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철동 3.1빌딩 뒤쪽에 '반줄'이라는 곳이 있다. 지하는 젊은이를 위한 장소이고, 1층은 중년 이상을 위한 양주대포집, 2층은 양식부, 3·4층은 고급살롱이라는 완전히 복합적 사교장이다. 그 주인이 정복순씨, 집 자체의 소유권까지 모든 것의 주인이다. 옥호를 무엇으로 정할까 궁리하다가 다트를 아프리카 지도에 던져보았단다. 그랬더니 다트가 꽂힌 곳이 감비아의 수도 반줄, 그래서 '반줄'이라는 설명이다. 아프리카의 외교사절들도 이 집을 선호하여 덤도 붙는 셈이다.
내가 살롱이라고 처음 간 곳은 북창동에 있던 '멕시코'다. 60년대 중반, 그 다음이 옛날 미 대사관 뒤에 있던 '발렌타인'. 소설가 이병주씨에 끌려 '멕시코'에 갔었는데 그 집이 살롱으로는 서울서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주인이 정복순씨. 빈 손으로 출발, 고생 끝에 '살롱' 경영에 이른 입지전적 여걸이라는 소문은 그 때부터 있었다.
나는 특히 '반줄' 1층을 즐겨 찾았다. 양주 대포집 형식이지만 계수남씨의 생음악도 들려주어 오픈 살롱이라 해도 된다. 왕년의 노가수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들려주어 오히려 매우 격조가 높은 집이라 할 수 있다.
정치활동을 못하던 시절의 JP도 애용하였다. 오면 보드카가 순수하다고 보드카만 찾는다. 요즘 김종필씨의 정치 행태는 마음에 안 든다. 그러나 양주대포집, 소주대포집에도 나타나는 그의 소탈함에는 정이 간다. 옛날에 박정희씨는 몰라도 그 후의 거물 정치인 가운데 당당히 대포집에 가는 또는 갈 수 있는 정치인이 몇이나 있는가 말이다.
한번은 문공부의 정통관료인 박종국(朴鍾國)선배와 둘이서 반줄 1층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현대그룹 총수 정주영 회장이 혼자 와서 계수남씨의 피아노 대에 앉아 술을 마시며 흥이 나면 마이크를 잡고 대중가요를 부르는 게 아닌가. 1980년대 초엽의 이야기다.
그와 안면이 있어 그를 우리 자리로 초대하였다가 노래자랑을 하기로 합의, 각각 두 곡을 불렀다. 나는 "한국 제일의 재벌회장이 이런 데를 혼자 올 수 있느냐, 더구나 수행원도 없이···"하고 의아해했다. 그는 "가끔 오지, 그리고 나가다가 이 앞에 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에 고춧가루를 풀어서 먹기도 하지."하며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노가다판에서 일했던 그다운 이야기인데 기회를 놓칠세라 나는 이런 충고를 하였다. "전번에도 한번 말씀 드렸지만 현대그룹도 노동조합을 잘 육성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니 노사분규가 났다 하면 폭동에 가깝지 않습니까." "노동자요? 내가 바로 노동자요. 우리 밖에 나가 누가 쌀가마를 더 잘 지나 시합할까요?" 그의 대답이다.
정복순 마담은 동양 기준으로 복스럽다 할 용모이지 서양 기준의 미인이라하기는 어렵다. 이름 그대로 복순하다. 그리고 말을 대단히 아낀다. 미소를 지으며 한 두 마디씩 거드는데 그러는 것이 오히려 분위기에 맞지 않을까 한다. 그는 사업적으로 대단히 성공하였다.
그와 비견되는, 오히려 더 화제가 되었던 김봉숙 여사와는 좋은 대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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