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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게이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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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게이트 <3>

소액투자자ㆍ종업원들만 쪽박

승승장구하던 엔론호의 항로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은 지난 해 8월 중순경이었다. 2001년 2월 케네스 레이의 후임으로 엔론 회장에 취임했던 제프 스킬링이 6개월만에 돌연 사임한 것이다.

맥킨지 앤 컴퍼니의 에너지 컨설턴트로 일하다 1990년 엔론에 합류한 스킬링은 오늘의 엔론이 있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그의 합류와 함께 엔론은 한번에 수십억 달러 어치의 선물 상품 거래를 하는 공격적이고 무자비한 에너지 트레이더로 변모한 것이었다. 그의 사임은 엔론의 사업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징조였다.

사실은 2000년 후반부터 본격화된 정보통신부문의 전세계적 불황으로 광통신 등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엔론의 투자가 물거품이 돼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스킬링은 물러나면서 자신의 주식 등을 처분해 6천2백만 달러를 챙겼다.

이어 10월 중순, 엔론의 곤경이 일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3/4분기 영업실적에서 무려 6억 3천8백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엔론의 주가 총액이 12억 달러나 깎여 나갔다는 사실이었다.

11월 8일 엔론은 지난 5년간의 영업실적중 적자 5억8천6백만 달러가 계상되지 않았다고 미 증권감독위원회(SEC)에 보고했다. 그동안 엔론은 영업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적자분을 공표하지 않고 외국 등의 동업자들에 의한 투자로 위장했다가 그때서야 사실을 실토한 것이다.

사태가 이쯤되자 엔론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급속하게 추락했고 엔론 주식의 투매가 시작됐다. 한때 주당 90 달러를 호가했던 엔론의 주식은 11월말 경에는 36센트까지 하락했다. 엔론은 11월말 경쟁 회사인 디에너지(Dynergy)에 인수를 제의했으나 엔론의 재무상태를 상세히 검토한 디에너지측이 인수를 거부하면서 결국 12월 2일 파산 신청을 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엔론의 경영진들은 한몫을 단단히 챙겼다. 케네스 레이 회장이 엔론 주식을 팔아 1억5천만 달러를 챙긴 것을 비롯해 엔론 임원들이 주식을 팔아 개인적으로 챙긴 금액은 1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파산이 임박한 지난해 11월에도 엔론의 고위 간부 6백여명은 1억 달러의 보너스를 챙겼다.

반면 엔론이 유망한 기업이라는 소문에 주식을 샀던 수천명의 소액 주주들은 수십달러 씩에 산 자신들의 엔론 주식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돼버리는 사태를 눈뜨고 당해야 했다.

더 기막힌 것은 엔론의 종업원들이었다. 엔론 파산으로 미국에서만 4천5백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게다가 이들은 노후를 위해 저축해온 연금을 거의 모두 허공에 날려야 했다. 401(K) 연금에 포함돼 있는 엔론 주식의 판매를 회사가 금지시키는 바람에 이들은 주가 하락에도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엔론 파산 직후 엔론의 본사가 있는 텍사스 휴스턴의 휴스턴 크로니클 신문은 졸지에 직장을 잃고 연금까지 날려버린 엔론 종업원들의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어제 우리는 개인적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나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우리의 연금계획에 있는 엔론 주식을 팔 수 있다는 허가를 받은 것은 11월 30일이었다. 그 결과 내 연금 계좌에는 고작 46달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20년동안을 일했던 내 동료는 겨우 1백2달러만을 남겼을 뿐이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이것은 범죄행위다”

베트남 출신의 엔론 종업원은 엔론의 파산을 1975년 사이공 함락에 비교했다.

“사이공이 함락되는 날, 월남군이 무기를 버리고 퇴각할 때 나는 그들의 눈에서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앞으로 다가올 불안한 미래를 잊으려는 듯, 서로를 껴안는 것을 보았다. 엔론이 문을 닫던 날, 그 당시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때의 불안과 혼돈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을 서로를 껴안고 애써 위로하려 했다”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의 편집장 윌리엄 그라이더는 엔론의 파산을 1998년 전세계를 긴장시켰던 롱텀캐피틀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에 비유했다. 그는 엔론은 에너지회사가 아니라 온갖 금융기법을 동원한 금융회사라고 지적했다. LTCM은 정교한 수학적 계산으로 채권 등 전 세계 금융상품의 시가 차액을 찾아내 이를 사고 팖으로써 이익을 실현했다. 차이가 있다면 엔론의 거래 대상은 금융상품이 아니라 전력, 에너지, 철강, 석탄 등 일반 상품이라는 것뿐이다.

두 회사 모두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동원해 거래를 지속하다가 시장 상황의 예기치 않은 변화에 부딪치면서 좌초했다. LTCM의 경우 러시아 국채의 급격한 가격 하락이었고 엔론의 경우에는 10여년간 호황을 누렸던 정보통신분야의 갑작스런 침체였다. 두 회사가 엄청난 액수의 돈을 끌어들여 무분별한 투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90년대 이후의 급속한 탈규제 덕분이었다. 결국 규제 없는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믿음은 허상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엔론의 사례는 역사의 시계바늘은 1910년대 이전으로 돌리려는 허망한 시도라며 시장은 적절한 규제가 따르지 않으면 파멸적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1920년대의 대공황 이후 마련된 여러 규제 및 감독장치들이 결코 정부의 쓸데없는 간섭이 아니며 모두가 시장의 적절한 작동을 위해 필요한 장치였다는 것이다.

그라이더나 크루그먼은 부시 일가와 엔론간의 정경유착 혐의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진보적 매체들은 클린턴의 스캔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부패혐의에 대해 주류언론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특수상황, 스캔들에 대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반된 태도 등이 이 문제의 전사회적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은 정치스캔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점잖은 태도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어쨌든 미 상원은 오는 1월 24일 케네스 레이, 제프 스킬링 등을 불러 엔론 파산에 얽힌 흑막을 캐기 시작할 것이다. 부시행정부로서는 자신의 정치스캔들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테러전쟁을 더욱 확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엔론 파산으로 피해를 입은 미국 서민들의 좌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 다. 미국의 대중적 칼럼니스트인 아트 부흐발드는 지난 달 중순 한 칼럼을 통해 이번 파산으로 피해를 입은 엔론 종업원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느 날 장총을 무릎 위에 두고 자기 집 현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의 손에는 해고통지서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에게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 나는 황금 낙하산을 타고 공중에서 떨어질 엔론 경영진들을 기다리고 있소. 그들은 테러리스트보다도 더 위험한 사람들이지’라고 말했다.

‘어째서 그렇죠?’

‘회사가 망해가는데 엔론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주식을 비싼 값에 팔아치웠소. 그러면서도 그들은 종업원들의 주식은 팔지 못하게 했지. 게다가 그들은 종업원들의 연금기금까지 끌어들여 스스로에게 수천만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했소. 회사가 망해가는데 그들이 우리에게 준 낙하산은 펴지지가 않는 것이었단 말이오. 황금 낙하산을 탄 이 놈들은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전쟁범죄를 범한 놈들과 다름없소. 그 놈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해 당장 총살시켜 버리고 싶소’

그는 자기 총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다시 한번 살퍼 보았다.

‘그들을 쏘지 못하도록 정부가 말리지 않을까’
‘그렇겠지, 그 놈들은 전부 텍사스 출신이고 엔론 사장은 부시 대통령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그런데 엔론은 도대체 무얼 만드는 회사요?’

‘아무것도 안 만들어. 한 회사에서 가스를 사다가 다른 회사에 팔지. 그들은 절대로 제 손을 더럽히지 않아.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업분야에 뛰어들어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십억 달러씩의 돈을 빌려 장사를 하지’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었다지’

‘이건 학살이야, 알라모 때보다도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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