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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카페'를 닫으며

유시민의 시사카페 <20>

저는 지난 6월 4일 '시사평론가가 꼭 중립을 지켜야 합니까'라는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지와 비판과 질문을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최근 나온 계간 <인물과 사상>에서 그 의견들에 대한 저의 생각을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에 대해서만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공안통치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사카페'의 문을 닫으면서 이 질문에 대답해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저는 프레시안뿐만 아니라 경향신문과 주간 오마이뉴스를 비롯하여 정기적으로 기고하던 모든 칼럼의 집필을 중단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어떤 칼럼도 쓰지 않을 작정입니다. 머지 않아 다시 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싶지만,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그리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면 새로운 공안정국이 조성될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한나라당은 극우정당입니다. 정상적인 우익(또는 보수)과 극우, 정상적인 좌익(또는 진보)과 극좌를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견집단에 대한 관용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보수와 진보는 이견집단을 경쟁자로 간주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지만 상대를 말살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극좌와 극우는 이견집단을 적으로 봅니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견집단의 존재 그 자체를 말살하려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폭력을 동원합니다.

제가 한나라당을 극우로 규정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태도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불관용'을 상징하는 법률입니다. 특정한 이견집단을 격리하고 유폐시키고 말살하는 법률입니다. 한나라당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불관용'의 상징을 지키려고 합니다. 김대중 정부는 한나라당의 반대 때문에 이 법을 폐지하기는 고사하고 개정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자기가 극우신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폭력을 사용하거나 선동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극우파는 유럽의 극우파와 달리 사적 폭력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극우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사적 폭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국가보안법에 의거한 국가폭력으로 '적'을 말살할 수 있습니다.

극우파가 이견집단을 말살하는 데 동원하는 폭력이 사적 폭력이든 국가폭력이든 극우는 극우입니다. 대통령과 장관, 집권당 국회의원들이 국가보안법 '전과자'였던 김대중 정권 아래서도 공안기관들은 여전히 국가보안법에 의거한 국가폭력을 동원해 한총련을 비롯한 이견집단을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될 경우 남북관계는 이른바 '전략적 상호주의'로 인해 경색되고 군사적 긴장은 다시 고조될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국가보안법이 얼마만한 위력을 발휘하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면 공안정국이 도래한다고 보는 두 번째 이유는 이회창씨와 그를 둘러싼 권력집단의 구성원들에게 '도덕적 권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회창씨 개인이 극우적 세계관의 소유자가 아니라 보통의 우익이라고 하더라도 '도덕적 권위'가 없는 권력은 폭력에 의존하기 마련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 비리로 임기 말에 모든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지만 이회창씨는 아들 병역비리 의혹과 세풍사건 등으로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미 도덕적 권위를 상실한 인물입니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경제정책 면에서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를 우대하는 정당입니다. IMF 이후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고용안정성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비롯한 각종 이익집단이 집단적 요구를 표출할 경우 도덕적 지도력이 없는 부자정당이 어떤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법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5년동안 잊고 지냈던 최루탄 가스를 다시 맛보게 될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은 지식인 사회와 정부의 이념적 대립을 부르고 집단적 요구 표출에 대한 '법대로' 대응은 이익집단과 정부 사이의 물리적 충돌을 부를 것입니다. 이런 대립과 충돌이 반복되고 누적되면, 이회창씨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는 공안통치의 터널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될 경우 새로운 공안정국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 이유입니다. 설마 하지 마십시오. 한국사회는 그러한 공안통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양성을 구현하고 있지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유치한 단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공안통치는 결국 좌초하겠지만 우리 국민은 그 과정에서 또 한번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며 이회창씨는 권력자로서 힘들고 불행한 세월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이런 이유 때문에 한나라당에 반대하면서 보수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해 왔고, 이번 대선에서도 극우적 성향이 농후한 이회창 후보보다는 자유주의 성향이 뚜렷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합니다.

이제 칼럼니스트 활동을 접기로 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치세력 사이의 대립과 경쟁에 관해 칼럼을 쓰는 것은 스포츠 중계 해설자가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게임의 흐름, 플레이어의 강점과 약점, 승부를 좌우하는 전략과 전술을 파악해서 해설합니다. 노골적인 또는 교묘한 반칙행위를 지적하는 것도 해설자의 임무입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건 분명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경기장에 반칙이 횡행하는데도 심판이 그것을 묵과하거나 오히려 반칙한 쪽을 편드는 일이 반복된다고 합시다. 해설할 맛이 날 리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운동장으로 뛰어내려가 반칙을 제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칙하는 선수와 반칙을 방조하는 심판을 비난하면서 관중들에게 야유를 보내라고 호소하는 일 정도겠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정치판에서 대립하는 정치세력의 모든 행위는 질적으로 똑같은 정략적 행동이며, 이것을 논평하는 칼럼니스트는 언제나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6월 4일 칼럼에서 이 고정관념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가 칼럼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접는 것은 칼럼니스트가 중립을 지켜야 하느냐 마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갑론을박하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지금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장판이 너무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노무현 후보의 사퇴를 둘러싼 민주당 내부의 정치적 공방은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룰 그 자체를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어서 칼럼니스트이기 이전에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참고로 제가 마지막으로 7월 31일 경향신문에 쓴 칼럼 '배반당한 국민경선제'의 일부를 여기 옮기겠습니다.

"최근 민주당은 국민경선의 취지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스스로 짓밟고 있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사태이다.

민주당은 당원과 국민이 함께 참여한 선거를 통해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노무현을 당의 후보로 확정함으로써 민주당은 국민과 정치적 계약을 맺었다. 경선 과정에서 그가 제시한 정치적 목표와 정책을 승인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대선을 치를 것임을 국민과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진 사태를 보면 민주당은 이런 약속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다.

이인제씨를 비롯한 일부 낙선한 경선후보 진영은 끊임없이 노후보를 공격한다. 민주당을 떠나 다른 정치세력과 손잡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힌다. 백의종군하겠다던 말은 거짓말이었다. 자기 손으로 후보의 사상과 인격을 비난함으로써 정치적 지도력을 의심받게 만들어 놓고, 그 때문에 지지율이 하락하면 다시 지지율 하락을 명분으로 후보교체를 요구한다. 이것은 변명할 여지없이 명백한 경선불복이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짓밟는 반칙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안에서는 이런 반칙행위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는 개인과 계파의 이해관계를 따지는 데 골몰하고 있다. 언론도 다르지 않다. 소위 '반노 그룹'이 반칙을 할 당연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현실을 인정하고 싸움의 진행상황을 중계하면서, 반칙하는 경쟁자와 왜 화합하지 못하느냐고 오히려 반칙을 당한 노무현을 질타한다. 초등학생도 알고 있을 상식에 비추어 판단해 보라. 이것이 과연 공정한 게임인가. 이런 반칙을 그대로 용납하는 사회에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가.

8·8 재·보선이 끝나면 민주당은 신당 창당과 개헌론, 노무현 후보 선사퇴와 재경선 등 정파의 이익을 위해 국민경선의 정신을 부정하는 갖가지 주장이 난무하는 난장판이 될 전망이다. 만약 노무현 후보가 낙마한다면, 국민경선제 도입으로 활로를 찾았던 한국정치는 12월 대선의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의 뜻이 아니라 지역주의적 정치공학이 지배하는 캄캄한 동굴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에게 묻는다. 이럴 것이라면 국민경선을 도대체 뭐 하러 했는가. 당신들은 2백만명의 경선참가 신청자와 7만여명의 선거인단을 놀림감 정도로 생각하는가.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민주당 국민선거인단에 당첨되어 한 표를 행사한 일이 있는 나는, 무시당하고 농락당했다는 배신감 때문에 형언하기 어려운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

민주당의 이른바 '반노그룹'과 '비노그룹'이 게임의 룰을 공공연하게 훼손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흔드는 위협요인입니다. 노 후보가 낙마하거나 정치적 지도력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대선에 나설 경우 우리 정치는 다시금 냉소와 허무주의에 빠지고 한나라당 이회창씨가 집권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불장난이기도 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한나라당이 극우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극우 또는 극좌의 권력 장악을 저지하는 데 참여하는 것이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의무라고 믿습니다.

제가 이 의무를 실천하는 데 칼럼니스트 일이 방해가 됩니다. 누군가 자꾸만 시비를 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논란과 시비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저는 일체의 칼럼 집필활동을 접기로 한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극우정당이라는 저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회창씨의 집권이 공안정국을 부를 것이라는 진단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극우정당의 집권을 막는 것이 공화국 시민의 의무라는 것 역시 저의 주관적인 신념입니다. 저는 저의 견해와 신념을 남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평가와 무관하게, 저 역시 저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받고 싶을 따름입니다.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는 12월 19일 밤을 이회창씨의 대통령 당선을 전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화풀이 소주나 마시면서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공화국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면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시사카페'의 문을 닫습니다. 해설자의 자리를 버리고 관중석으로 들어가 페어플레이를 격려하고 반칙을 응징하는 함성을 조직하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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