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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사태'가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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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사태'가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

정창화 의원, 농민들이 던진 물건에 이마 찢어져

한나라당 경북도지부장인 정창화 의원이 2일 농민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사태가 발생, 한나라당을 긴장케 하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여겨온 경북지역에서 지역대표 의원이 린치를 당했다는 사실을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마늘 문제를 '김대중정부의 대표적 실정'으로 몰아쳐온 한나라당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런 상황전개가 아닐 수 없다.

2일 오전 마늘 최대생산지인 경북 의성에서는 1만여명의 농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대규모 집회 시위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여성농민회원 1백여명이 상복차림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영정을 들고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의성군농민회와 의성군농업경영인회 등 의성지역 15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의성 마늘 대책협의회'는 '한.중 마늘협상 백지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저지, 쌀수입 개방 반대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한.중 마늘 협상 이면합의 백지화 ▲마늘농가 피해 전액 보상 및 생산비 이상으로 전량 수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추진 중단 등을 촉구하는 한편, 무역위원회의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 연장신청 기각 결정을 집중성토했다.

김선환(의성군 농민회장) 마늘대책위 공동의장은 규탄연설을 통해 "마늘문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정부와 국회는 성의있는 답변과 태도가 전혀 없어 50만 마늘농가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다"며 "마늘문제가 타결될 때까지 강력한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수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장도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는 대국민 합작사기극"이라며 1조8천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정부의 마늘산업 종합대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지난 2000년의 굴욕적인 한.중 마늘 협상으로 의성군 농민들은 의성군 예산의 절반이 넘는 6백억원 이상의 피해를 보아야 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비밀협상으로 농민을 기만하고 우리 농업을 죽이고 있다"고 규탄했다. 농민들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피켓 2천여개와 플래카드 2백여개, 유인물 1만여장, 방송차량 3대 등의 장비를 동원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그 다음 순간에 터졌다. 한나라당의 경북도지부장인 정창화 의원이 집회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았다.
정의원은 현정부의 실정을 비판한 뒤, 마늘협상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책을 묻는 농민들의 질문에 답을 했다.

이때였다. 정의원의 답을 듣던 농민들 가운데 20여명이 "이제 와서 무슨 놈의 대책이냐"며 계란과 물병, 막걸리통 등 갖고 있던 물건을 정의원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경호원들이 정의원을 몸으로 감쌌으나, 한번 불붙은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졌다.

마침내 한 농민이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세워놓았던 방송용 철제 카메라 다리를 집어던졌고, 이것이 정의원 왼쪽 이마에 맞아 피가 터져나왔다. 순식간에 얼굴과 상의는 피로 젖었고, 이에 보좌관들이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 11바늘을 꿰매야 했다.

정의원이 퇴장한 후에도 농민들은 외교통상부 장관과 농림부 전.현직 장관 등의 이름이 기재된 허수아비 3개를 경운기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른 뒤 의성운동장까지 1.7km 가두행진을 벌인 뒤 낮 12시30분께 행사를 마쳤다.

농민들이 이날 우발적 형태이긴 하나 정창화 의원에게 린치를 가한 것은 그동안 정의원측의 미온적 대응과도 무관치 않아보인다는 게 현지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마늘 문제는 어제오늘의 새삼스런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00년부터 마늘이 주된 소득원인 이 지역에서는 마늘시장 개방은 최대 현안이었다. 그러나 정의원측 대응은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 예로 지난 2000년 8월 의성군농민회 회원 10여명은 정창화의원의 한나라당 의성지구당 사무실을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이유인즉 이날 규탄집회를 마친 농민회원들이 정의원의 사무실을 항의방문했으나, 당직자들이 휴가를 핑계로 문을 폐쇄한 데 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여러 차례 있다가 마침내 이번에 린치사태가 발생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김대중정부도 못믿겠지만, 한나라당 하는 모양새도 지역주민들의 절실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다. 요컨대 제도 정치권 모두에 대한 극한적 불신감의 표출인 것이다.

의성사태는 단순한 우발적 사고로 지나칠 일이 아니다. 지금 정치권과 일반국민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정치권이 말로만 국민 운운하며 실제로는 민의와 걷돌 때 이런 유사한 사태은 앞으로도 계속 목격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섞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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