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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41>

제5강 주역(周易)-21

***5) 주역의 관계론 재론**
주역 사상을 계사전(繫辭傳)에 단 세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르면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持平)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踏步)하지 않고 부단히 진보(進步)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 사상은 한마디로 ‘변화(變化)’입니다. 주역은 사물의 변화와 발전을 해명하려는 구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변화를 읽음으로써 고난을 피하고 안락함을 얻으려는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고취락(避苦取樂)이 궁극적 목적입니다.

주역은 사물(事物)과 사건(事件)과 사태(事態)에 대한 일종의 範疇(kategorie)적 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칸트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의 성격을 주역은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주역의 64괘를 철학적 범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범주적 성격은 동시에 객관적 세계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이 점은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의 종류를 표현하는 진술형식(陳述形式)이나, 최상위의 유개념(類槪念)과 통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주역 서론 부분에서 이미 이야기했다고 기억합니다. 요컨대 주역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주역에서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철학적 구도 이외에 매우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이 일관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름아닌 절제(節制)사상으로서의 주역입니다.

일례로 건위천(乾爲天)괘의 상구(上九)의 효사(爻辭)입니다. 항룡유회(抗龍有悔) 즉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경계입니다. 초로 만들어진 이카루스의 날개가 태양열에 녹아서 추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좀 많은 시간을 가지고 논의해야하는 주제이긴 합니다만 위에서 주역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하였지요. 그리고 변화를 사전(事前)에 읽어냄으로써 대응할 수 있고 나아가서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절제란 바로 이 변화의 조직, 구성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조직한 관계망(關係網)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법이 로마 이외에는 통하지 않는 것을 잊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논의를 불필요하게 확대하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우리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택된 여러 부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아가 과학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객관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따로 분리하여 구성한 세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삶은 천지인을 망라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중심의 주관적 공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역의 범주는 그것이 판단형식이든 아니면 객관적 존재에 대한 진술형식이든 그 범주는 제한성을 띠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바로 이러한 제한성으로부터 도출되는 당연한 결론이라고 해야 합니다.

오늘 강의로써 주역을 마칩니다. 대성괘 몇 개를 그것도 일부만 읽어보는 것으로 주역을 이해한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공자의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주역을 두고 일컬은 말입니다. 책을 묶은 가죽끈이 3번씩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었다는 것이 바로 이 주역입니다.

그만큼 공자가 심혈을 기울여 읽은 책이 바로 주역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책은 죽간(竹簡)이기 때문에 가죽끈이 쉽게 끊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종이를 묶었건, 대나무 쪽을 묶었건 가죽끈이 3번씩이나 끊어진다는 것은 여간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역 강의를 마치면서 시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나로서는 주역 사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만 여러분은 아마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가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 있을 때 자신의 영정(影幀)에 쓴 시(詩)입니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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