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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장악이 한반도 평화보다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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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장악이 한반도 평화보다 중요한가

<데스크 칼럼>임 특사 방북 바라보는 야당의 短見

***뉴욕타임스의 오보-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지**

미국 최고의 권위지라는 뉴욕타임스가 오보를 냈다. 그것도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생존이 걸려 있는 중대한 사안에 관해.

지난 25일 뉴욕타임스 인터넷사이트에 실린 임동원 특사의 북한 방문 기사는 남과 북이 “고위급 사절을 교환하기로(they would exchange high-level envoys)" 했으며 임동원 특보가 ”오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향해 떠났다(left for North Korea today as a special envoy)"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또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이 구체적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자세한 것은 임 특사가 북에서 돌아와야 알 수 있을 것(details would be known once Mr. Lim returned from the North)"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남북 대화 재개키로’라는 이 기사의 제목만이 사실과 부합할 뿐, 위의 내용들은 사실과 다르다. 남과 북이 특사 교환을 합의한 바도 없으며 임동원 특사는 25일 서울을 떠난 게 아니라 4월초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도쿄발로 하워드 프렌치라는 기자가 작성한 이 기사는 한국의 연합뉴스를 근거로 했다. 연합뉴스를 잘못 번역한 것인지, 이 기자가 뭘 착각한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혹시나 해서 26일 이 기사를 인터넷에서 다시 확인해 보니 어제 기사 그대로다. 종이신문에 어떻게 보도됐는지는 확인해 볼 수 없었다. 어쨌든 인터넷판 기사만 보면 분명한 오보다.

우리나라의 모든 신문에 1면 머리로 보도된 기사를, 미국 최고의 권위지라는 신문이 이토록 부실하게 보도할 수 있을까. 미국인들 일반의 한반도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닐까.

***부시독트린-미 패권 유지 위해 기꺼이 무력 사용**

미국의 시사교양 주간지 <뉴요커> 최근호(4월 1일자)는 9.11 이후 노골화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군사패권전략을 소상하게 보여준다. 니콜라스 레만이 작성한 ‘다음번 세계질서(The Next World Order)'라는 장문의 기사에 따르면 부시 정권의 세계전략의 핵심은 “앞으로 영원히 미국의 라이벌이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같은 사태를 예방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핵심적 국익이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꺼이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같은 세계전략이 입안된 것은 이미 10여년전 일이라고 한다. 냉전 종식 직후인 1990년 딕 체니 당시 국방장관의 주도하에 마련된 ‘521 페이퍼’가 그것이다. 90년 5월 21일 부시 대통령(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에게 보고됐다 해서 이같은 이름이 붙은 이 정책보고서는 냉전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그 골자는 “미국은 또다른 강국의 출현을 막을 수 있으며 또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 내용은 지난 92년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바 있는데 아마도 체니 일파의 일방주의적 세계전략에 불만을 품은 미 정부내 관리가 고의로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 체니 측은 이같은 보도를 즉각 부인하고 보다 온건한 내용의 보고서를 다른 언론에 유출시켜 논란을 종식시켰다고 한다.


1993년 백악관을 클린턴에게 빼앗긴 체니 일파는 8년을 절치부심하며 권토중래를 노렸다. 지난 해 백악관을 탈환한 이들은 10여년전부터 품어왔던 세계전략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니콜라스 레만은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로 2가지를 꼽는다.

***9.11 이후 더욱 오만해진 미국**

첫째, 미국인 사상자의 발생을 극도로 꺼리는 이른바 베트남 신드롬이 크게 약화됐다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취임 초 소말리아에서 발생한 ‘블랙호크 다운’ 사건 이후 미 국민은 전쟁 희생자 발생을 극히 혐오한다는 전제하에 외국에의 군사개입을 가급적 자제했다.

그러나 1999년 미국의 한 연구소(Triangle Institute for Security Studies)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일반 대중은 정부 관리나 군 장교들에 비해 전쟁 희생자 발생에 훨씬 덜 민감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미 국민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획득을 저지하기 위한 전쟁이라면 최대 3만명의 미군 전사자 발생을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베트남전 때 미군 전사자는 약 5만8천명).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론 9.11테러 사태다. 9.11을 계기로 미국의 일방적 무력 사용에 대한 미 국내의 견제력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 안보정책의 조타수라고 할 수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다.

라이스는 부시 집권 전인 지난 2000년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논문에서 주로 ‘세력균형’에 관해 논의했다. 경제력 등 미국의 국력이 전성기를 지났으므로 앞으로는 19세기 유럽대륙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은 열강들의 합종연횡에 의한 세력균형정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그러나 9.11 이후 라이스의 태도는 사뭇 달라졌다고 레만 기자는 지적한다. 테러라는 공동의 적이 출현하면 거의 모든 국가들이 미국과 생산적이며 건설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미국은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는 것이다. 라이스 보좌관은 올 봄 안에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세계전략을 총정리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같은 미국 관리들의 자신감은 국무부 부장관 자리를 놓고 강경파 폴 월포비츠와 경합을 벌였던 리처드 하스(현 국무부 정책기획단장)의 변모에서도 잘 드러난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하스는 지난 97년 자신의 저서 ‘내키지 않는 보안관(The Reluctant Sheriff)'에서 미국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아 있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이라며 ’전통적 열강정치, 즉 세력균형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최근 레만 기자와 만난 하스는 ‘주권 제한’이란 새로운 독트린을 제시했는데, 그 골자는 테러 저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등 민주국가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나라에 대해 미국은 무력 사용을 포함한 개입의 권리, 즉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미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는 언제든지 손을 봐주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와 야당의 정치적 상상력**

최근 북한과 관련한 부시 행정부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1월 말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지목하더니 이달 들어 북한을 미국의 선제 핵공격 대상국으로 지명했고, 북미 합의에 따른 ‘북한의 핵동결 준수’를 보증하지 않겠다며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을 뒤집어버렸다. 특히 ‘핵동결 준수’ 보증 거부는 북미 관계 개선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합의의 파기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불길한 전조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전쟁위기가 다시 한번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이미 미국은 지난 94년 북한과의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또 5027계획이다 뭐다 해서 정교한 한반도전쟁 시나리오를 준비해 두고 있으며 매년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부시 행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막기 위해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강제 수색하자는 의견까지 제시되고 있는 형국이다.

뉴욕타임스 기사가 보여준 한반도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세계적 패권을 영원히 유지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오만함을 고려해 보면 미국은 제 나라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임동원 특보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런데 임 특사 방북에 대한 야당과 일부 신문의 반응이 가관이다.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논평에서 “갑작스런 특사 파북에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면서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도 얻지 않은 채 밀실에서 엄청난 퍼주기 같은 이면거래를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 정책위원회는 “선거를 앞두고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구걸하거나 김대중 대통령의 재방북이 추진된다면 국민과 함께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26일자 사설에서 “특사 파견이 성사된 과정을 놓고 이미 정치적 의도 등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임 특사의 활동이 “무슨 비밀거래 하듯 음험한 분위기를 풍겨서는 역효과를 낼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임 특사 파견은 ‘김정일 답방 구걸용’이자 ‘대선(大選)용 신(新)북풍’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대선을 앞둔 정국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남북관계가 국내정치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지난 4.13 총선에서 드러난 것 아닌가. 무엇보다도 남한에서의 정권 장악이 한반도의 전쟁 위기 방지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한반도 남쪽에 갇혀 버린 이들의 좁아터진 정치적 상상력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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