지역에서의 '전술적 축(tactical pivot)', 사우디를 '전략적 축(stratigic pivot)'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 및 사우디와의 관계는 석유자원 측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석유매장량 세계 2위의 이라크를 미국의 우방국으로 만든다면 미국의 사우디(석유매장량 세계 1위)에 대한 석유의존을 한층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게 미 강경파들의 계산이다. 또 친미정권의 이라크는 이제까지 사우디 주도하에 석유공급량과 국제유가를 좌지우지 해왔던 OPEC의 영향력도 감소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13일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해 오면서 OPEC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기사를 냈다.
한편 이라크가 미국에 의해 정복될 경우 이스라엘의 안보가 크게 향상될 수 있다고 강경파들은 판단하고 있다. '유태인 국가안보연구소(JINSA)' 등 미국내 친이스라엘 유태인 로비단체들이 이라크 군사공격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속셈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진정한 목표는 당초 부시행정부가 내건 반테러전쟁이나 대량살상무기 확산금지라기보다는 중동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이스라엘의 안보 강화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같다.
또한 강경파들의 이같은 구상으로 보아 이라크 다음의 군사목표는 북한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예상도 정확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벌에는 석유자원과 같은 '전리품'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 공격은 이라크 공격보다도 훨씬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스 등 미국언론은 미사일 개발 수준이나 대외수출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는 북한이 최대 위협이지만 부시 행정부가 북한 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고 보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 공격에 수반되는 군사적 희생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중동 지역 전체를 미국의 국익에 봉사하도록 재편하겠다는 미국 강경파들의 이같은 구상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특히 키신저, 브레진스키와 이들의 맥을 잇는 미국의 현실파(realist) 외교전문가들은 강경파들의 전략이 미국의 힘의 한계를 무시한, 비현실적 전략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9.11테러의 주범인 알카에다 조직조차 아직 소탕하지 못한 데다가 탈레반 축출 이후 성립한 아프간 신정권도 아직 안정되지 못한 마당에 이라크 정벌에 나서는 것은 무모한 외교적 모험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금은 알카에다 소탕에 모든 군사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라크의 경우 정권 교체를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기보다는 현재의 경제제재 하에서 후세인 정권이 스스로 붕괴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가장 현실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아프간의 친미 정권 하나 제대로 안정시키지 못한 마당에 아프간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정복하고, 나아가 정치적으로 안정된 친미 정권을 세운다는 것은 무망한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물며 이라크는 물론 이란, 시리아 등 중동지역 전체에 민주적(친미적) 정부가 들어서기를 바라는 것은 꿈같은 일이라는 게 이들 현실주의자의 지적이다.
이라크 출신으로 미 국방대학의 선인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주디스 야페는 "이라크 정복이 중동지역 전체의 재편을 가져올 서곡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종교적 신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미 카네기국제평화연구소의 제시카 매튜스 소장은 "이라크로부터 민주화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마디로 웃기는 발상"이라면서 "22개의 아랍권 국가중 민주화로의 진전을 이룬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독재국가가 하루 아침에 민주국가로 변화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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