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북 경수로사업의 발전소 본체 콘크리트 타설 기념식이 7일 북한 금호지구에서 거행되었다.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핵사찰 수용문제가 여전히 핫이슈로 남아있긴 하지만, 이 행사는 지금까지의 난항에도 불구하고 제네바합의 이행의 핵심인 경수로사업이 앞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됨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낙관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지난 4일 미국의 대표적인 KEDO 관련 전문가인 전 미 핵안전규제위원회 위원장 빅터 길린스키와 핵비확산정책교육센터 센터장 헨리 소콜스키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대북 제공 경수로에서도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을 대량 추출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다시 제기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길린스키와 소콜스키는 일반 경수로에서도 첫 가동 후 다음 핵연료 장전까지 15개월 정도의 운전기간 동안에는 '핵무기급'(플루토늄 동위원소 중 플루토늄-239의 비율이 90% 이상)에 가까운 품질의 플루토늄을 약 300kg 생산하며 이를 이용하면 수십 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경우, 경수로 플루토늄을 충분히 핵무기로 전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플루토늄은 원자로 내에서 우라늄 핵연료가 탈 때 필연적으로 생성된다. 핵연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라늄 동위원소인 우라늄-238은 중성자 한 개를 흡수함으로써 플루토늄-239로 바뀌며 생성된 플루토늄-239 중 일부는 또 다른 중성자를 흡수함으로써 핵분열을 일으키거나 다른 플루토늄 동위원소로 바뀌어 간다. 따라서 원자로의 형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핵연료의 연소기간이 짧을수록 핵무기 물질로 선호되는 플루토늄-239의 비율이 높은 플루토늄이 생성된다.
그러므로 경수로에서도 원리상으로는 핵무기급에 가까운 품질의 플루토늄뿐만 아니라 핵무기급 플루토늄도 생산 가능하다. 필자의 대략적인 계산에 의하면, 76톤의 핵연료를 장전하는 경수로의 경우 100일정도의 연소기간 내에 생성되는 플루토늄은 핵무기급이며 그 양은 약 230kg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경수로의 운전 기간은 최소 1년 이상이므로 정상 운전 후 방출되는 사용후 핵연료 내의 플루토늄은 플루토늄-239의 비율이 낮은 '원자로급'플루토늄이 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사실은 경수로에서 플루토늄이 생산된다고 해서 이것이 곧 핵무기 전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에 경수로 플루토늄을 핵무기로 전용하려 한다면 방사선 차폐시설을 갖춘 화학적 공정의 재처리 시설에서 사용후 핵연료의 플루토늄을 추출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우선 원자로에서 방출된 사용후 핵연료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망으로부터 몰래 빼돌려야 한다.
전 세계 모든 상업용 원전의 핵사찰을 수행하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시스템에 탐지되지 않고 사용후 핵연료를 빼돌리기는 대단히 어려우며 일단 성공하더라도 감시 장치의 기록에 의해 짧은 기간 내에 발각되게 된다. 그리고 사용후 핵연료의 전용사실은 곧 UN에 회부되어 해당 국가는 국제적인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북한이 경수로 완공 후 IAEA 정기 핵사찰을 받게 되면 플루토늄 전용을 위해 경수로를 이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상업용 원전을 이용하여 플루토늄을 전용한 사례가 없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북한이 경수로 완공 후 경수로에 대한 IAEA 정기 핵사찰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며 UN의 제재와 함께 KEDO 경수로는 미국의 선제공습의 첫 번째 대상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경수로를 통한 무기급 플루토늄의 추출은 기술적ㆍ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정치적ㆍ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이 경수로 플루토늄을 핵무기로 전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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