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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감동시킨 한 아줌마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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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감동시킨 한 아줌마의 용기

FBI의 9.11 사전대응 비판한 콜린 롤리

네 아이의 어머니, 여섯 식구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고 있는 한 중년 아줌마의 용기가 지금 미국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 5월 21일 자신이 소속된 FBI(연방수사국)의 최고책임자 로버트 뮬러 국장에게 9.11테러를 사전 예방하지 못한 FBI 본부의 무능과 관료주의를 통렬하게 비난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 콜린 롤리(47)라는 아줌마가 그 주인공이다(본보 5월 25일자 보도).

FBI 미네아폴리스 지부의 요원인 롤리는 6일(현지시간) 미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 출석, 자신이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된 배경과, 앞으로의 FBI 쇄신방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담하게 진술했다. 청문회에 참석한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그녀를 ‘애국자’로 칭송하면서 그녀의 용기와 애국심에 찬사를 보냈다. 한 의원은 롤리를 ‘요원 중의 요원’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사실 롤리의 편지는 9.11테러 사전대응과 관련한 미국내의 논쟁과정에서 중대한 분수령이 됐다.

지난 5월 13일 뉴스위크의 보도를 시작으로 9.11테러를 예방할 수도 있었던 숱한 정보들을 FBI 등 미 정보기관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보도들이 잇따라 쏟아져 나왔지만 부시 행정부는 처음에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민주당에 대해 테러 참사를 정쟁에 이용하지 말라고 꾸짖는가 하면 체니 부통령 등은 ‘추가 테러’ 위협을 경고하는 등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롤리의 편지 내용이 5월 25일 언론에 공개되면서 부시 행정부의 태도는 일변했다. 그 안에 담긴 롤리의 지적이 너무도 정확했고 또 너무도 통렬했기 때문이다. 편지 내용이 알려지면서 로버트 뮬러 FBI 국장은 FBI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앞으로의 쇄신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또 부시 대통령 자신도 지난 4일 “FBI와 CIA가 적절하게 의사소통을 해왔느냐에 관해서는 분명히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정부 측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 예방을 위한 새로운 조치로 국토안전보장부를 신설하겠다는 발표의 시점을 6일 롤리의 의회 청문회가 끝난 직후로 잡은 것도 더 이상 롤리에게 관심이 모아지는 것을 피해보려는 의도가 아니었느냐는 분석이 나올 만큼 롤리는 이제 미 국민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지난 달 21일 뮬러 국장 앞으로 보낸 롤리의 편지는 A4 용지 13쪽에 해당되는 긴 내용이다. FBI 미네아폴리스 지부의 수석 법률고문인 롤리는 이 편지에서 지난해 8월 미네아폴리스 부근에서 체포된 테러용의자 자카리아스 무사위에 대한 수색영장을 워싱턴의 FBI 본부가 허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무사위는 9.11테러와 관련, 현재 미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유일한 생존 용의자로 흔히 ‘20번째 테러범’으로 불린다. 9.11테러 당시 4대의 피랍 여객기중 각 여객기에 5명의 테러범이 타고 있었고, 국방부 건물에 떨어진 여객기에만 4명이 있었다. 따라서 무사위가 8월에 체포되지 않았다면 그도 실제 테러에 가담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롤리는 이 편지에서 “저는 국장님을 비롯한 FBI의 최고위 간부들이 사실을 미묘한 방법으로 감추거나 왜곡하고(shading/skewing) 있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느낍니다.”라고 지적하면서 FBI 최고위 간부들의 9.11 사전 대응 관련 발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일개 지부의 요원이 최고책임자인 FBI 국장을 비판하는 편지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롤리는 네 아이의 어머니이자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사람이었다. 그의 남편 로스 롤리는 전업주부(主夫)였던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은퇴를 2년반 남겨놓고 있었다. 만일 FBI 지도부가 그녀의 편지를 항명으로 받아들여 파면조치라도 한다면 퇴직 이후 연금이 끊어지고 노후대책도 막막할 지경이었다.

지난달 25일 그녀의 편지 내용을 처음 보도한 시사잡지 타임 등의 보도에 따르면 롤리는 사전대응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5월 초순, 사흘 밤을 꼬박 새우며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에 사무실로 나가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흘 밤을 걸려 편지를 작성하고도 롤리는 한동안을 고민해야 했다. 결국 지난 5월 21일 용기를 내 자신의 편지를 로버트 뮬러 FBI 국장 앞으로 발송했다.

또 자신이 직접 워싱턴으로 날아와 편지의 사본을 미 상원 정보위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당초 FBI는 이 편지를 기밀로 분류했다. 그러나 이틀 후인 5월 23일 이 편지의 존재가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 편지는 워싱턴 정계의 최대 화제가 되었다. 미 의회는 그녀를 9.11 관련 청문회에 부르기로 결정했고 뮬러 FBI 국장은 이 편지를 이유로 그녀에게 어떠한 보복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히려 그녀의 비판을 바탕으로 FBI를 쇄신하겠다고 약속했다.

얼굴을 뒤덮을 듯 커다란 안경에 수수한 옷차림으로 6일 청문회에 나온 롤리는 “뮬러 국장에게 보낸 나의 편지가 이토록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나는 진정 FBI를 사랑한다”며 자신의 편지가 FBI의 앞날을 걱정하는 충정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했다.

그녀는 또 “FBI는 9.11 이전 실수를 저질렀다”고 분명하게 지적하면서 “내 편지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거기에도 실수가 있다. 나 자신도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라며 과거의 잘못을 규탄하기보다는 앞으로의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런 그녀에 대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롤리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6일자 칼럼을 통해 “그토록 핵심적인 정보를 (미 정보기관들이) 잘못 다뤘음을 밝혀내는 데 있어 롤리만한 역할을 한 사람은 없다”고 칭찬했다. 워싱턴포스트도 7일자 ‘용감한 요원(Outspoken Agent)' 제하의 기사를 통해 롤리의 용기와 성실성에 찬사를 보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롤리의 행동은 결코 이름을 날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선 그녀 자신이 편지가 공개된 이후 일체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으며 가족들에 대해서도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피플’을 비롯한 여러 언론매체들이 그녀의 친정 부모(래리 체니, 도리스 체니)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부모들은 딸의 뜻이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한다.

롤리는 아이오와주의 시골, 인구 3천6백명의 뉴햄프톤에서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꿈은 어렸을 때부터 FBI였다. 초등학교 5학년때 FBI에 편지를 보내 FBI 소개책자를 받아볼 정도였다. 아이오와 법대를 졸업한 그녀는 1980년 FBI에 들어갔다. 1990년부터 FBI 미네아폴리스 지부에서 대변인 등으로 활약한 롤리는 동료들 사이에서 유능하고 정직한 요원이자 자상한 어머니로 통한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미네아폴리스 지부장을 역임했던 더그 도민은 “롤리는 결코 인기를 탐하는 사람이 아니다”면서 “이 편지를 쓰면서 그녀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든지 그녀는 사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6일 청문회에 콜린 롤리와 함께 동행한 남편 로스 롤리는 “물론 나는 그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우 미국적인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골에서 태어나 자신의 꿈을 이루고, 또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행한 발언이 정당한 관심과 대우를 받는 이런 풍토야말로 미국의 강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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