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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왜 ‘장자’를 읽는가”

신영복 고전강독 <96> 제9강 장자(莊子)-1

1) 장자와 노자

장자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잘 아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井底蛙)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 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자’ 외편(外篇) 추수(秋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井底蛙)의 출전(出典)입니다.

이 우물 안 개구리의 비유는 장자사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우물 안 개구리는 장자가 당시의 제자백가(諸子百家)들에게 던지는 비판입니다. 교조(敎條)에 묶인(束於敎) 굽은 선비(曲士)들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이며 그들에게는 도(道)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일갈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제자백가도 적극적인 실천을 통하여 당대사회의 문제해결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공동체의 문제 즉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음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제자백가들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비판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의식에 비하여 장자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자가 추구하는 문제는 더 근원적인 문제였습니다. 제도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개인적인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이른바 장자의 자유주의(自由主義) 철학입니다.

사회적 혼란과 전쟁은 개인주의 철학자들에게는 너무나 위험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개인을 지도, 감독, 보호하려는 일체의 행정적 또는 이념적 규제를 ‘인위적 재앙(災殃)’으로 파악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춘추전국시대는 거대한 혼란기였습니다. 사이비(似而非) 사상가와 철학자가 종횡으로 누비는 이른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그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것이 못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들이 골몰하는 것도 제도개혁이 아닌 패권경쟁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백화(百花)라고 하지만 우물을 벗어나지 못한 꽃이었습니다.

2천년을 격한 오늘 ‘장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장자’를 읽을 것인가?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은 ‘장자’를 읽는 이유를 찾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장자’의 제1편 소요유(逍遙遊)가 바로 장자의 철학적 입장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逍遙)는 보행(步行)과는 다르지요. 보행은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는 행위입니다.

소요는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지요. 보행보다는 오히려 무도(舞蹈)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춤이란 어디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지요. 동작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입니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여하한 목적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장자사상의 핵심입니다.

사회적 규범 밖에서 자신들의 자유를 추구하던 일민(逸民)들의 경물중생(輕物重生) 즉 개인주의적인 생명존중론(生命尊重論)이 양주(楊朱)학파에서 크게 고조되었는데 장자는 이 양주학파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평가되지요.

생명의 물리적 보존뿐만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정신(精神)의 자유(自由)’라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즉 무한한 소요유(逍遙遊)의 추구를 표방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장자의 철학과 사회학의 접점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장자’를 읽는 독법이 대체로 ‘소요유’와 ‘자유’의 측면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러한 경향은 우리 현대사에 만연된 패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현대사에는 기인열전(畸人列傳)에 들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익숙한 이름들도 많습니다.

나는 그 개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만 기행(奇行)이나 주사(酒邪)까지도 그의 호연지기(浩然之氣)로 치부되기도 하고, 예술이란 이름으로 그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일제하에서부터 해방전후의 격동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폭압적인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현대사에 드리워진 절망의 그림자는 실로 엄청난 무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절망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장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탈(逸脫)의 논리로, 패배(敗北)의 미학(美學)으로 읽혀졌었지요.

그러나 그런 일탈(逸脫)과 농세(弄世)라는 패배주의자들의 개인주의적 대응과는 달리 역사의 엄혹한 현장에서 산산이 부서져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또 알고 있습니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그런 사람들과 감옥을 함께 살기도 하였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해금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수용하기에는 부담이 아닐 수 없었지요. 현장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심리적으로도 부담이지요. 패배의 미학이 훨씬 더 친근하게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 이러한 현대사의 그림자 때문에 우리의 ‘장자’ 독법이 부정의 철학으로 기울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미도중(曳尾塗中)’의 일화는 장자의 이러한 면모를 잘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장자가 낚시질을 하고 있을 때, 초(楚)의 위왕(威王)이 대부 두 사람을 보내어 재상을 삼으려는 뜻을 전했습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드리운 채 돌아보지도 않고 웃으며 사신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듣건대,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이미 3천년이나 되었다 합니다. 임금은 그것을 비단으로 싸고 상자에 넣어 묘당(廟堂)에 보관한다 합니다. 당신이 그 거북의 입장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기어 존귀하게 되고 싶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겠소?"
하여 돌려보냈다는 일화입니다.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겠다(寧生曳尾塗中)”는 것이 바로 ‘장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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