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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회고-文酒 40년 <14>송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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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회고-文酒 40년 <14>송지영

구름에 달 가듯이 술집 순례

언론인ㆍ소설가이자 독립운동을 했던 우인 송지영(1916-1989)씨는 수호지에 나오는 급시우 송강을 연상케 하는 선비다. 아마 우인(雨人)이라는 그의 아호도 급시우에서 한 자 땄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인의 고향은 본래 평안도인데 선친이 정감록파여서 박용만 의원, 김계원 육군대장 등의 집안과 함께 집단으로 영주군의 풍기로 이주하였다 한다. 그는 신식 학문을 생략한 채 한학 공부에 열을 쏟아 대단한 수준이 되었으며 한때 동아일보에 관계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대학공부도 하고 독립운동을 하였다.

해방되던 때 우인은 일본의 형무소에서 지금도 연변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한 소설가 김학철씨와 함께 우인의 고향인 풍기에 먼저 들렸는데 우인은 김학철씨가 북의 집으로 떠날 때까지 사랑채에서 같이 기거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기다렸던 부인이 안채에 있는데도….

지금 사람들이 보면 구식이라 할 유교적 선비의 모습이다.

우인은 후배를 아껴 술 사는 것을 취미로 삼다시피 하였으며 술집 아가씨들도 몹시 귀여워해 주었다. 백발에 신선처럼 생긴 선비인 그에게 여자들은 경계심이 전혀 없이 따랐다. 예를 들어 영화배우 윤정희씨와 어울려 맥주를 마셨고, 한번은 윤정희씨 부모님이 계시는 여의도 아파트에 우인과 저녁 식사 초대를 받기도 하였다.

그 우인, 술을 한 집에서 오래 마시는 타입이 아니다. 잠깐씩 하루저녁에 서너 집을 순례하여야만 끝난다. 나도 방자처럼 따라 다녔는데 술값보다도 팁이 많이 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한학이 높고 서예 등의 감식안이 전문가 수준이어서 가끔 서화의 감정을 해주기도 하고 소개도 하여 부수입이 많았다.

우인을 따르던 많은 술집 아가씨들이 돈을 모으면 술집을 따로 차린다. 그러면 술집 이름은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우인에게 작명 부탁이 나간다. 70년대에 유명했던 '사슴', '아람', '해바라기', '향'(안개의 고향이란 뜻), '가을' 등등 품위와 운치가 있는 옥호들이다.

독립운동, 형무소 살이, 신문사 편집국장, 정치 활동(해방후 철기 이범석 장군의 연설문을 써 주었다), 형무소 살이, 또 신문사 간부, 형무소 살이…. 그런 인생이기에 그는 도가 통해 있다. 아등바등 하지 않고, 마치 박목월 시에 나오는 것처럼 구름에 달 가듯이 살아간다.

말년에는 국회의원, 문예진흥원장, KBS 이사장 등 관복도 있었는데 그런 것이 우인에게는 무어 대단했으랴. 술집 스탠드에서 조용히 담소하며 마시는 양주 칵테일에서 오히려 인생의 진미를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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