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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축' 발언 파장을 잠재운 것이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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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축' 발언 파장을 잠재운 것이 성과

한미 정상회담 결산-단시일내 북미관계 개선 어려워

20일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 대북협상에 관한 한미간의 공조체제는 지난 1월말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전으로 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악의 축’ 발언이 불러온 한반도의 갑작스런 긴장 상태는 해소됐지만 과연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진정한 관계 개선 의지가 있는가 여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전임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진전됐던 북미관계와 비교해 보면 부시 행정부하의 북미관계는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담의 성과로는 햇볕정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공식지지, 대화에 의한 북한문제 해결 원칙 합의 등을 꼽을 수 있다.

회담이 끝난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고 북한과의 대화 재개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한 극단적 언사를 자제한 채 자신이 왜 ‘악의 축’이라는 표현을 썼는가를 나름대로 설명했다.

이처럼 두 정상이 공개적으로 대화에 의한 문제 해결을 천명함으로써 ‘악의 축’ 발언이 초래한 긴장상태는 일단 해소됐다고 할 수 있다.

***대북한 인식 차이는 여전**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이 먼저 변해야 자신의 대북관도 바뀔 것이라며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북한과의 조건없는 대화 방침만을 되풀이하면서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일 구체적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실제로 양국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당초 예정된 확대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인식, 대북협상의 방법론 등에 대해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두 정상은 햇볕정책 지지, 대화에 의한 문제 해결 등 원론적 수준의 합의를 통해 ‘악의 축’ 발언이 초래한 부정적 파장을 봉쇄했지만 대북 협상의 구체적 방법과 수순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단시일내 북미관계 개선 어려워**

따라서 이번 회담의 결과, 북미 협상이 곧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 북한전문가 이종석 박사(세종연구소)는 “부시 대통령이 최대한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러나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고, 남북한 체제를 비교한 그의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단시일내 북미협상이 시작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발언은 수령, 당, 주민을 일체로 보는 북한의 정치철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며 따라서 당장 북한 당국이 미국와의 협상을 추진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과의 협상을 위한 조건이나 수순이 제기되지 않은 것은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9.11사태 이후 미국 외교의 최우선과제는 테러와의 전쟁이다. 현재 부시 행정부의 관심은 이라크로의 확전, 콜럼비아.필리핀 등의 반군 소탕에 쏠려 있다.

또 이번 동아시아 순방에서도 미국의 주요 관심사는 침체된 일본 경제의 회복,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과의 불신 해소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생산 및 수출 문제는 아직은 최우선과제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대화에 의한 문제 해결 등 원론적 입장 표명 등을 통해 ‘악의 축’ 발언이 한반도에 초래한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면서 일단은 시간을 벌자는 전략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 진전에 주력할 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클린턴 행정부 때의 대북정책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페리 프로세스’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평가와 인식이다.

부시 행정부는 아직까지 페리 프로세스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극히 부정적인 인식, 부시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 태도 등으로 미루어 페리 프로세스는 사실상 폐기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클린턴 행정부 말기, 성사 직전에 무산된 북미 관계의 진전 상황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라는 달라진 상황에서 북한과의 대화 및 협상을 위한 새로운 전략틀을 짜는 것이 현실적 태도라는 것이다.

물론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나선다 해도 클린턴 행정부에 비견될 만한 진전을 이루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처럼 단기간내 북미관계의 가시적 진전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은 이제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일거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한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우회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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