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터키와의 한 판이 남았다. 파천황의 꿈을 피차 접은 마당이라 긴장감이 줄어든 듯도 하지만, 실질적 의미가 매우 큰 한 판이다. 이제 역사가 된 각자의 돌풍이 오심이나 대진운에 의지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좋은 경기를 보여야 한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세계 4강다운 실력과 자세로 가장 까다로운 관객까지도 만족시키기 바란다.
이번 월드컵이 진정한 ‘월드’컵이 되었다고 평하는 것은 유럽과 남미 명가들의 독무대가 깨어졌다는 뜻이고, 그 주인공은 한국과 터키다. 지난 22일 이탈리아-한국 경기장에서는 ‘아시아의 자랑(Pride of Asia)’이라는 카드섹션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팀을 아시아 대표팀처럼 여긴 것은 터키팀을 유럽팀으로 본 것이다.
‘대륙’이라 하면 오세아니아처럼 다른 대륙으로부터 바다로 갈라져 있든가, 남북 아메리카, 아프리카처럼 좁은 지협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아시아와 유럽은 서로 맞붙어 있는 땅이다. 보스포러스-다다넬스 해협에서 흑해까지는 경계선이 바다에 있지만 흑해에서 카스피해 사이는 카프카스 산맥으로, 카스피해와 북극해 사이는 우랄 산맥으로 경계선을 삼는다.
맞붙어 있다 보니 두 대륙에 걸친 나라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랄 산맥 양쪽에 펼쳐진 러시아와 보스포러스-다다넬스 해협 양쪽에 자리잡은 터키다.
러시아는 유럽 국가가 분명하다. 근대 러시아의 발전이 유럽의 변방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시베리아 영토가 광대하다고 하지만 인구는 유럽-러시아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터키는 아시아 쪽이 단연 영역도 넓고 인구도 많다. 수도 앙카라도 아시아 쪽에 있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이 유럽 쪽에 있지만, 지금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도시가 발달해 있어서 도시 자체가 두 대륙에 걸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터키는 더더욱 아시아 쪽이다. 유럽은 기독교세계였고, 15세기 이래 터키가 이스탄불을 점령하고 발칸반도에 진출한 것은 비(非)유럽세력의 침략으로 내내 간주되었다. 산업혁명으로 힘을 얻은 유럽이 터키를 아시아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이스탄불과 그 언저리의 트라키아 지역만을 남겨놓은 것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오스만 터키는 유럽 전체를 상대로 맞섰던 대제국이었고, 이슬람세력의 대표자였다. 1453년 터키의 수중에 떨어져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꾼 콘스탄티노플은 로마와 함께 당시 기독교권의 양대 중심도시였다. 그 함락은 여러 세기 동안 기독교권 확장운동을 상징하던 십자군의 시대를 마감했고, 기독교권은 터키의 동진 위협에 전전긍긍하며 여러 세기를 위축된 모습으로 지내야 했다. 유럽인이 전세계에 진출한 이른바 대항해시대의 위업도 터키제국의 위세를 피해 활로를 찾은 고육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두 대륙을 호령하던 터키제국이 19세기 중엽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들면서 크리미아 전쟁(1853-56)에서 제1차 세계대전(1914-19)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을 유럽국들과 벌였다. 거듭된 패전으로 파국에 이른 터키는 1920년대 초의 공화국혁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케말 파샤(케말 아타튀르크)의 청년터키당이 이끈 이 혁명은 “싸우면서 배운다”는 말 그대로 유럽의 근대화를 뒤쫓는 방향을 모색한 것이었다.
혁명 뒤에도 터키를 바라보는 유럽인의 시각에서 이질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전제주의와 부조리의 나라라는 인식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터키의 배후에 있는 아랍권, 특히 원리주의자들의 시각으로는 가출한 탕아다. 터키는 유럽과 아랍 사이에서 박쥐와 같은 신세에 수십년간 처해 있었다.
공산권 붕괴로 체제를 경직시키던 요인이 해소되면서 터키는 유럽화의 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랜 숙적 그리스와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나토에 이어 EU 참여를 바라보고 있다. 국회에 여성 의원이 차도르를 쓰고 등원한다 해서 물의를 빚을 만큼 정교분리의 원리도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실권을 쥔 군부도 스스로 역할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케말 파샤의 백년 꿈이 이뤄져 터키가 유럽화에 성공한다면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이 터키의 동쪽 국경으로 옮겨오게 될까? 그럴 리는 없다. 터키의 모델인 선진국들은 터키 하나만이 쫓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원리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슬람권에서 이제는 터키가 모델이 되어 세계화의 장벽을 제거해 주기 바란다. ‘문명의 충돌’과 ‘세계화’, 시대의 두 추세가 엇갈리는 자리에 터키는 서 있는 것이다.
터키가 아시아에서 티켓을 찾았더라면 지난 48년간 본선진출 기회를 여러 번 잡았을 것이다. 이번에 어렵사리 유럽 티켓을 쥐고 대륙의 반대쪽 끝에 찾아와 한국과 맞먹는 4강 돌풍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랫동안 추구해 온 유럽화 노력이 한 고비를 넘기는 이제,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자기 존재의 의미도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터키 축구가 아시아와의 연계를 찾는 것은 터키 축구를 위해서도, 아시아 축구를 위해서도, 세계 축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효과를 많이 가져올 것이다. 유럽국가도 못 되고 아시아국가도 못 되던 터키가 유럽국가이면서 동시에 아시아국가가 되는 것이 터키를 위해서나 세계를 위해서나 좋은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여기서 이어 본다.
터키와 한국, 재미있는 맞수다. 아시아의 양쪽 끝에 자리잡고 근대화의 길에 나름대로 매진해 온 나라들이다. 터키가 인접한 유럽에게 연속적인 학습을 해 왔다면 한국은 외떨어진 위치에서 비약적인 시도를 해 온 셈이다. 경제나 축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자기 길에서 얻은 최고의 성취를 보여주며 서로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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