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러 양국의 최근 핵무기 대량감축 합의에 대해 진정한 군비감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미국의 주장에 의해 감축될 핵무기의 핵물질을 완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이 저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장된 핵물질은 유사시 핵무기 제조에 다시 사용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테러리스트에 탈취돼 핵테러에 사용될 가능성마저 있다.
이와 관련, 감축 핵무기에서 추출된 핵물질을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에 관한 국내 핵공학 전문가 의 글을 싣는다. 필자 강정민 박사는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지난 98년부터 2년동안 미 프린스턴대 핵비확산ㆍ핵군축 그룹 연구원으로 일했다. 지난 3월 22일 프레시안에 북한 핵사찰과 관련 '미, 압력만으론 조기사찰 어렵다' 를 기고한 바 있다. 편집자
지난 24일 미국과 러시아는 양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 핵무기 약 6천기를 향후 10년간 1천7백 ~ 2천2백기 수준으로 대폭 줄이기로 공식 합의했다. 이 같은 양국의 대량 핵감축 합의의 이행은 인류 전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초강대국간의 핵전쟁 가능성을 크게 줄여 세계 평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감축될 핵무기의 핵탄두 전량을 영구 폐기할 것을 주장한 러시아에 반해 비상시 사용할 수 있게끔 필요량(약 2천4백기)의 핵탄두를 저장한다는 미국의 주장이 관철된 이번 합의는 핵군축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킨다.
더군다나 야구공만한 크기에 무게 4-5 kg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핵탄두 내의 플루토늄은 방출되는 방사선도 미약하여 도난에 취약하다. 만일 감축된 핵탄두의 플루토늄이 급진적 테러집단들에게 탈취된다면 핵테러 등 심각한 국제 안보상의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
그러므로 이번 미-러 군축협정의 결과 감축될 핵탄두의 플루토늄 전량은 핵무기로 재사용하기 어려우며 또한 테러집단들로부터 탈취되기 어려운 형태로 조속히 처분되어야 할 것이다.
미-러 각국은 1991년 서명한 전략핵감축조약(START I)의 이행 결과 처분되어져야 할 잉여 핵탄두 플루토늄을 이미 각기 50톤씩 보유하고 있다.
핵탄두 플루토늄의 처분방법으로는 우라늄-플루토늄 혼합핵연료인 ‘목스(MOX)’로 만들어 원자로에서 태우거나 고방사능물질과 섞어 ‘고형화’ 형태로 만들어 처분하는 두 가지 방법이 주로 연구되어 왔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의 핵탄두 플루토늄의 처분에 관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미-러 양국의 핵탄두 플루토늄 처분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핵탄두 플루토늄의 처분에 있어서 목스 방법과 고형화 방법 모두를 고려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목스 방법은 원자력발전소의 목스 사용 반대 여론 때문에, 고형화 방법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기술적 문제들 때문에 발목이 잡혀있다.
반면, 목스 방법만을 고집하는 러시아는 핵탄두 플루토늄으로 만든 목스를 태울 수 있는 능력이 연간 2톤밖에 되지 않으며 게다가 분리된 민간용 플루토늄도 현재 32톤 넘게 재고가 쌓여 있어서 핵탄두 플루토늄을 전량 처분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미-러의 핵탄두 플루토늄 처분관련 현 상황을 고려할 때 START I의 이행결과 감축된 핵탄두 그리고 이번 신 조약으로 감축될 핵탄두의 플루토늄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분리된 상태 그대로 저장 보관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최근, 분리된 플루토늄을 테러집단들로부터 탈취되기 어려운 형태로 경제적이면서도 조속히 처분시킬 수 있는 ‘저장목스’라는 새로운 방법이 독일 및 미국의 핵군축 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어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저장목스란 분리된 플루토늄을 목스처럼 만들기는 하지만 원자로에서 태우는 것이 아니라 수 톤의 금속 저장조 속에 사용후 핵연료와 함께 집어넣어 두는 방법을 말한다. 사용후 핵연료는 고방사능 물질이기 때문에 사용후 핵연료와 함께 저장된 목스를 탈취하기란 아주 어렵다.
미-러 양국은 테러집단에 의한 탈취 여하에 따라 세계 안보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는 감축 핵탄두 플루토늄을 저장 보관할 것이 아니라 조속히 처분하고, 그 처분에 있어서 저장목스 방법을 진지하게 고려할 것을 필자는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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