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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회고-文酒 40년 <10>박진목ㆍ김낙중ㆍ김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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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회고-文酒 40년 <10>박진목ㆍ김낙중ㆍ김영작

北에 갔다온 통일운동 3대

동주(東洲) 박진목씨는 나와 아주 친하게 되었다. 아마 창정 이영근(蒼丁 李榮根)씨와의 연줄에서일 것이다. 창정이 도쿄에서 발행하는 통일일보의 서울주재 부사장을 동주가 맡고 있었으니 말이다. 거의 명목 뿐인 것이지만 부사장은 부사장이다.

***기구한 운명의 박진목**

동주는 참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다. 운명은 기구한데 본인은 유머를 잃지 않고 항상 명랑하니 그것도 신기하다. 경북 출신이고 형님은 독립투사. 나이 어린 때 형님을 만나러 중국에도 갔었다니 그런 맥락에서 사상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 같다. 해방 후에는 남로당의 경북도당 부장급. 역시 경북은 정치 1번지여서 그런 연줄로도 인맥이 풍성하다.

남로당 문제는 어찌 해결된 것 같고, 6·25전란 중에 북의 이승엽(李承燁)을 잘 아는데 북에 가서 이승엽을 만나 전쟁을 휴전하게 하고 싶다고 여러 군데 말을 하고 다녔다. 30대 초반의 민족적인 정열에서다.

그것을 미국 정보기관이 감지하였단다. 손해날 것 없는 일이다. 결과가 없더라도 북을 보고 온 이야기만 디브리핑(debriefing)을 받아도 큰 소득이 아니냐는 판단이었을 듯하다. 아무튼 미군의 도움으로 전선을 넘어갈 수 있었고 상당 기간 감금 되었다가 이승엽의 방문을 받을 수 있었다.

“박동지, 오랜만이요. 이야기는 들었소. 그러면 남쪽 당국의 신임장은 갔고 왔겠지요.”

“신임장은 무슨 신임장이오.”

“박동지, 남쪽 당국의 신임장이 없으면 어쩔 수 없소. 협상을 하자는 것 아니었소.”

***이승엽이 만난 '미제 스파이'?**

이승엽하고 친한 사이이기에 북은 동주를 안전하게 전선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미군에게 잡히지 않고 국군에게 잡혔으니 고생이 막심할 수밖에. 뒤늦게 미군이 알고 신병을 인수해 가 또 조사. 여하간 기구한 운명인데 그 이야기가 그의 자서전 ‘내 조국 내 산하’에 자세하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적혀 있다.

일본의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가 쓴 임화(林和)에 관한 소설 ‘북의 시인’을 읽어 보니 거기에 박헌영 등 남로당계에 대한 판결문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는데, 박진목씨의 이름도 나온다. 그가 이승엽을 만났으니 남로당계가 미제 스파이와 접전했다고 주장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아무튼 박진목씨는 국내에서 통일운동가로 유명해졌고 애국애족하는 인물로 대체적인 평을받게 되었다. 그는 한국일보 뒤에 중원(中苑)이라는 밥집을 갖고 있었는데 자주독립운동·통일운동의 노선배들을 초청하여 융숭하게 대접하곤 했다.

그는 대학교육은 받지 않았다. 그래서 교양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쓰는 말씨가 대단히 평범하고 토속적인 우리 말씨다. 유식한 개념은 전혀 쓰지 않는다. 구수한 순수 우리 서민의 말이다. 그리고 말재간도 대단하여 말하다 보면 어느덧 친근하게 빨려들곤 한다.

***한자리에 모인 3대 통일운동가**

나는 호사가라고 할 수 있다. 6·25 후에 임진강을 헤엄쳐 북에 가서 통일을 호소하다 온 김낙중(金洛中)씨는 대학 때 친구다. 또 납북된 아버님을 만나기 위해 70년대 초 일본대학의 교수 신분으로 북에 갔다 온 김영작(金榮作) 교수는 민정당 국회의원 때 동료의원이다.

이북에 갔다 온 통일운동 3대를 내가 같이 만나게 한 것이다. 술자리에 합석해 보니 마치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처럼 죽이 맞는다. 그들끼리만도 가끔 만나고 거기에 월남해 온 허헌(許憲)씨의 딸 허근욱(許槿旭)씨도 때로는 초청하여 합류한다.

허근욱씨는 50년대에 월남하여 내 고향이기도 한 청주에 오래 살았으며 ‘내가 설 땅은 어데냐’라는 자전적 책을 내기도 하였다. 그러니 나와는 공통의 청주 친구가 많아 쉬이 친밀해질 수 있었다. 최근에는 ‘민족변호사 허헌’이라는 선친의 전기를 냈다. 조선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는데 김학준(金學俊)·김동길(金東吉)·강원룡(姜元龍)·전숙희(田淑禧)씨 등이 축사를 했다. 세상이 달라진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김병로(金炳魯)·이인(李仁)·허헌(許憲)씨는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맡았던 민족변호사 3인으로 알려져 있다. 내 술친구 김종인(金鍾仁)박사는 김병로씨의 손자인데 허근욱씨와 안면이 없어 이 행사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김종인 박사를 불러내어 허근욱씨에 소개했다. 의미있는 일이다. 그 자리에 파리에 있는 이인씨의 아들 이옥(李玉)박사만 왔더라면····(그는 그 후 별세)

“우리 한번 푸짐하게 놀아 봅시다.”

박진목씨가 술자리 서두에 자주 하는 말이다. 맞다. 술자리는 노는 자리다. 이성인간(理性人間)이 유희인간(遊戱人間)이 되는 것이다. 그는 놀 줄을 안다. 그리고 구수한 말이 이어진다.

“우리 옛말하고 살 날이 있을 겝니다.” “너무 좋으면 죽는 수가 있어. 백제 그리 좋아하지 말래이.” “보고 지고 보고 지고 내 얼마나 보고 졌는지 아나.” “이 사람 뭐라카노. 나라를 사랑한다는데 귀천이 어디 있노.”

모두가 쉬운 말로 가식 없는, 따라서 정확한, 말들이다. 정명(正名)이라는 게 그런 것일 것도 같다.

박씨 주변에는 그가 자주 술을 받아주는 사람이 많다. 이기택(李基澤)·김상현(金相賢)·이우재(李佑宰)·윤식(尹埴)씨 등등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남북관계가 진전되어 그의 간절한 소망이 풀리게 된 듯한 요 근래에 그는 강신옥(姜信玉)·김도현(金道鉉)씨와 나를 밥집으로 초대한다.

***진짜 애국을 하려고 반공을 하기도 하고, 공산을 하기도 하고**

강신옥씨는 김재규장군사건에 변호를 맡아 유명한 인권변호사, 김도현씨는 이른바 6·3세대 대표로 언론에서 김중태(金重泰)·김도현·현승일(玄勝一)씨등 트리오를 꼽는데 그 가운데 한명, 그러고 보니 나도 자유당 때 부정편입한 이대통령의 양자 이강석(李康石)군을 서울법대에서 축출한 동맹휴학사건의 주모자. 네 사람 모두 역사의 각주(脚注)에는 나올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진짜 애국을 하려고 반공을 하는 사람이 있다. 또 진짜 애국을 하려고 공산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한 진짜 애국을 하려는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해야 평화도 오고 통일이 되는 게 아니겠어.”

무언가 생각케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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