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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언론신화의 이면 <6>

"우리는 취재원칙에 충실했을 뿐"

"한국경제신문이 경제전문지 가운데 유독 윤태식 게이트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윤태식 게이트에 상당수 언론인이 연루된 가운데 주요 경제일간지 가운데 유독 한국경제신문만 주식을 보유한 기자가 전혀 없고, 동시에 그동안 윤씨나 패스21에 대해 다른 언론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신중한 보도태도를 견지한 것으로 드러나 언론계 안팎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차가우리만큼 객관적이었던 한국경제신문의 윤태식 관련보도**

검색결과 패스21이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난 99년이후 윤씨 구속 직전까지 한국경제신문의 패스21 관련기사는 모두 24건으로 조사됐다. 기사도 대부분 1단 기사 등의 짤막한 단신으로 처리한 경우가 많아, 1면 머릿기사와 인터뷰, 사설 등을 포함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매일경제신문이나 서울경제신문과 큰 차이점을 보였다.

윤태식 기사가 맨처음 지면에 등장했던 99년말 당시는 '벤처 주식붐'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미국 나스닥의 거침없는 상승에 자극받아 국내 코스닥시장의 상장주가도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상승을 거듭했다. "코스닥 지수가 거래소의 종합주가지수를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였다.

당연히 벤처 쪽에 엄청난 시중자금이 쏠리었고, 경제신문사뿐 아니라 종합지들까지도 앞다퉈 벤처기사를 양산하던 시절이었다. 벤처기사를 많이 써야 독자의 시선을 많이 끌 수 있고 광고도 유치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벤처 또한 호의적 언론보도가 필수적이었다. 대다수의 벤처는 재무제표 등 내세울 만한 투자근거 자료가 없다. 그러다보니 시중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투자설명회 등에 배포하는 자료 가운데 자신의 기업에 대한 언론의 호의적 보도내용을 첨부하는 것만큼 확실한 투자유인 장치도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다른 경제신문들이 경쟁적으로 대서특필하던 윤태식의 패스21 기사를 한경만이 짤막하게 1단처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나.

***"윤태식이 직접 회사에까지 왔었다. 그러나 취재과정에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한경 지면에 패스21 관련기사를 맨처음 보도했던 한경의 김낙훈 벤처중기부장에게 들어봤다.
그는 99년말 윤태식이 벤처기업 기사를 담당하고 있던 한경의 벤처중기부에 직접 찾아왔었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벤처중기부의 차장이었다.

“99년말 윤태식이 다른 사람 소개로 회사를 찾아왔다.
패스21이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 당시 우리 부서의 내근 당번이었던 내가 윤씨를 만나 편집국장석 옆에서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러나 제품을 본 것도 아니고 제품을 소개하는 시연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윤씨의 전력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홍콩에 있었다며 영화를 찍었다고 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단말기를 개발했다면서 무슨 연구원이나 교수도 아닌 영화 찍던 사람이 어떻게 가능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단신 이상으로 처리하기는 곤란하다는 보고를 데스크에게 하고 1단으로 처리했다.”

김 부장은 그때에는 윤씨가 수지김 피살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그는 보도 이후 한 편집국 간부가 "윤씨는 안좋은 소문이 도는 사람이니 주의하는 게 좋다"고 귀띔을 해줬다고 전했다.

“귀띔을 듣고 부원들에게 패스21을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자료가 와도 ‘킬’(KILL: 기사화하지 말라는 언론계 은어)하라고 단도리를 시켰다. 패스21은 그 이후에도 집요하게 자료를 보내왔는데 물먹는 걸 각오하고 거의 보도를 안했다.”

***패스21, "왜 냉대를 하느냐"고 반발하기도**

윤태식은 그후 현 정부 출범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던 이규성씨를 패스21의 회장으로 영입하는 등 굵직굵직한 뉴스거리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냈다.
다른 경쟁지들이 대서특필하던 이규성 전 장관 영입같은 큰 뉴스들을 외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경은 윤태식과 패스21에 관한 한, 냉정한 보도태도를 견지했다.

"혹시 윤씨로부터 주식을 주겠다거나 사라는 제안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김 부장은 "그런 일은 없었다"면서 당시 패스21과 있었던 갈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주식 등을 제공하겠다며 접근한 적은 없다.
워낙 냉정하게 깔아뭉갰기 때문에 ‘왜 냉대를 하느냐’며 반발을 하기도 했다.
한번은 집요하게 기사화를 부탁하는 패스21 관계자 한명에게 하도 화가 나서 ‘소문이 안좋다. 이상한 말이 돌고 있는데 앞으로는 자료도 보내지 말라’며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윤씨쪽에서는 주식같은 걸 갖고 접근하는 건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당시 벤처중기부장이던 고승철 현 동아일보 경제부장은 그 무렵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당시 내 밑에 있던 김낙훈 차장이 패스21 보도건을 협의하면서 '이상하다'는 얘기를 했다. 영화찍던 사람이 어떻게 세계적인 단말기를 개발했다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것이었다. 이에 판단한 대로 기사를 쓰라고 했다.
얼마 뒤 윤태식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벤처를 한다는 사람이 윤리에 문제가 있다니,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경이 윤태식 게이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취재 일선에서 기자가 정확한 판단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경 보도는 취재원칙의 ABC를 지킨 결과**

한국경제신문도 다른 경쟁지와 마찬가지로 99년 하반기와 2000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벤처 신드럼' 시대에 많은 벤처관련 기사를 양산했다. 한경이 소개한 많은 벤처기업들이 그후 거품이 꺼지면서 쓰러지거나 사그라들어 한경 보도를 믿고 투자했던 많은 이들에게 손실을 입힌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경은 윤태식 관련보도에 관한 한, '원칙'을 지켰다.
언론의 원칙이란 사실상 대단히 간단한 것이다. 일선 기자가 취재의 ABC에 기초해 취재원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의심이 가는 부분을 부단히 파고드는 것이다.
이때 데스크는 일선 기자의 판단을 믿고 존중해야 한다. 일선 기자의 '현장감각'만큼 믿을 만한 것도 따로 없기 때문이다.
한경이 윤태식 게이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일선 기자가 냉철하게 취재의 원칙을 지켰고, 데스크 또한 일선기자의 판단을 믿고 이를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에 다른 경쟁지들은 '원칙'을 지키는 데 실패했기에 윤태식 게이트의 거미줄에 하루살이처럼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서울경제신문의 경우 사장 부부가 패스21 주식의 10%를 지닌 대주주였다. 주식취득 과정의 합법성 여부를 떠나 사장 부부가 대주주인 기업에 관한 기사를 밑의 직원들이 냉정하게 보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서경이 패스21 보도를 1면톱과 사설로 내보낸 것에 대한 언론 안팎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매일경제신문 또한 취재라인에 있었던 담당기자와 두 명의 데스크를 포함한 다섯 명의 기자가 패스21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판적 거리'를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내부 자율장치마저 붕괴된 것이다.

***"언론의 이해관계가 끼어들지 않아야 객관적 보도가 가능하다"**

윤태식 관련보도 외에도 언론계에는 내부 자율장치의 붕괴, 또는 언론 내부집단의 이해관계 때문에 객관적 보도 시스템이 마비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종합지 논설위원의 증언이다.

"이태 전, 개각 직후의 일이다. 개각 명단 발표 직후 사장이 논설위원실에 개각 내용을 혹독히 비판하는 사설을 쓰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 '이런 게 무슨 개각이냐'는 것이었다.
사실상 당시 개각 내용은 만족스러운 게 못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 지시는 그 동기가 '불순'한 것이었다.
개각 직전까지만 해도 문제의 사장은 교육 부총리로 입각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기 때문이다.
논설위원실 내에서 적잖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장의 친위부대였던 주필의 지시에 따라 결국 사장 주문대로 사설이 나갔다.
내막을 모르는 독자들은 속 시원하게 비판했다고 좋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장의 입각 로비를 잘 아는 청와대 등 정치권력쪽이 신문쪽에 혐오스런 눈길을 보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언론의 내부 이해관계가 끼어들지 않을 때에만 비로소 객관적 보도와 비판이 가능하며, 비판을 당하는 쪽도 숙연할 수 있는 법이다."

다음은 지난 8일 윤태식 게이트에 연관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된 이계진 기자가 매일경제 1999년 12월 22일 1면에 보도한 기사와, 같은 날짜에 김낙훈 당시차장이 썼던 한국경제 기사 전문이다.
독자는 다음 두 기사를 통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가 못하는가의 차이점이 어떤 것인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매일경제 1999년 12월 22일자 <내년 상반기 나스닥 직상장 추진…패스21세기 윤태식 회장>**

“저희 회사 주식을 세계에서 최고 가는 주식으로 만들겠습니다.”
천연생체 알고리즘을 활용한 사용자 인증 `패스폰'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윤태식 패스21세기 회장은 다소 흥분한 어조를 이렇게 말했다.
“패스21하면 세계적인 보안 전문회사로 통하는 세상이 분명히 오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가 컴퓨터산업을 일으켰다면 저희 패스21세기는 컴퓨터산업의 완결점인 보안문제를 완벽히 해결했다고 자신합니다.”

윤회장의 이같은 장담이 허언(虛言)이 아님을 증명하듯 이미 미국 모토롤라와 홍콩 스타TV, 프랑스 알스톰사 등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부터 전자상거래 인증과 관련된 제휴제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인증기술은 보안성을 강화하면 편리성이 떨어지고 편리성을 강화하면 보안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으나 지문의 땀샘을 활용한 패스폰의 개발로 보안성과 편리성 모두를 충족시키게 됐다”고 평가했다.

윤 회장은 내년 상반기에 이미 설립된 미국 현지법인(패스21 테크 컴퍼니)을 통해 나스닥에 직상장할 계획이며 국내시장에는 내년초 개설 예정인 제3시장을 거쳐 하반기에 코스닥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회장은 고등학교(동북고) 졸업한 후 곧바로 홍콩 중문대에 유학, 중국어를 전공(석사)하고 국내에 들어와 영화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유학시절 친하게 된 홍콩배우 주윤발의 조언으로 영화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그는 9년여전 영화를 보면서 지문관련 기술에 대한 강한 개발의욕을 느끼게 됐다고 소개했다.

특히 그 당시 지갑을 분실했는데 도둑이 1700만원이라는 거금을 감쪽같이 카드로 인출해 갔는데도 카드회사에서는 비밀번호가 맞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는 것. 이 부분에 착안해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증기술을 개발하면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모한 개발작업에 착수하게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그때의 강한 유혹이 없었으면 이 기술의 탄생은 없었을 것”이라며 “영화에서 번 돈과 자신 소유의 집과 땅 등을 모두 팔아 연구비 (약 110억원)에 쏟아부었다”고 털어놓았다.
윤회장은 패스21세기의 사훈(社訓)이 ‘젊은 생각, 젊은 기술, 꿈을 현실로'라며 무엇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든데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이계진기자>

***한국경제 1999년 12월 22일자 <패스21세기, 신개념 휴대폰 ‘패스폰’ 개발>**

신분증 신용카드 전자화폐 열쇠를 대체할 수 있는 핸드폰 내장형 전자상거래 인증기기가 개발됐다.
패스21세기(대표 윤태식)는 생체인증 기술을 이용한 핸드폰 형태의 “패스폰 (pass-phone)”을 개발해 삼정전자를 통해 생산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기술은 지문과 땀샘구조 등을 종합분석해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휴대형 패스폰에 지문정보와 땀샘구조가 입력되면 이미 등록된 사용자 본인의 정보와 비교해 패스폰 내부에서 본인여부를 1차 인증하게 된다.
이어 확인된 지문정보와 위성을 통해 수신한 시간정보가 함께 암호로 송신되며 수신장치에 의해 신원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정보의 불법유출이나 변조 해킹을 방지할 수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인공지능이 내장된 지문센서 반도체칩과 지문해독장치 오퍼레이팅 소프트웨어 등으로 구성돼 있다.<김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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