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내가 조선일보 정치부장이던 때는 중앙일보는 갓 태어난 처지였고 유력 3개지 하면 조선하고 동아일보, 한국일보를 꼽았다.
당시 박정권의 실세는 이후락(李厚洛) 청와대 비서실장, 김형욱(金炯旭) 중앙정보부장, 김성곤(金成坤) 공화당 재정위원장.
이후락 실장은 머리 좋기로 소문나 있었다. 그는 약간 말을 더듬는데 박 대통령이 짓궂게 “이 실장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하니까 “가-가-각하, 혀보다 머리가 빨리 돌아 그런 게 아닙니까?”라고 했다는 출입기자의 이야기다.
김성곤씨는 쌍용그룹의 창업자. 그는 흔히 2등주의자로 소문이 나 있다. 1등할 생각 말고 2등이면 족하다는 현명한 처세술이다. 항상 “요즘 사업이 힘드네”하고 엄살이다.
그에 대비되는 인물이 한국일보의 장기영(張基榮)씨인데 그는 항상 “잘 되고 있습니다”하고 자랑을 하기도 하고 또는 허세를 부리기도 하였다.
김형욱 부장은 5.16 주도 기인 육사 8기생. 당시 신문은 김홍길(金洪吉)이라는 조어(造語)를 쓰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같은 육사 8기인 김형욱ㆍ홍종철ㆍ길재호의 콤비를 뜻했다.
이들 셋이 3개 유력지의 정치부장을 청운각으로 초대했다. 당시 유명한 요정으로 청운각과 선운각을 손꼽았고 그 다음으로 대하, 오진암을 들먹였다.
권력측의 이후락씨 등 3인과 언론의 이웅희(李雄熙ㆍ동아) 정성관(鄭成觀ㆍ한국) 그리고 나의 3인이 대좌하였다. 언론엔 서열이 없지만 권력측은 서열이 있는 것 같아 중앙에 이후락, 마주 보고 왼쪽에 김형욱, 오른쪽에 김성곤씨가 앉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두 두주불사의 실력. 그 당시는 죠니 워커 블랙이 인기였던 것 같아 급템포로 죠니 블랙 술잔이 오고 갔다. 어지간히 주기가 돌 무렵, 김성곤씨가 제의를 했다.
“이 자리의 정부쪽은 김 부장이 술이 제일 센 것 같고, 언론쪽은 남 부장이 세다는 소문인데 둘이 한번 술 시합을 하면 어떻겠소”
그러면서 맥주 잔에 죠니 블랙을 그득그득 따른다. 분명 그때의 맥주잔이 지금의 맥주잔보다 더 큰 것으로 여겨진다. 누가 한 번 조사해 볼 일이다. 맥주잔이 알게 모르게 얼마간 작아진 게 아닌가 한다.
맥주 잔에 그득한 적갈색 선명한 양주. 수영 잘 못하는 사람, 물에 빠져 덜컹 겁이 나듯 겁이 나는 존재이다. 생각이 스쳤다. 김성곤씨는 조선일보 사주 방일영(方一榮)씨와 친숙하여 호형호제하는 사이. 그러니 조선일보 정치부장과 정보부 사이가 껄끄럽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말하지만 그 당시는 그런 대로 언론자유를 누리던 때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도와주는 뜻에서 둘 사이의 술 시합과 그것을 통한 친숙해짐을 의도했을 것이다.
나는 “좋습니다”하고 응했다. 그랬더니 김 부장은 잔을 들더니 한번도 쉬지 않고 마치 맥주를 마시듯 쉽게 끝내는 게 아닌가. 약간 기가 죽었다. 그러나 나도 양주 킹 사이즈로 한 병 실력. 들어서 죽 들이키는데 중간에 잠깐 숨을 쉬고 다시 마실 수밖에 없었다.
다시 그득그득 한잔씩. 동까쓰(그때 김 부장에게 붙인 언론계의 별명이다. 찐빵과 비슷한 의미이다)는 용기있게 다시 잔을 들려는 게 아닌가.
나는 “잠깐, 술 마시는 모습을 보면 술실력을 알 수 있는데 나는 김 부장님에 비해 족탈불급인 것 같습니다. 졌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패배의 인사를 하였다.
김 부장은 부전승을 거두었다고 정말 어린이처럼 기뻐하며 떠들어댔다. 나도 두 잔째를 못 마실 게 아니다. 그러다가는 몸에 해가 될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김 부장과 친밀해지는 것은 좋으나 몸을 망칠 수야 없지 않는가.
그 다음날 출근하여 정보부에서 신문사를 담당하여 나오는 이른바 ‘출입기자’에게 김 부장의 소문난 술 실력을 물으니 보통 양주 2병이란다. 5.16 군부들은 거의 모두 술이 강하다.
홍종철(洪鍾哲)씨가 재떨이를 닦아내고 양주를 따라 권하는 것을 언론계 사람들은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살콰주! 살콰주!”하며 말이다. 잘 보아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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