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샐러리맨 치고 맥주홀 '낭만'이나, '사슴'을 모른다면 좀 뒤떨어졌다 할 만했다. 농협 서울지부 건너편의 뒷골목(그러니까 서린동일 것이다)에서 '낭만'이 번창할 때 언론인, 문인, 예술인, 교수, 법조인, 정치인들이 항상 가득 메웠었다.
독일 뮌헨의 맥주 축제 기사를 읽은 일이 있는데 '낭만'은 항상 소규모의 맥주 축제 같았다. 더구나 2층까지 있어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시끌시끌 장관이다. 절대 앉지 않고 서서만 심부름하는 아가씨들도 젊고 청초한 용모를 기준으로 선발한 듯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 가운데서 단연 뛰어난 여성이 누구나 그렇게만 부르는 미스 리. 나중에 알았지만 본명은 이인숙이다.
문학출판사 '민음사'도 근처에 있어 박맹호(朴孟浩) 사장은 고은 시인, 신경림 시인, 유종호 교수 등 문단의 패거리들과 거의 매일 진을 치다시피 하였다.
이어령(李御寧) 교수는 박맹호 사장과 서울문리대 동기. 하기는 따지자면 나도 문리대 의예과로 문리대 동기인셈. 여하간 그렇게 서넛이 어울려서 맥주를 마시는데 이어령 교수, 미스 리를 한참 바라보더니 '고향 생각하게 하는 여인'이라고 타이틀을 주는 게 아닌가.
이교수의 재치나 조어능력(造語能力)이 뛰어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일. '미로의 비너스'가 아니라 이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여인'이란 일종의 작품명 부여에 우리는 모두 수긍을 했다. 청초하고 조용한 한국적 미인, 그러면서도 소박한 느낌도 있어 고향에 두고 온 처녀를 연상시킨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미스 리의 고향을 묻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이어령 교수와 같은 충남 아산이 아닌가. 감각적인 느낌과 지리적인 사실이 일치한테 우리는 또다시 놀라고, 이어령 교수의 신통력(?)을 찬탄하였다.
그 무렵이 최인호의 소설 '별들의 고향'이 히트를 칠 때이다. 곧 영화로도 되었지만 그 소설은 구식 표현으로 공전(空前)의 베스트셀러, 또는 낙양의 지가를 올린 소설이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맥주집 아가씨(요즘은 언니라고 호칭한다)들에 관한 이야기.
사법파동 때의 일이다. 그 주역이라 할 홍성우(洪性宇) 판사를 나의 고교동창인 김덕주(金德柱) 부장판사(나중에 대법원장)가 데리고 와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 다 아는 처지기에 합류했는데 감정이 격해진 홍 판사가 인사불성으로 만취, 몇사람이 떠메다시피 하여 차를 태웠다.
우리나라에서 간암에 관한한 첫손가락에 꼽히는 간박사 김정용(金丁龍)씨도 대단한 단골이다. 술이 간에 해롭지 않다는 것을 시위(?)라도 하려는 듯하다. 의예과 1년 선배인 나에게는 "위스키, 소주, 아니면 맥주를 마시지, 오래 저장하는 청주 등 다른 술에는 방부제가 많아 간에 해로우니 마시지 말라"고 충고한다.
'낭만'에는 미스 리를 선두로 미스 최, 미스 고의 트리오가 있었는데 이 트리오가 딴 가게를 차렸다. 민음사 박맹호 사장의 호의로 그의 건물 1층에 '사슴'을 분가한 것.(옥호는 송지영씨의 작명이다) '낭만'은 그 업(옛날 표현)이 빠진 셈이다. '낭만'의 생명력이나 정신은 미스 리에 있던 것이 아닌가. 그후 '낭만'엔 가지 않았지만 시들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사슴'의 내부를 장식을 하는 데 일주일쯤 공백이 있어 단골들이 트리오를 접대하였다. 나도 술을 사주었는데 미스 리는 시골에서 고생을 하다 서울에 왔고, 서울서도 살림을 책임지고 있어 어깨가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윤정모 소설가가 어디에 쓴 것을 보니까 그녀도 초년에 한때 맥주홀에 나갔는데 틈틈이 상 위에 있는 땅콩을 요령껏 집어 먹었다고 털어 놓고 있다. 미스 리는 술도 세서 휴무일 때는 배갈 다섯 도꾸리(일본말)를 한꺼번에 시켜놓고 모두 마신다나. 나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진 않은 것 같다.
'사슴'에서의 단골 제1호는 서울대학의 이수성(李壽成)교수(나중에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동성동본이라고 오빠 동생하면서 거의 개근이다시피 한다. 이 교수가 교수들이 선출하는 총장이 된 것도 그런 정지작업이 있어서일 것이다.
나는 원로 소설가 장덕조 여사와 친해서 그 분을 모시고 한두 번 같이 간 적이 있다. 장 여사도 멋쟁이여서 술이 들어가면 '아! 으악새 슬피우니....'를 되풀이 되풀이 부르신다.
그 무렵 멋쟁이 소설가 이병주씨가 중진 여배우 최은희씨와 나타나 꼬냑을 시켜 놓고 마시는 영화같은 장면도 있었다. 이씨의 소설 '낙엽'을 최은희씨가 무대에 올리는 타협이었다는데 한두 주일후 최씨는 홍콩에서 잠적하고, 이씨는 그 이야기도 기민하게 작품화했다.
'그리고,'의 미스 동은 미스 리가 눈, 코, 입, 귀 하나하나 뜯어보면 잘 생기지 않았는데 모두를 종합하여 전체로 보며는 우아한 모습이라고 여인다운 평을 한다. 그리고 미스 리는 달변이 아니다. 필요한 이야기만 순박하게 한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백점만점이다. 이 분위기를 만드는 재주, 대단한 게 아닌가. 분위기는 실내장식, 음식, 술값, 언니들의 선발, 말하는 태도, 손님의 품질관리 등등 여러 가지가 종합되어 만들어진다. 그러니 맥주집이나 살롱 등에서 성공한 마담들은 유능한 경영인이라 할 수 있다.
'사슴'시대가 5년쯤 갔을까, 그 다음은 충무로 끝 편에서 '벤허'라는 지하맥주홀을 경영하였다. 분위기 좋은 술집 잘 찾기로 이름난 중앙일보의 손기상(孫基祥) 문화부장 등이 개근파였다.
그러나 전하는 바로는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여 미스 리도 그 피해를 입고 맥주홀 전성시대도 한 15년만에 막을 내렸다.
그때 모여들었던 김학준(金學俊) 교수, 이만익(李滿益) 화가, 박현채(朴玄埰) 교수 추종자들, 서울의대 이영우(李迎雨) 교수 등등 지금은 어디를 제2의 '낭만''사슴'으로 삼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스 리 트리오에 끼지는 못했지만 낭만시대 언니 미스 동 이야기를 덧붙여야겠다. 미스 동 그러니까 동 마담은 지금 인사동 신라약국 옆에서 카페 '그리고,'를 경영하고 있다. 현화랑이 전업한 것인데 '그리고,'의 그 콤마(,)가 재미있단다.
이른바 63세대의 집합 장소이기도 하다. 김도현, 유광언 패들을 자주 만난다. 민주노동당수 권영길패도 얼굴을 내밀고, 63세대의 대표는 김중태(金重泰)였다. 그런데 이 김중태가 약간 빗나가 '원효요결'이라는 예언서를 썼고 출판기념회를 세종홀에서 하고는 63세대끼리의 뒷풀이를 '그리고,'에서 계속했다. 나와는 '그리고,'에서 마주쳤다. 나도 잘 알지만 예언서하는 데 마음이 안들어 세종홀에는 안 갔던 것이다.
63세대 말고 '그리고,'에는 6·25 전란중 평양에 가서 북한 각료인 이승엽(李承燁)을 만나기도 했던 박진목,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박사의 민자련(民族自主聯盟)의 비서처장을 했던 송남헌씨 등 노장들도 출입한다. 송지영씨가 미스 동이 서예 감식도 한다고 귀여워 한 후 별세하고 나니 한 살쯤 아래인 박진목씨가 대를 이어(?) 동 마담을 귀여워한다. 풍류가 있다 할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리고,'에 방용구(龐溶九) 전 국제대학장이 가끔 나타난다는 일이다. 사건이다. 영문학자인 방선생은 나보다 고등학교 20년 선배이다. 그러니 구제 중학교가 5년제인 것을 고려에 넣어 아무리 줄잡는다 해도 86세는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카페출입을 한다니 복도 많은 분이다. 내가 술을 마시고 있었더니 칸막이 뒤에서 목소리를 알아 듣고 동 마담을 통해 나를 호출한다. 하기는 송남헌, 박진목씨도 80대 중반이다.
'낭만' 전성기 이후 30년이 지나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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