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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목숨은 아랍인과 다르단 말인가"

<9.11 1주년> 아랍권 언론들의 시각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파노스 파리'라는 시민단체는 최근 지난해 9.11테러 이후 아랍권 언론의 반응을 분석한 장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평화를 위한 미디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거의 접할 수 없는 제3세계 언론의 보도태도를 선진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림으로써 국제문제에 관한 남북간의 상호인식을 증진하자는 것이다.

'파노스 파리'는 아랍권 4개국(이집트 레바논 모로코 알제리)과 중앙아프리카권 3개국(카메룬 차드 콩고) 언론을 대상으로 9.11 직후(2001. 9. 12- 9. 19)와 아프간전쟁 시작 직후(10. 7- 10. 15), 그리고 탈레반 포로의 관타나모 이송 직후(2002. 1. 11- 1. 18) 등 세 시기로 나누어 이들 언론의 보도 태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9.11사태가 '문명간 전쟁' 또는 '제4차 세계대전'(3차대전은 냉전)의 시작이라거나 미국의 잘못된 대외정책이 초래한 참사라는 이미 알려진 관점들도 드러났다. 반면 이들 언론 중 오사마 빈 라덴에 동조한 언론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어찌 보면 의외의 분석 결과도 나왔다. '파노스 파리'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 언론중 대부분은 빈 라덴을 미 CIA의 하수인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으며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대해서도 거의 동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파노스 파리'는 이 보고서의 결론을 통해 일정한 편차는 있지만 아랍 및 아프리카 언론을 하나로 묶는 가장 큰 공통점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라고 지적했다. 즉 이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3세계권에 대한 선진국들의 억압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야말로 이들 지역의 언론들이 지역 및 국제문제 의미를 파악하는 데 중심적 변수"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들 지역의 언론이 표출하는 반미감정의 근원도 바로 팔레스타인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랍인 망명객들에 의해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알 하야트'는 9.11테러가 이스라엘에 의해 악용되는 사태를 가장 우려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무력감'이다. 즉 국제정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자신들은 구경꾼, 기껏해야 단역을 맡을 뿐이며 아무런 실질적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짙은 무려감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언론들은 9.11 테러에 대해서는 거의 만장일치로 규탄했으며 무고한 미국인들의 희생에 환호한 언론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파노스 파리'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미국이 주창하는 '반테러 전선'에 대한 동조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 중 9.11 직후 아랍권 언론들의 논평 3편을 소개한다.

***이스라엘, 어부지리 얻다/알 하야트, 2001. 9. 13**

미국 언론은 9.11테러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몇몇 젊은이들의 모습을 방영하고 있다. 미국 언론은 이를 아랍인들의 반응이라고 믿고 싶어 하겠지만 이는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하물며 아랍인들의 반응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이라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

미국언론들도 이같은 반응이 극히 제한적 사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는 사진기자들의 연출일 수도 있다.

이번 공격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을 두둔하고 중동을 비방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아랍인들은 이를 미국정책에 대한 보복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종류의 테러는 (미국의) 정책을 바꾸게 하기보다는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아랍인들은 미국에 대해 중동지역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와는 반대로 이 지역에 계속 남아 보다 효율적이고 책임있는 정책을 펼치라고 요구해야 한다. 미국의 정책들이 고통과 분노를 자아내고 그리하여 아랍인들의 저항을 촉발시켰다 할지라도 이제까지 우리들의 저항은 거리에서 합리적으로 표출됐을 뿐, 결코 테러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를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테러와의 전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샤론 정권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결코 모범이 될 수 없는 집단이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세계에 일고 있는 반테러전쟁에 대한 동조가 '샤론의 음모'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테러가 이스라엘의 범죄행위를 묵인해 주는 좋은 구실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번 테러와 아무 관계가 없다. 가미가제식 테러범죄와 빼앗긴 조국 땅을 되찾기 위한 전쟁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자기 땅을 되찾기 위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에서는 이같은 테러공격이 필요 없다. 그들은 어떤 행동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고 해가 되는지를,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또한 점령군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자살폭탄테러와 단순히 미국인을 죽이고 그를 통해 미국에 대한 증오감을 선동하려는 테러행위를 구별해야 한다.

후자는 그저 자살일 뿐이며 살인을 위한 살인일 뿐이다. 그러나 전자는 저항의 마지막 형태이며 조국을 위한 순교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자살특공대는 자신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지구상 모든 나라의 모든 애국자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아랍인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수천명의 무고한 희생에 대해 아랍인들이 즐거워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랍인들은 미국의 정책들을 비판할 근거를 갖고 있다. 이 지역의 평화정착은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차이와 테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 로비스트들이 아랍인들을 능멸하기 위해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특히 미국 내에서는 샤론의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러한 시도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미국의 정책에 해를 끼칠 뿐이며 장기적으로 보아 이스라엘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수년간 오사마 빈 라덴 색출 작업을 벌이면서 워싱턴은 몇몇 아랍국가들이 기꺼이 협력하려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랍정부들은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데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또 테러조직의 지원을 받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랍국가들은 "테러분자와 이들을 은닉하고 있는 국가들을 구분하지 않겠다"는 부시의 발언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이 이번 사태를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면밀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알 하야트: 아랍인 망명객들에 의해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고 있으며 부수는 약 11만부)

***모순들/알 카바르, 2001. 9. 18**

지난 주,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폭력사태가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이 사태의 가장 해괴한 모순은 미국과 알 사우드 왕가(사우디 왕족)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반면 알 사우드 왕가는 탈레반 운동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미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우드 왕조가 탈레반 정권을 승인한 유일한 정권이라는 이 희한한 사실을 도대체 어떤 논리로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사태가 촉발한 또다른 모순은 전세계 국가들을 반테러전쟁에 동원하려는 미국의 노력에서 드러났다. 부시 행정부는 전세계 모든 국가들에 대해 자신들의 반테러전쟁에 동참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는 9.11테러로 사망한 5천명의 미국인 때문이다.

하지만 10만-15만명이 희생된 최근 알제리에서의 학살사태때 미국 행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어디에 있었는가? 미국인들은 알제리인들과는 종류가 다른 인간인가?

알제리인 10만명 이상이 미국인 5천명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우리는 오늘이나 내일, 또는 가까운 장래에도 우리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인종주의적 체제에 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의 세계체제가 계속되는 한 이러한 인종주의 시스템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에 의한 것이든 범법자에 의한 것이든 테러 및 폭력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길은 민주주의이다. 모든 인간이 자신의 소신을 자유롭게 밝히고 외부세력에 강제되거나 굴복됨이 없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하는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고는 테러와의 전쟁은 승리할 수 없다.

이제 아프간인들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채택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무력을 동원해 걸프지역의 원시적 왕조독재국가들을 유지해 주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몇몇 왕가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국민들에게 일체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또한 한줌의 왕자와 족장들이 모든 정치요직을 독점하고 시민사회의 모든 부문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는 한, 우리 앞에 기다리는 것은 보다더 강력한 폭발뿐이다.

(알 카바르: 지난 90년 창간된 알제리의 대표적 민간신문. 부수는 20만부)

***테러와 반테러/알 아다스 알 마그리비아, 2001. 9. 19**

지난 20세기 미국은 고립에서 벗어나 두차례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특히 2차대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로 절정에 이르면서 결말을 맺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대한 보복을 단행한 이 핵공격은 미국의 분노가 어떠한 보복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인가를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이후 미국은 자유세계의 지도자로서 스탈린이 이끄는 공산권과 대치했다. 그때부터 미국은 어느 순간에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의 권리를 갖게 됐다. 워싱턴은 정치.군사체제 및 경제체제 등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전후 질서를 세계에 부과했다.

<중략>

이제 냉전은 끝났다. 동서간 갈등은 역사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미국은 이라크의 쿠웨애트 침공을 빌미로 이라크에 전쟁을 선포했다. 걸프전의 가장 끔찍한 광경은 알 암리아 난민수용소에서 벌어졌다. 미군의 폭격으로 수천명의 아녀자와 노인들이 처참하게 살육당한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테러행위에 눈을 감고 있다. 이들은 현재 미국이 당하고 있는 테러가 지금까지 미국의 정책이 초래한 (국가)테러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테러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의 고통도 알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사태를 보면 진주만이 새삼 연상된다. 진주만 기습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은 일본의 두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우리는 걸프전 동안 사우디의 다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지 못한다. 미군 전투기들이 알 암리아에서와 같이 바그다드의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동안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은 이들 미군전투기 조종사들의 숙소를 강타했다. 미국은 분노했고 이라크군에 네이팜탄을 쏟아부었다. 전쟁은 이라크에게 엄청나게 불리한 조건으로 종결됐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이 소란스러운 세계에 자신의 질서를 부과하려는 미국의 정책이 낳은 결과물이다. 미국은 아직도 자신만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에 모여 전쟁 계획을 논의하고 있는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 미래의 인류의 운명을 권리가 과연 있는 것일까?

(알 아다스 알 마그리비아: 모로코의 독립적 민간신문. 부수 10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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