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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피부과 vs 2만권 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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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피부과 vs 2만권 장서

[김민웅 칼럼]<71>

"그 돈으로 그 정도였던 거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나경원의 1억 피부과 출입 파장이 좀체 가라앉을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여성들의 반감은 후보나 한나라당으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폭탄이다. 트위터에서는 "그 돈으로 그 정도였어?"에서부터, 서울시장 되면 자체 관리하겠다는 나경원의 발언에 대해 "그렇다면 피부과 계속 다니게 해주자"에 이르기까지 조롱이 그치지 않는다.

나경원이 특급 인기 연예인이었다면 1억 피부과는 질타의 대상이 아니라 아마도 그 피부과 홍보에 기여했을 텐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정"의 책임자가 되겠다고 한 장본인인지라 여론의 화살은 곧장 그녀 자신을 겨누고 있다. 경쟁 상대측으로서는 이를테면 "최종병기 활"이 된 셈인데, 나경원 자신으로서 난처한 것은 그 활이 자신 스스로 발사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연회비 1억 피부과와 사회적 약자는 서로 공존할 수 없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피부 관리를 하자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나 이들을 위한 실천은 애초부터 거의 힘들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적 위선과 기만이 시작된다. 자신의 삶과는 동떨어진 내용을 자기의 본질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인 후보는 끊임없는 거짓을 생산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자기가 놓은 덫이다.

자살골 같은 이상한 해명

그런데 이 1억 피부과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면 나올수록 묘한 내용들이 드러나고 있다. 1억 전부를 낸 것이 아니라 실비로 해주었다는 둥, 담당 의사가 피부과가 아니라 내과라는 둥, 자기가 아니라 장애인 딸을 위한 병원 출입이었다는 둥, 코만 살짝 돌봤다는 둥, 해명을 한다는 것이 도리어 자해가 되는 변명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남들은 1억을 내는데 나경원만 따로 실비를 받고 해주었다면 다른 고객들도 불만을 가질 판이고 나경원 자신은 특혜를 받은 꼴이다. 정치자금법에 걸릴 가능성이 생긴 것만이 아니라, 사학 족벌 가문에서 시작해서 온갖 부와 특권을 누려온 "특혜인생"이 어디까지 가는가를 보여준다.

피부과 간판을 내걸고 만일 내과의사가 온갖 진료를 하고 있다면 이 또한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급 돌팔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실력이 있다 해도 전문의 영역 시비가 나올 지경이다. 게다가 장애 자녀를 가진 무수한 부모들에게는 1억 피부과 출입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코만 살짝 돌봤다는 표현이 코 피부를 손질했다는 뜻인지, 아니면 간단한 성형 즉 "코스메틱 서저리(cosmetic surgery)"까지 했다는 이야기인지 종잡기 어렵다.

의료 영리법인화 모델?

그리고 무엇보다도 1억 피부과는 병원의 영리법인체제의 모델이다. 이런 병원에 즐겨 출입하는 이들이 의료보험 체제의 강화를 통해 서민들의 무상의료까지 가는 길을 열 턱이 없다. 무상급식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대에는 일단 무상급식 문이 열리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까지 길이 뚫리는 것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그렇게 될 경우, 현재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고 한나라당이 통과실무를 맡고 있는 셈인 의료 영리 법인화 정책이 난관에 봉착한다.

특권과 특혜를 보다 더 많이 손에 거머쥐기 위한 정치를 하는 자들은 민주주의 정치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정치가 그러한 특권체제를 굳히기 위한 도구로 소모된다면 그 또한 정치의 본질을 망가뜨리는 범죄다. 정치는 철저하게 공적 영역이며 특히 오늘날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공화주의체제의 기반이다. 수도 서울의 책임자가 되겠다는 후보의 1억 피부과 출입은 이런 정치의 본질과 정면으로 맞선다.

나경원의 1억 피부과 출입의 다른 한편에는 박원순의 2만권 장서가 있다. 그 많은 책을 다 읽었느냐, 라는 질문보다 그 많은 책을 사 모으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우선 주목된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매우 지속적인 책 대하기와 연구열이 아니면 이뤄지기 어렵다. 학자들에게도 2만권 장서는 에베레스트 산 등정이다.

2만권 장서와 책 읽는 공인

책 읽지 않는 공인은 위험하다. 적은 독서량으로 자신의 지식을 완비했다고 여긴 공인은 더더욱 위험하다. 그래서 "책 읽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공인은 소중하다. 그건 생각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도시를 꿈꾸는 것이며,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으로 세상을 정의롭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힘을 만들어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10월 초 파주에서 열린 북소리 축제는 한국 도서시장의 현실만이 아니라 우리의 책읽기 능력에 대한 검증의 의미도 지녔다. 파주 북소리 축제는 아시아에서도 엄청난 의미를 가진 현장이었으며, 미래 한국의 지식 네트워크가 국내외적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노력이 수도 서울의 미래 디자인에는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한 점이었다. 진보언론이라고 하는 <한겨레신문>조차도 이 축제의 의의와 내용을 그 비중만큼 무겁고 크게 다루지 않았다. 이건 곤란하다.

책 읽는 도시, 책의 힘이 느껴지는 수도, 책 읽기를 즐기는 시정 책임자가 있는 서울의 모습은 그 자체로서 가치이며 교육이자 문화이며 문명의 동력이 된다. 이런 수도 서울에서는 인문학이 그 도시의 역사와 예술, 그리고 내면의 성숙을 위한 책임을 질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 영국 런던시가 인문학에 기초한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를 통해 문학과 연극, 영화와 각종 페스티발 추진에 힘을 쏟아 만들어온 성취는 그런 점에서 중요하다.

"머리가 빈 도시, 서울"이 돼서야

수도 서울이 "머리가 빈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세훈 전 시장이 밀어붙인 외양만 꾸미는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가 벽에 부딪힌 이유는 바로 이 겉만 그럴싸하게 보이는 "코스메틱 서저리"의 한계와 피상성 때문이 아니었는가? 머리에 든 게 없는 도시가 아무리 화장을 해본들 그건 가짜다. 화장발 하나로 세계적 명품 도시가 된 경우는 그 어디에도 없다.

현대사에 들어 뛰어난 지도자들은 모두 책을 쓰거나 책을 무수히 읽은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의 머리에 지적 체계가 서 있고, 가슴에 민중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헌신이 없고서는 존경받을 만한 지도자가 될 수 없고, 그런 지도자가 위대해졌다는 걸 누구도 들은 바가 없을 것이다.

시정을 책임지는 공인이 책과 거리를 멀리 둔다면, 그 도시의 교육환경은 당연히 내용을 충실하게 채우고 다듬어 나가는 것보다는 관료적 제도 강화에 힘을 기울이게 될 것이며 새로운 발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사사건건 대립했던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모습은 바로 이런 점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도 바로 그런 인문학적 소양과 발상이 없는 전 시장의 정치적 패착이 만들어 낸 결과 아니던가? 그의 전시행정도 책 읽지 않는 공인의 자기자랑 외에 다름이 아니다.

나경원ㆍ박원순, 요즘 무슨 책 읽으셨나요?

답답한 것은, 박원순과 나경원 두 후보에게 왜 언론들은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 묻거나, 그 독서소감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일까? 박원순이 지은 그 무수한 책들이 이 사회에 어떤 영향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어찌해서 파고들지 않는 것인가? 나경원은 무슨 책을 썼는가? 혹은 무슨 책을 가장 감동 깊게 읽고 평생의 힘으로 삼고 있을까?

1억 피부과 출입과 2만권 장서, 그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강이 흐른다. 아니 구태여 건너지 않아도 된다. 비싼 피부과 다니고 싶은 사람 계속 그대로 다니라고 하고, 책 읽고 연구하면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은 또 그렇게 해주면 된다.

내년쯤이면 파주 북소리 자매판인 서울 책 축제를 보고 싶다. 서울 시청 앞에서부터 광화문 광장까지를 가득 채운 활기찬 인파를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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