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마르크시즘을 갖고 고민했던, 그리고 벗어난 사람들이 인간의 깊이가 있고 인생의 멋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깊이나 멋이 없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내가 잘 아는 주변의 인물들 가운데 이영근(李榮根)씨와 이병주(李柄注)씨를 꼽을 수 있다. 창정(蒼丁) 이영근씨는 해방 무렵 여운형(呂運亨)씨를 따랐고 그 후 조봉암(曺奉岩)초대 농림부장관의 사실상의 비서실장을 했으며 일본에 망명해서는 통일일보를 중심으로 통일운동을 집요하게 전개하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아깝게 타계한 분이다. 대단히 근엄하고 도덕성이 강하다.
나림(那林) 이병주씨는 우리가 잘 아는 ‘지리산’ ‘관부연락선’ 등의 소설가. 6·25때 인민군 문화공작대원이 되어 ‘살로메’를 공연한 것을 내세우기도 한다. 도덕적으로 도덕·부도덕을 벗어나 있는 인물이었다. 여하튼 그 두 분과 친했으며 각각 다른 차원으로 존경하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내가 잘 아는 사람 가운데 인간의 깊이나 인생의 멋에 있어서 존경스러운 이로는 단연 전옥숙(全玉淑) 여사를 손꼽겠다.
전 회장과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면서도 아픈 데를 새삼 건드리기 싫어 과거를 물어 본 적이 없다. 다만 주변의 이야기로는 해방후 여고때 좌익활동에 관계했다가 고생을 했다 한다. 해방후는 모든 정당이 합법이었고 거의 반반으로 세가 갈라져 있었으니 그 과거가 특기할 만한 것은 아니다.
먼저 말해둘 것은 경상도 통영 출신인 전 회장은 대단한 미모라는 것이다. 가냘픈 몸매, 약간 긴 얼굴, 오뚝한 코, 절세의 미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대의 미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 후지(富士)테레비의 서울지국장을 지냈다는데 30여년전 내가 처음 만났을 때는 계간인 한일문예(韓日文藝)를 발행하고 있었다. 그 후 시네텔(Cinetel)이라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제작·공급회사의 회장으로 활동했는데 시네텔은 시네마와 텔레비전의 합성어이다.
몇해전 오쿠라 가즈오(小倉和夫) 주한 일본대사 환송만찬에서 전 회장, 임권택(林權澤) 감독 등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었다. 내가 35년쯤 전에 조선일보 문화부장 때 임 감독 작업현장에서 가서 술을 먹은 일이 있다고 하니까 임 감독은 “아! 바로 그때 그 영화의 제작자가 전 회장이 아닙니까”한다.
시네텔의 회장으로 전 회장은 직접 취재도 했다. 킬링필드로 악명 높은 캄보디아에 그 후 한국사람으로는 처음 입국하여 총리를 인터뷰하는 등 취재하여 그 프로그램이 우리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는 것을 나도 보았다.
한국 남성 가운데 일본통이라면 어쨌든 김종필씨나 박태준씨를 손꼽아야겠다. 여성 가운데에서는? 망설여질 것이다. 그리고 한참 생각을 굴리다가 결국 전옥숙 회장으로 낙찰될 것이다.
오래전 이야기인데 일본의 세 가지 정신적 지주는 동경대학, 아사히(朝日)신문, 이와나미(岩波)출판사라고 말해진 적이 있다. 이와나미에서는 좌파 자유주의적인 세까이(世界)라는 월간지를 내고 있는데 그 책임자는 일본 지성계의 거두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이다. 야스에는 나중에 이와나미 전체의 사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 야스에는 한국이 민주화 되기 전까지는 한국사람을 거의 상대하지 않았다. 손꼽는 몇몇 말고는. 그 몇몇 가운데 전 회장이 상순위에 낀다. 아사히신문 간부들과는 사통팔달. 아사히의 역대 주한특파원은 전회장을 신주 모시듯 모신다. NHK도 비슷하다. 그러니 결국은 전 회장은 일본 지성계와의 굵은 파이프라인이랄 것이다.
YS가 야당의 총재일 때의 일이다. 전 회장은 전직 장관, 일본특파원 등과 아담한 음식점에서 술을 하다가 즉석에서 YS에 전화를 걸어 합류하자고 초청한다. 그리고 YS가 오자 한참 환담 끝에 YS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모임으로 전환하자고 제의하여 당시 여당 소속이던 나를 약간 당혹케 하기도 하였다.
YS와 절친한 것은 사실인데 DJ와는 어떠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DJ가 일본에 망명했을 때는 친하게 지냈다는 답변이다.
전 여사덕에 호화스런 술자리를 많이 가 보았지만 그 가운데 특기할 것은 강남의 어느 살롱에서 있던 패티김과 이태리인 남편, 최지희씨와 그의 연인 쟈니 윤씨 등등과 합석한 술자리다. 나로선 최고의 술자리였다.
나도 이갑용(李甲用)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권영길(權永吉) 민주노동당 위원장과의 술자리에 전 회장과 춤꾼인 인간문화재 이애주(李愛珠) 서울대 교수를 초청하는데 전회장의 수준은 그들을 윗도는 듯하였다. 그 화제의 풍부함이여... 술이 진행되어 노래 순서가 되면 나는 전 회장에게 ‘한 많은 미아리고개’를 간청한다. 전 회장의 ‘한 많은 미아리고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비극적인 절창이다. 아마 자기의 지난 인생을 그 노래에 담아 부르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가 전 회장의 망년회, 십년이상 매년 성대한 망년회를 연다. 근래에는 홍대앞 ‘동촌(東村)’에서 자주 모였다. 정치인 손세일(孫世一)씨와 내가 단골손님이고 김지하, 박범신 등 문인, 장일순 선비(원주 재야 세력의 중심인물로 별세했다), 김석원 쌍용회장, 김진균 서울대 교수 등 1백여명선이 참석한다.
작년에는 미리 좌정해 있으니 김근태(金槿泰)씨가 들어온다. 나는 “차세대 지도자가 오시는군”하였다. 그러자 손학규(孫鶴圭)씨가 왔다. “두번째 차세대 지도자가 오시고...” 이어 내일신문의 장명국(張明國)씨가 나타났다. “드디어 세 번째 차세대 지도자가 오셨군” 나의 알맹이 있는 익살이다. 공교롭게 모두 경기고 출신이다.
추가하여 한가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 등으로 요즘 한창 뜨는 예술감독 홍상수 교수가 전 회장의 아드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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