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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회고-文酒 40년 <28>현대의 황진이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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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회고-文酒 40년 <28>현대의 황진이들-5

논설위원들을 잘 다룬 최경자씨

무교동의 체육회관 옆골목을 지나다 보니 조그마한 맥주집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재미있게도 '자자'. 카운터와 간이 테이블 둘을 포함하여 10명쯤이면 꽉 찰 그런 미니 비어홀이다. 주인은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결혼생활 1,2년에 이혼한 최경자씨. 무료한 시간도 보낼 겸 잘하면 마땅한 남편감도 만날 겸 그래서 시작한 맥주집 같다. 전 남편은 상당한 부잣집 아들로 대학때 만났다는 이야기.

당장 같은 조선일보 논설위원인 조덕송(趙德松), 김성두(金成斗)씨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기하급수적이라는 것이 그런 걸까, 며칠 안에 자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논설위원들의 소굴이 되었다. 동아일보는 김성두씨가 이갑섭(李甲燮)씨를 끈 것 같고 그래서 홍승면(洪承勉)씨도 손님이 되었다. 중앙일보는 조덕송씨가 신상초(申相楚)씨를, 한국일보는 김성두씨가 김정태(金定台)씨를 각각 소개하여 박동운(朴東雲)씨 등이 따라오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는 전혀 관계없이 헌법학자인 갈봉근(葛奉根)교수가 새끼를 치기 시작하여 한태연(韓泰淵)씨 등 학자들이 줄을 잇게 되었다. 결국 '자자'에는 나의 산맥과 갈 교수 산맥이란 양대 산맥이 있게 되었으며 최경자씨는 둘을 각각 회장이라고 호칭하였다.

거기에 별동대로 사상계의 편집장이던 황활원(黃活元)씨가 끼고, 아마 그 연줄같은데 중앙정보부 정홍진(鄭弘鎭)국장이 나타나게 되었다.

좁은 자자는 항상 이들로 활기를 띠었다. 부산 출신인 최경자씨는 "그랬다 아닙니까""그렇다 아이가"등 사투리를 써가면서 이들 먹물들을 잘 다루었다. 통통하니 이쁘장한 최씨의 애교에 모두 흡족해 했다. 값도 대단히 헐했으니 더욱 출입이 잦게 되었다.

최씨는 국문과 출신답게 시조나 시의 구절을 적절히 활용한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말라""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그렇다 아닙니꺼""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이""파도여 어짜란 말이냐, 파도여 어짜란 말이냐""그렇다는 것 아이가" 그런 식의 대화를 가끔 끼어 넣어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달변인 조덕송씨도, 독설가인 신상초씨도, 짓궂은 김정태씨도 모두 얌전한 손님이 되어 맥주를 팔아주는 것이다. 아마 각사 논설위원들의 더할 데 없는 집합 장소였을 것이다.

한번은 최석채(崔錫采) 주필이 조선일보 논설위원실의 야유회를 정하고 누군가가 비호적주의(非戶籍主義)를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조덕송, 김성두 둘 중 한 사람이였을 것이다. 야유회날 혼자 터덜터덜 나타났더니 나의 파트너로 최경자씨가 와 있는게 아닌가. 비호적주의이니까 회장님은 자기가 모셔야한다는 논리인데 아마 조, 김 두사람이 강권했을 것이다.

그렇게 유쾌하게 1년 이상을 출입하였다. 하루는 친구들이 많이 있는 가운데 약간 주기가 오른 최경자씨가 "진남포 왔는교"한고 나를 놀려댄다. 모두 깔깔댄다.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진짜로 남선생은 임포라는 뜻으로 줄여서 진남포라 했다는 것이다.

정홍진씨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방문 선발대로 북한에 갔던 북한 전문가다. 공석이든 사석이든 그를 만나면 "어이, 임포!"라고 하여 나를 설명에 애먹인다. 그래서 나도 그를 보기만 하면 "어이, 임포!"해버린다. 해명할 책임은 그렇게 불림을 당한 쪽이기에 먼저 말한 쪽이 이기는 게임인 것이다. 30년 가까이 지난 요즘 정씨를 만나면 서로 그때가 재미있었다고 회고하곤 한다. 정씨는 요즘 강서케이블 텔레비전 사무실에 나온다.

'자자' 2년쯤에 최경자씨는 소원성취하여 결혼을 했다. 서강대학의 이상우(李相禹) 교수는 나의 대학 후배인데 모처럼 만나니 최경자씨를 아느냐고 한다. 그의 친구가 결혼하여 집에 초청받고 가보니 신부가 내 이야기를 하더란다. 신랑 앞에서 말이다. 중요한 회장님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옛날 이야기는 대개 "그 후 그들은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는 거야"로 끝난다. 최경자씨의 경우도 그렇다. 얼마전 아들의 결혼 청첩장을 보내왔다. 꼭 가 보아야 하는데 부득이한 일로 못갔다. 미안 미안하다고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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