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중동 문제로 돌아와서 볼 때, 이런 점에서 대량살상무기는 가장 근원적인 위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위험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가장 중대한 위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걸프전이 발발하기 전인 1990년과 91년에 이런 의문들이 제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라크에 의해서 그런 의문들이 일어났는데요. 걸프전이 발발하기 수일 전에 이라크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라크는 그전에도 그런 제안을 수차례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 전략적인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차원에서 쿠웨이트에서 철수하겠다고 제안했던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 제안에 대량 살상 무기 금지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미 국무부의 중동 전문가들은 이라크의 이 제안을 "진지하며" "협상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와는 무관하게 전쟁 발발 이틀 전에 행해진 미 국내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 국민의 약 3분의 2가 이라크의 이러한 입장과 동일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금지 제의, 미국이 거부**
우리는 이러한 이라크의 제안이 미 국무부 관리들이 결론 내린 것처럼 진지하고 협상 가능한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왜냐 하면 그 제안들이 미국에 의해서 철저하게 거부당했기 때문입니다. 그 제안들은 언론에 의해서 거의 완벽에 가깝게 효과적으로 은폐되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이에 관한 정보가 찔끔찔끔 흘러나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가 내놓은 제안들은 아주 효과적으로 역사의 기록에서 제거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아직 살아남아 있습니다. 버틀러 장군이 말한 것 만큼이나 상당한 부분이 말입니다. 그 제안은 정책 입안에끼지도 못하고 사라졌지만, 그리고 대중의 논의에서 사라졌지만, 아직 살아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로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그러한 제안들이 우리의 의제에서 사라진 것은 우리에게 강요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두 번째 문제인 터키와 쿠르드족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쿠르드족은 근대사 전반에 걸쳐 터키로부터 비참한 억압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1984년에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이 밀집해 있는 남동부에 대해서 대대적인 전쟁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 전쟁은 지속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미국이 터키에 제공한 군사 원조를 살펴보면, 이것은 종종 미국의 대외 정책의 좋은 지표가 되곤 했는데요, 터키는 미국의 전략적 동맹국이기 때문에 항상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군사 원조를 받아왔습니다. 미국의 원조는 1984년에 급증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해에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이 내전은 당시 냉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냥 내전이었습니다. 원조는 높은 수준으로 지속되었고, 잔악무도한 만행이 증가하던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미국의 원조는 최고 정점에 달했습니다. 그 최고봉을 이루던 해는 1997년 이었는데, 그 해 한해에만 미국이 터키에 제공한 군사 원조는 냉전 기간이었던 1950년부터 1983년에 걸친 전 기간에 미국이 쏟아 부은 것을 능가하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그 결과는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수만 명이 살상되었고, 2백만에서 3백만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하였으며, 3천5백개에 달하는 마을이 파괴되는 동시에 대대적인 인종청소가 자행되었습니다. 이 수치는 나토가 코소보에 감행한 폭격으로 파괴된 것의 7배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쿠르드의 경우에는 나토의 폭격이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하긴 터키 공군이 클린턴 행정부가 제공한 전투기로 폭격을 하긴 했습니다.
미국은 터키군 장비의 약 80%를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중장비 무기를 말합니다. 미국 국민이 그런 원조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뿐입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맘 놓고 제트기와 탱크, 네이팜 폭탄 등을 터키에 제공했고, 바로 미국이 제공한 이 무기들이 1990년대 자행된 가장 추악하고 비참한 만행의 일부를 수행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터키 남동부와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국경에 걸쳐서 쿠르드족을 탄압하는 작전이 반복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셀 수없이 많은 잔악행위와 공격이 미국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보호받고 있던 이른바 “비행 금지 구역”에서조차 자행되었습니다. 북동 이라크에서 있었던 작전은 22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레바논에서의 작전의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을 위반하면서까지 레바논 남쪽을 점령했었는데요, 이때 미국의 승인을 얻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기간동안, 아무도 미국과 미국의 우방국이 저지른 희생자를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정확한 실상을 모르지만 레바논의 자료에 의거해 판단해 볼 때 그 숫자는 대략 4만 5천명에 달하는 것 같습니다. 작은 숫자가 아니죠. 이라크 북쪽에서 있었던 작전도 레바논의 경우와 유사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으로 넘어가지 않더라도, 그럼 미국은 이 모든 사태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침묵입니다. 여러분이 이 점에 대해서 조사해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도록 촉구하는 바입니다. 종종, 괴짜들이 나타나 이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가 거론되고 도저히 간과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대체로 이렇게 반응합니다. 바로 스스로 인권 옹호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쿠르드족을 보호하는데 미국이 실패했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쿠르드족을 보호하는 데 실패”한 것은 러시아가 “체첸인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한”것과 대충 비슷합니다.
***터키, 미국의 무기 지원으로 쿠르드 반군 진압**
혹은 미국 정부가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클린턴 행정부가 터키에 엄청난 무기를 제공했을 때 - 사실 터키는 그 당시 미국 군사 원조의 주요 수혜국이었는데 (제가 이 점에 대해서는 금방 증명하겠습니다) - 그의 고문들은 무기가 사용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터키 무기의 80%를 제공했을 때 - 전쟁이 늘어가면서 무기 제공도 늘어갔었습니다 - 그 무기들이 지속되고 있는 전쟁에 진짜 사용될 것이라는 것과 바로 지속되고 있는 그 전쟁이 미국이 끊임없이 제공하는 무기의 유입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몰랐다고 말입니다.
혹은 때로 미국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 지역은 미국에서 동떨어진 머나먼 곳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니 터키 남동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누가 알겠느냐? 라고 말입니다. 미국의 공군 기지가 산재해 있고 미국의 핵무기가 탑재된 전투기가 있는 지역은 극도의 엄격한 통제와 감시 하에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겠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물론 아무도 상황 전개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인권보고서 같은 것을 읽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다른 연구보고서라도 보질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이 기간동안에 터키가 미국 무기의 제1 수혜국 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제 1 무기 수혜국은 다른 범주에 따로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스라엘과 이집트입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항상 제1의 무기 수혜국입니다. 그러나 그 양국을 차치한다면, 터키는 내전 기간동안에 이 면에서 제 1의 위치를 고수합니다. 한동안 제 1 무기 수혜국은 엘살바도르가 차지했었는데, 당시 엘살바도르는 자국 인구를 도살해 버리는 과정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터키가 그 1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터키는 1999년까지 미국의 제1 무기 수혜국이었습니다. 1999년에 터키는 콜롬비아에 그 위치를 내주었습니다. 콜롬비아의 경우 남반구에서 최악의 인권유린을 기록한 국가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바로 이 기간에 최악의 인권유린을 기록했는데요, 콜롬비아는 미국의 군사 원조와 훈련을 받았습니다. 왜 1999년에 콜롬비아가 터키를 제치고 제1 무기 수혜국이 되었을까요? 1999년까지 터키는 국내 저항을 진압하는데 성공했지만 콜롬비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콜롬비아로 엄청난 무기 유입이 바로 그해에 증가하게 되었고, 따라서 터키가 첫 번째 자리에서 밀려난 것이지요.
이러한 모든 것이 특별히 주목할 만한데, 왜냐하면 여러분 모두가 알고 있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우리는 지난 2-3년간 우리가 자화자찬의 홍수에 휩쓸려 있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우리가 인권 수호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사례에서 기꺼이“원칙과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관해서 말입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말을 빌자면, 우리는 나토의 국경 근처에서 인권이 무시되는 것을 묵인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인권의 웅대함을 높이기 위해 그들과 전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여기에는 몇 개의 단어가 빠져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나토의 국경 근처에서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참아 넘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토의 국경 내에서(WITHIN)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단지 참아 넘길 뿐만 아니라 이를 지원하기까지 합니다. 빠진 단어를 다른 어느 매체에서 찾아보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절대로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바로 현 시점에서부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이 문제의 배경에 대해서 좀 짚어보도록 하고, 지금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럼 최근에 있었던 알-아크사 팔레스타인 봉기에 대해서 살펴본 뒤 이에 대한 미국의 대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지요. 이 부분은 제가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이며, 여러분도 여기에 대해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셔야 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폭력행사는 不容, 이스라엘 폭력 행사는 적극 지원**
이 사태에는 공식적인 미국의 입장이 있습니다. 이 점은 바로 어제 마틴 인둑 미국 대사에 의해서 재천명되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폭력 행사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아주 엄중한 훈계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해 보는 것은 쉽습니다. 그렇다면 그 주장의 타당성을 분명하게 평가해 봅시다. 알-아크사 봉기는, 인둑은 이 폭력사태를 개탄했는데요, 9월 29일에 일어났습니다. 그날은 현재 이스라엘 총리인 아리엘 샤론이 하람 알-샤리프라고 하는 성지를 약 1천명의 군사를 대동하고 방문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 방문은 놀랍게도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금요일, 사람들이 기도를 마치고 모스크를 나올 때 엄청난 군대가 주둔해 있었습니다. 투석전이 있었고, 그 즉시 이스라엘 군대와 국경 순찰대가 발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6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바로 2000년 9월 29일이었습니다. 10월 1일에는 이스라엘 군용 헬리콥터가,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스라엘 조종사가 조종하는 미군용 헬리콥터가 가자지구에서 두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죽이고 이 폭력 사태를 급격히 확대했습니다. 10월 2일, 군용 헬리콥터가 가자 지구에서 10명을 사살했고, 이로 인해 35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0월 3일에는 헬리콥터가 아파트 단지와 다른 민간인 목표물을 공격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11월 초까지 헬리콥터들은 이같은 정치적 암살을 위해서 이용되었습니다.
미국은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미국의 대처는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이런 사태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 분쟁이 일어나기 전인 9월 중순에 미국은 이스라엘에 최신형 공격용 헬리콥터를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9월 중순에, 미 해병과 이스라엘군의 엘리트 부대인 IDF의 합동 군사훈련이 있었습니다. 이 훈련은 점령된 지역의 재탈환을 위한 군사 훈련이었습니다. 미 해병대의 역할은 이스라엘이 처음 사용해 보는 신 장비를 제공하고 그 장비를 사용하는 법을 훈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가 바로 9월 중순이었습니다.
10월 3일 그 날은 언론이 군용 헬기가 아파트 단지를 공격해서 수십 명을 살상했다고 보도한 날이었습니다. 또한 바로 같은 날 10월 3일, 이스라엘 언론이 미국과 이스라엘이 거래를 성사시켜서, 이는 10년간 이루어진 가장 큰 거래인데, 미군용 헬기를 이스라엘에 파송했다는 내용을 내보냈고, 같은 내용을 국제 언론이 뒤이어 보도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주요 군사 전문지들은 이번 거래에는 신 공격용 헬리콥터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은 비군사용 목표물을 겨냥하는 향상된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이스라엘이 헬리콥터를 생산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스라엘은 헬리콥터 생산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들여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10월 19일 국제 사면위원회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그와 같은 상황 하에서 헬리콥터를 제공하는 것을 중지하라고 요청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였습니다.
현 시점으로 돌아와서, 2001년 2월 19일, 미 국방부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막 5억 달러에 달하는 최신형 아파치 공격용 헬리콥터에 관한 또 다른 협상을 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제 이 점이 어떻게 다뤄졌는지 보도록 합시다. 사실 제가 한 친구에게 이 문제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분석을 해달라고 요청했었습니다. 이런 모든 사실들을 언론이 모르고 지나가지는 않았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한 신문사의 한 칼럼에서 이 문제를 단 한번 언급했을 뿐입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이제 모든 게 드러났습니다.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뉴스를 다루는 곳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 모르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국제 인권사면위원회의 보고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그 점에 대해서 알 것입니다.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말입니다. 상관없는 얘길 수도 있겠지만, 이 사실은 가장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적어도 하나 정도의 미국 주요 일간지의 편집국장의 관심을 끌었었습니다. 그리고, 보도국이나 편집국에서 그것이 아주 좋은 뉴스거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보를 통제하는 윗사람들은 분명히 이 사실을 알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그들의 독자들이 알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죠. 만약 국내에서 효과적인 사상주입을 실행하고 싶다면,국민의 이름으로 어떤 일이 자행되고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려주는 것은 꼭꼭 닫혀있는 게 훨씬 나은 창문을 열어 제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미 헬리콥터가 민간인을 공격하고, 정치적 암살을 수행했다는 보도를 간간이 하면서 여기에 쓰인 미제 무기를 팔아먹었다는 얘기는 쓰지 않으면 됩니다. 물론 물론 분쟁 당사자 양측에 대해 폭력 행사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준엄한 경고는 반드시 덧붙여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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