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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주적' 표현, 과연 필요한가

"차라리 93년 이전 국방백서로 돌아가자"

북한을 방문중인 임동원 대통령 특사가 북한의 '주적론' 철회 요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4일 오전 북한의 중앙방송이 (주적론 철회 요구 등) 남북특사간 회담 내용을 일부 공개하자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다소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북측 대표단이 '주적론'을 제기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조선중앙방송은 "우리측은 남측이 역사적인 평양상봉 때 주적론이라는 것이 더는 없을 것이라고 하고도 계속 그것을 제창하면서 전쟁소동을 일으키는 데 대하여 엄중시하고 6.15공동선언 이행에 대한 근본입장부터 바꿀 데 대해서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의 한 당국자는 남북정상회담 때 '남북이 앞으로 서로 적대적 태도를 취하지 않기로 논의한 바 있'을 뿐 주적론 철회를 약속한 적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평양을 방문중인 한국대표단은 이같은 북한측 요구에 대해 양측간 군사적 신뢰구축 토대 마련을 위해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하자고 역제의한 것으로 보도됐다.

어쨌거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임동원 특사는 '주적론' 문제로 북한과의 협상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 강경태도에 빚은 한반도 안보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북한을 찾은 그가 '주적론'이란 뜻밖의 암초를 만난 셈이다.

그러면 '주적론'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왜 문제가 되는가. 전문가들은 '주적론'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정부의 공식문서(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표현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북한의 군사력이 한국의 안보에 최대 위협이라는 사실은 남한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동의하는 사실이다. 북한이 주한미군을 비롯한 한미 연합군사력을 자신의 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을 정부 공식문서에 명기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게다가 '북한=주적'이란 표현이 국방백서에 등장한 것은 남북기본합의가 이루어지고도 4년여가 지난 1995년의 일이다. 북한전문가인 이종석 박사(세종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1995년 이전까지 정부 공식문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명기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1994년 3월 북한핵문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판문점회담에서 북한측 대표 박영수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국민들의 대북감정이 고조되면서 95년 처음으로 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두 정상이 서로 얼싸안고 화해와 협력을 이루자고 약속까지 한 마당에 과연 '주적' 표현을 고집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남과 북의 관계는 어느 한 쪽이 죽어야 상대편이 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통해 모두가 사는 상생의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석 박사는 '주적' 표현을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로 대략 다음 3가지를 꼽는다(별첨 자료 참조).

첫째, 탈냉전 이후 특정국가를 적으로 표현하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대만의 경우 중국을 '주요적인(主要敵人)으로 표현한다가 1980년대부터 '최대 위협'으로 표현을 바꿨으며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이스라엘도 시리아, 레바논을 적대국으로 간주하지만 공식문서에는 명기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북한의 경우도 '주적'이라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형법에 '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해석상 이는 미국과 한국이겠지만 그 익명성 때문에 딱 집어서 그렇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둘째, 굳이 '주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북한의 위협에 대한 우리의 대비태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국방백서 전체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다는 것을 명시적ㆍ묵시적으로 전제하고 씌어져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의 발전을 고려해 북한에 대한 이중적 인식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적' 표현을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북한은 우리에게 '적대적 형제' 또는 '경계와 협력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인식으로 다가와 있는데 이 미묘한 이중성을 '주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주적론'의 문제는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 안보태세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북한을 자극시키지 않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표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종석 박사는 한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1993년 이전의 국방백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별첨 이종석 박사 논문중 제3안). <국방백서 1992-1993>에서는 국방목표를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적인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고 돼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국방부는 '주적' 표현을 고집하는 국내 일부 보수세력의 반발을 의식한 탓인지, 지난 해 국방백서 개정을 올해로 미루었다. 그러나 우리 대북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전쟁이나 대결에 의한 북한 붕괴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주적' 표현의 개정 문제는 전향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주적' 표현을 놓고 남과 북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한반도의 상황이 너무도 엄중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종석 박사가 지난 해 세종연구소가 발행하는 <정세와 정책> 11월호에 발표한 <'주적' 표현의 재검토 필요성과 개선 방향> 전문이다.

***'주적' 표현의 재검토 필요성과 개선 방향**

***1. '주적' 표현의 연혁과 문제의 발생**

"북한은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실존하는 최대의 위협 요소이다. 국군은 북한을 비롯한 어떠한 외부세력의 침략으로부터도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국민이라면 이 말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이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공유해 온 인식이었으며, 남북화해시대로 이행하고 있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이러한 인식과 대비를 하고 있다고 해서, 북한을 공개적으로 '적'이라고 특별히 명시(明示)하여 주의를 환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은 논리와 상황에 맞지 않을 뿐더러 전략적인 면에서도 스스로 운용의 폭을 좁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략적 측면에서 볼 때, 안보의 증진은 물리적인 대북 억지력의 증강과 동시에 북한의 호전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화해협력정책을 통하여 성취되는데, 북한을 '적'으로 명시하는 경우, 후자의 전략 운용의 폭을 크게 좁히게 된다.

이 '적'과 관련한 논란은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主敵)이라고 표현하면서 발생하였다. 한국 국방사(國防史)에서 '주적'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였다.

1972년 말에 정부가 국방목표를 설정할 때만 해도 ꡒ적ꡓ 또는 ꡒ주적ꡓ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1년에 와서 국방목표를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로 규정하였으며, 이에 근거해서 1988년에 <국방백서>가 최초로 발간될 때, 국방목표를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적은 해석상 북한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직접 북한을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익명성(匿名性)의 '묘미'가 있었다.

그런데 1994년 3월 국방부는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이는 군사적 측면에서 북한에게 소련이라는 동맹국의 상실과 중국과의 동맹관계 약화를 안겨 주었다)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제반 안보정세의 변화에 따라 국방목표를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로 위협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부분 수정하면서 '적'이라는 용어를 삭제하였다.

이를 정치권, 언론 등에서는 '북한=적'의 등식을 없앤 것으로 인식하고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특히 1994년 3월은 북핵문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판문점 회담에서 북한측 대표 박영수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국민의 대북감정이 격앙되어 있던 때라 이 문제가 필요 이상으로 부각된 측면이 있었다.

결국 1995년 <국방백서>에서 처음으로 '주적' 표현이 명시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국방력의 현격한 열세와 경제력 격차도 드러나지 않았을 때도 사용하지 않았던 '주적' 표현이 국군의 괄목할 만한 전력 신장이 이루어지고,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30배에 달하며, 사회주의가 몰락한 상황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는 어색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현재 '주적' 표현을 두고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북한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최대 요소라고 해서 그것을 '주적'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가의 문제다. 즉 논리적, 보편적 차원에서 '주적'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6.15 공동선언 이후 만들어진 <국방백서 2000>에 이 용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자, 북한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화해하자고 해서 휴전선을 뚫어 철도ㆍ도로를 연결하면서도 공공연히 우리를 주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인가" 하고 강하게 반발하며 남북간의 군사회담을 지연시키는 중요한 구실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즉, '주적' 표현이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상황 변화를 담아 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소모적으로 남북관계 진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 '주적' 표현을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주적' 표현의 재검토 필요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적 개념'이라는 용어부터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적 개념'이라는 말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개념'이란 어떤 사물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국방백서>상의 <주적>과 관련해서 문제시하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인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이 우리의 주적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이 '인식'이며,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표현'인 것이다. 즉, 오늘날 '주적' 문제의 핵심은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과 '표현'의 문제인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인식과 관련하여 다양한 입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대체로 북한이 우리의 최대 위협요소임과 동시에 화해협력의 대상이라는 이중성을 지닌 대상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물론 군사 안보적 관점에서는 이 위협요소라는 점이 가장 핵심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이 위협요소를 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정세변화를 반영해서 주요 경계대상 정도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물론 북한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아직 우리와 대치하고 있으며, 우리를 파괴할 충분한 군사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이 남북 화해협력을 원하면서도 아직 북한을 적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군의 입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마 이러한 대북인식이 '북은 우리의 형제이며 협력 파트너'라는 인식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신뢰구축이 현재보다 훨씬 높은 단계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인식'이 아니라 '표현'이다. 과연 공식적 국가문서이며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국방백서>에 '주적인 북한'이라는 표현을 명기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주적'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첫째, '주적'이라는 말은 부적절한 표현이다. 우리의 대중용 국어사전에서도 '주적'이라는 용어를 찾을 수 없다. 굳이 '주적(主敵)'을 영어로 표현하자면 'primary enemy' 혹은 'main enemy'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는 '전시에 복수의 적을 상대할 때 제1의 적을 부차적인 적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정전상태는 지속되고 있으나 실제상의 전시상태가 아니며, 부차적인 적을 규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주적'이라는 용어는 기본적으로 비합리적인 표현이다.

둘째, '주적'은 보편적이지 못한 표현이다. 냉전시대에 일부국가에서 '적'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그러나 탈냉전 후 이 표현은 사라졌다. 대신에 세계 각 나라들은 국방백서에서 대체로 특정국가를 지목하지 않고 '위협요인'으로 명기하고 있다. 우리와 유사한 안보위협을 느끼고 있는 대만의 경우는 중국을 '주요적인(主要敵人)'으로 표현하다가 1980년대부터 '최대위협'으로 표시를 변경하였으며, 이스라엘은 시리아, 레바논을 적대국으로 간주하나 공식문서에는 명기하고 있지 않다.

북한의 경우 실제적으로 미국을 적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도 여전히 적대세력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주적'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형법에 '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해석상은 미국과 남한이겠으나 그 익명성 때문에 명증하게 그렇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셋째, '주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북한의 위협에 대한 우리의 대비태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주적' 용어를 빼도 <국방백서>에서의 북한의 위협 강조는 훼손되지 않는다. '주적' 표현과 상관없이 <국방백서>는 이미 북한을 적 혹은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상정하여 기술하고 있다.

즉 <국방백서>의 편제를 보면 제1부 3장(북한정세 및 군사위협); 제2부 1장(국방정책의 기본방향); 제2부 3장(긴장완화 및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 등이 모두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다는 것을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전제하고 서술된 부분들이다.

그리고 제2부 제2장 3절(우리 군의 대비태세)에 명시된 "우리 군은 북한의 어떠한 위협과 도발에도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튼튼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처럼 사실상 우리의 <국방백서>는 도처에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적' 용어가 사용된 제2부 제1장에서도 구성상 제1절(국가목표와 안보정책)과 2절(대북정책)에서 북한의 무력도발에 단호히 대응한다는 점을 천명했기 때문에 굳이 제3절 1의 국방목표 부연 설명과정에서 "주적인 북한의 현실적인 위협뿐만 아니라-"는 식으로 '주적'을 명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넷째, 남북관계의 발전을 고려한 북한에 대한 이중적 인식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적' 표현을 국가 수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북한은 우리에게 '적대적 형제' 혹은 '경계와 협력의 대상'이라는 이중적인 인식으로 다가와 있는데, 이를 '주적'이라는 표현으로 담아 낼 수는 없다.

비록 우리가 원하는 만큼 빠른 속도나 넓은 폭은 아니지만, 6.15 공동선언 이후 북한의 모습이 과거에 비해 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남북의 군사적 대결선에 파열구를 내고 철도, 도로를 연결하며, 민족복리를 위해 남북경제공동체구성을 제안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주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모순적인 측면이 있다.

***3. '주적' 표현의 개선방향**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재 <국방백서>에 나타난 '주적' 관련 논쟁은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문제라고 본다. 인식론적으로 볼 때, 군인들에게 자신과 대치하고 있는 상대방 전투병력은 전시에는 적이며 평시에는 위협요소이다.

현재 남북관계는 형식상으로는 정전상태이며, 실제상으로는 비전쟁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남북간의 군사적 대치상태로 인한 긴장은 지속적으로 완화되고 있으나, 아직 적대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논리적 차원을 떠나서 작전 현장에서는 '적'이라는 표현이 비공식적으로 쓰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평시 혹은 비전시(非戰時)에 공식적 차원에서 '주적'이나 특정국가를 지칭해서 '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비전략적인 사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화해협력하자는 상황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자극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주적' 표현을 삭제하고 대신에 관련 부문의 표현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국방백서>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다음의 3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① 제1안: '주적' 용어의 삭제와 표현 보완

현재의 <국방백서 2000>을 보면, 국방 목표를 규정하고, 이를 부연설명하는 과정에서 "첫째,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함은 주적인 북한의 현실적인 군사위협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모든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는 것을 말한다."(53쪽)로 되어 있다.

여기서 이 문장을 〈첫째, --라함은 우리의 자유민주적 질서를 해치거나 생존권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외부의 군사적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도 국가를 보위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것을 말한다〉는 식으로 개정하는 것이다.

② 제2안: 부연설명 방식의 변경

기존의 부연설명은 국방목표의 어구를 동어반복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결국 중언부언의 느낌을 주고 있다. 따라서 어구 설명식이 아니라 국방목표가 제시되는 논리적, 현실적 배경(이유)을 밝히는 것으로 내용을 전환하고, 이 과정에서, '주적' 표현을 삭제하는 것이다.

③ 제3안: 익명의 '적' 표현 사용(93년 이전 <국방백서>로 회귀)

현재 상황에서 '주적' 문제는 논리와 합리성의 영역을 넘어서서 정치적, 이념적 갈등으로까지 확산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상황에서 이 문제를 단순히 합리적 전략선택의 눈으로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앞에서 제시한 1, 2안처럼 '주적' 표현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논란이 야기되기 전의 <국방백서>의 내용으로 돌아가는 편이 그나마 차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즉, <국방백서 1992~1993>에서는 국방목표를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적인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16쪽)로 규정하고,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는 자유민주의 이념하의 국가보위와 영구적 독립보존이라는 국가목표를 군사적 측면에서 방위하는 것이며"로 설명하고 있다.

바로 이 내용을 수용해서 국방목표는 그대로 두고 기존의 관련 부분 부연설명을 〈첫째, --라함은 우리의 자유민주적 질서를 해치거나 생존권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외부의 군사적 위협이나 敵으로부터도 국가를 보위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것을 말한다〉로 개정하는 방안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적이 누구인가는 내면적으로 규정할 수 있어도, 외형적으로는 익명성을 갖게 되므로 현실적인 국민정서와 남북관계의 발전이라는 양자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사료된다.

***4. 한국 안보태세의 방향**

오늘날 '주적' 문제는 자체의 합리성과 적실성 여부를 떠나서, 그 개선이 마치 정부의 안보의지를 떠보는 시험장처럼 되었다. 뜨거운 사회적 논쟁과 정치권에서의 갈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안보의 합리적 운영의 문제이지, 결코 정쟁사항이 아니라고 본다. 어떤 정당이 국정을 운영해도 합리적 안보와 효율적인 대북정책 구사를 위해서는 이 문제가 넘어야 할 벽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제 '주적' 표현 문제는 재검토할 시점에 왔으며, 어떤 형식이든 고쳐 나가야 한다고 본다.

만약 '주적' 표현의 변경을 안보의식의 취약으로 비난한다면, 1994년 문민정부시절 '적' 표현을 삭제했던 국방수뇌부는 안보태세가 해이한 인물들이 된다. 아마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안보 '합리성' 제고의 문제를 마치 애국심의 부족이나 안보 해이론자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한편 국방부에서 발간하는 <국방백서>는 우리 군의 군사적 안보태세를 보여 주는 문헌인 동시에 정부의 안보관계의 대표적인 공식문서이며 외교 문서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그 내용은 확고한 안보의지와 안보 능력배양의 프로그램을 담되, 표현은 신중해야 한다. '주적' 표현이 대표적인 예다. 아울러 앞으로 발간될 <국방백서>에서 고려해야 할 재검토 사항을 몇 가지 추가로 첨언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구체적인 전략이나 전력(戰力) 부문을 상술하는 것이 필요한지 검토가 요구된다. 이러한 형식은 상대방(즉, 북한)에게 우리가 지닌 자신에 대한 인식과 정보 수준을 보여 주게 된다. 따라서 이는 <국방백서>가 밝힌 대북인식과 정보가 정확하다면 북한의 전략전술 변화의 자료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며, 우리의 대북인식과 정보에 오류가 있다면 그 자체로서 북측에 이용될 소지가 크다.

둘째, <국방백서>가 비공개문서가 아닌 상황에서 우리의 국방전략과 전력을 어느 정도나 노출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리고 『국방백서』는 이와 관련해서 적정점을 지키고 있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국방백서> 상의 우리의 국방태세 및 전력현황이 기존 국방부의 비밀등급과 관련해서 부정합(不整合)한 점이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최근 미국의 테러참사가 보여 주듯이 테러 등 새로운 안보 위협요소에 대비하는 부분이 강화되어야 한다.
안보는 공기와 같은 존재다. 평소에는 그 소중함을 모르나, 공기가 없어지면 생명체가 죽는 것처럼, 안보가 위태로우면 국가주권이 상실될 수 있다. 바로 이 안보를 지키는 원동력이 탈냉전, 사회주의의 몰락, 북한의 체제위기와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새로운 안보정세에 직면하여 이제는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 아니라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되어야 한다. 개개의 군 지휘관과 장병이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로 국가를 보위할 때 안보는 참으로 증진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장병이 조국의 방선(防線)에서 총을 들고 서 있는 이유가 '내가 사는 공동체가 소중히 가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으로 될 수 있도록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이성의 눈을 뜨고 노력해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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