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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로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까”

신영복 고전강독 <107> 제9강 장자(莊子)-12

<예제 9>

方舟而濟於河 有虛船 來觸舟 雖有惼心之人不怒
有一人在其上 則呼張歙之 一呼而不聞 再呼而不聞
於是三呼邪 則必以惡聲隨之
向也不怒而今也怒 向也虛而今也實
人能虛己以遊世 其孰能害之(外篇 山木)

呼張歙之(호장흡지): 一呼張之 一呼歙之. 一請張之 一謂歙之. 이쪽 배의 사람은 배 사이를 (부딪치지 않게) 벌리라고 소리치고 저쪽 배의 사람은 배를 거두라고 소리치다.
向也(향야) 今也(금야): 아까는 이제는.
虛己(허기): 자기를 비우다.

산목(山木)에서 예제를 하나 더 골랐습니다. 축자해석(逐字解釋)은 하지 않겠습니다. 전체의 뜻을 중심으로 읽어보기로 하지요.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 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었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빈 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바로 소요유(逍遙遊)입니다. 소요는 도달할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보행(步行)이 아닙니다.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완결됩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습니다. 이 점에서 장자는 자유의지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관념적이라거나, 사회적 의미가 박약하다거나, 실천적 의미가 제거되어 있다는 비판은 장자를 잘못 읽거나 좁게 읽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국강병이라는 전국시대의 패권논리가 장자에게 있어서 어떤 것이었던가를 우리는 상상하여야 합니다. 도(道)란 무엇인가? 인간이 지향하여야 할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가? 장자가 이러한 근본적 물음을 제기하고 나아가 최대한의 자유개념을 천명한 까닭은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패권경쟁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비판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장자의 이러한 근본주의적 관점과 서슬 푸른 비판정신이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에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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