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자의 사상
(1) 노자사상의 핵심은 무(無)와 무위(無爲)입니다. 무(無)는 인식론으로서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무위(無爲)는 실천론으로서의 정치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有)보다는 무(無)를 우위에 두고 만물의 본체는 무(無)이며 무에서 유(有)가 나오는 체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는 유(有) 그 자체의 의미를 왜소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용지용(無用之用)에서 볼 수 있듯이 무(無)와 유(有)를 통일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노자의 체계는 통일적 체계입니다.
노자의 체계는 부단히 변화하는 동태적 체계입니다. 고정 불변하거나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발뒤꿈치를 들고 오래 서 있을 수 없으며(企者不立), 강풍은 아침 내내 불 수 없고 폭우는 하루 종일 내릴 수 없습니다.(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23장)
이러한 통일적 관점과 동태적 체계는 당연히 가치판단에 있어서 상대주의(相對主義)로 나타납니다. 유무상생(有無相生), 난이상성(難易相成), 장단상교(長短相較) 등에서부터 미추(美醜), 선악(善惡), 화복(禍福)에 이르기까지 노자의 개념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하리만큼 상대주의적인 관점에 서 있습니다.
화 속에 복이 있고 복 속에 화가 엎드려 있는(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58장)체계입니다. 존재론적 체계가 아니라 관계론적 체계입니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관점은 나아가 가치관(價値觀)의 전도(顚倒)로 나타납니다. 반어적(反語的)이고 역설적(逆說的)인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이지 않는 것, 버린 것, 돌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반문화적(反文化的) 가치를 조명해 내고 있습니다.
(2) 노자는 강한 것보다 약한 것을 더 신뢰합니다. 노자철학은 약자(弱者)의 편에 선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유능제강(柔能制剛)에서 분명하게 피력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 실천론은 약자의 실천론이며 민초(民草)들의 정치학입니다.
그러한 실천론의 핵심이 바로 위무위(爲無爲)입니다. 위무위의 실천론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이 꾸준히 몸을 낮추어 이윽고 바다에 이르는 유장한 호흡을 의미합니다.
'노자'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한 가닥 위로는 강자는 반드시 소멸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爲者敗之 執者失之(29장)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약한 것이 반드시 이긴다는 사실입니다.
비단 강한 것보다 약한 것을 더 신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자'는 動보다는 靜을, 滿보다는 虛를, 進보다는 歸를, 巧보다는 拙을, 雄보다는 雌를 더 높은 가치로 보는 체계입니다.
(3) 노자사상은 마치 수학에서 '0'의 발견이 갖는 의미와 공헌을 중국사상에 기여하였다고 평가합니다.
노자사상은 장자(莊子), 열자(列子) 등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계승되었습니다만 더욱 중요한 것은 유가(儒家) 측에서도 도가를 계속 읽고 해석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노자사상의 탁월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가사상의 관대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노자사상은 중국사상을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데에 매우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노자사상은 상당 부분이 법가(法家)사상으로 계승되기도 합니다. 상선약수를 설명하면서 언급하였습니다만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도 사실은 노자를 계승한 것이라고 평가됩니다.
'노자'는 도교(道敎)의 기본교리로 경전화되기도 하고, 불교사상의 정착과 송대(宋代) 성리학(性理學)의 본체론(本體論)과 인식론(認識論)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입니다.
그 이외에도 문학(文學), 회화(繪畵), 예도(藝道), 무도(舞蹈) 그리고 무위(無爲)의 관조적(觀照的) 삶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에 걸쳐서 깊이와 다채(多彩)를 더하였다고 평가됩니다.
한비자(韓非子)의 통어술(統御術), 병가(兵家)의 허실전법(虛實戰法)도 노자의 영향 하에서 발전하였음은 물론입니다.
(4) 노자의 철학은 근본을 높이고 말단을 줄이는(崇本息末) 철학입니다. 귀본(歸本)의 철학입니다. 본(本)은 도(道)이며 자연(自然)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하였듯이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체계가 노자의 세계입니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25장).
자연을 궁극적 가치로 하여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합니다. 자연이 대상세계(對象世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자연은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self-so)'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은 최고의 독립성(獨立性)과 최대의 안정성(安定性)을 갖춘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노자'의 사상영역은 최대의 포괄성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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