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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그러면 안 되죠”

<데스크 칼럼> 96년 잠수함침투사건때를 기억하라

북한이 25일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남북장관급회담 재개를 제의한 데 대해 한나라당은 공식논평을 통해 "우발적 운운하며 자신들의 무력도발 책임을 직접적으로 시인하지 않은 데다 구체적인 재발방지 약속도 없어 진정한 사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어 "북한이 진정으로 남북화해와 협력을 바란다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책임자 처벌에 대한 분명한 의사표시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도 "우리 측이 도발사태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한 데 대해 북한의 분명한 의사표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북한측의 유감표명을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같은 한나라당의 입장에 대해 한 북한전문가는 "한나라당이 그러면 안 되죠"라고 논평했다. 이 전문가의 논평은 지난 96년 9월 동해안 북한잠수함침투사건과 관련한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의 대응과의 비교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북한은 사건 발생(9월 18일) 1백일 후인 12월 29일 외교부 성명을 중앙통신 등을 통해 발표하는 형식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남조선 강릉 해상에서의 잠수함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며 "조선반도에서의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유관측과' 함께 힘쓸 것"이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북한의 '사과'를 받아낸 주체는 한국정부가 아니었다. 미국정부가 중재자로 나서 뉴욕에서 무려 10여차례의 줄다리기 끝에 그야말로 간신히 받아낸 사과였다. 한국정부를 대화상대로도 인정하지 않았던 북한측은 한국을 '유관측'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유감표명이 북한의 사실상 최초의 대남 '공식사과'라는 점에서(북한은 68년 1.21사태나 76년 8월 판문점도끼만행사건에 대해서도 구두로만 유감을 표명했다) 당시 집권당이었단 신한국당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외교에는 상대가 있다는 점, '통석의 념'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일제 36년 식민지지배에 대한 일본측의 사과로 받아들인 전례 등 여러 가지 현실적 조건을 감안, 북한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번에는 어떠했나. 북한당국은 서해교전이 발생한 지 한달이 채 안 되는 시점에서, 한국정부에 대해 전화통지문으로 직접 유감을 표명했다. 남북간 채널을 통해 한국에 대해 직접 유감표명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96년보다는 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의 유감 표명은 5명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간 서해교전사태에 대한 '사과'로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북한이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책임자를 처벌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지만 외교는 상대가 있고 전례(前例)가 있는 게임이다. 한쪽의 일방적 요구대로 풀어가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얘기다. 상대방의 입장과 전례에 비추어 진전된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지난 96년말 사과 대상도 명시하지 않은 북한측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받아들인 것은 이같은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때문은 아니었을까.

북한측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 한나라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칭한 미국이 이번 유감 표명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미 국무부는 25일 논평을 통해 "이번 발표가 북한이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 다른 나라들과 진행 중인 대화에서 진전을 이루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진정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면, 북한의 붕괴를 노린 대북대결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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