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봅시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부수되는 질문으로 ‘테러리즘이란 무엇인가’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전염병, 암과의 투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명으로부터 일탈한 야만인들이 퍼뜨리는 전염병을 퇴치하겠다는 것이죠. 저도 물론 그 생각에 동감합니다.
그런데 제가 방금 인용한 이 말은 20년전에 나온 것입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슐츠 국무장관이 한 말이죠. 레이건 행정부는 20년전 취임하면서 국제테러와의 전쟁을 미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삼겠다고 선언을 했죠. 방금 제가 말한 그런 내용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외교정책의 핵심이 됐습니다.
문명으로부터 일탈한 야만인들이 퍼뜨리는 테러라는 전염병에 대항하는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국제 테러리스트 네트워크를 창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례없는 규모의 이 테러리스트 네트워크는 전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 기록들을 모두 다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교육받은 사람들이고 하니 고등학교에서 이런 것을 이미 배웠으리라고 생각합니다.(웃음)
***니카라과에 대한 레이건의 전쟁**
자, 이제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러니 이 문제를 놓고 논쟁할 필요는 없겠죠. 결코 최악의 사례는 아니지만 어쨌든 논쟁의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왜 논쟁의 여지가 없냐 하면 국제사법재판소, 유엔 안보리 등 최고 권위의 국제기구들이 이미 판결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국제법이라든가 인권, 정의, 뭐 이런 것들에 최소한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애깁니다.
제가 숙제 한 가지를 내드리죠. 지난 한달간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 사례를 언급한 신문 논평이 있었는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숙제인데 왜냐하면, 법을 지키는 국가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국제테러리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아니 실제로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알아보는 아주 중요한 선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테러의 심각성으로 보자면 9.11참사보다도 훨씬 심각한 것입니다. 제가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한 나라를 회복 불능의 폐허로 만들어버린 니카라과 사태에 관한 것입니다.
***니카라과의 대응**
예, 맞습니다. 니카라과는 분명히 대응을 했습니다. 물론 워싱턴에 폭탄을 터뜨리는 식으로 대응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습니다. 물론 증거도 충분했지요. 국제사법재판소는 이 제소를 받아들였고 니카라과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미국에 의한 ‘불법적인 힘의 사용’을, 다시 말해 국제테러라는 뜻이죠, 규탄하면서 범죄행위의 중단과 니카라과에 대한 대규모 손해배상을 명령했습니다. 미국은 최대한의 경멸과 함께 이 판결을 무시했고 앞으로는 국제사법재판소의 사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다음 니카라과는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 갔습니다. 안보리는 모든 국가들에 대해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특정 국가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나라를 겨냥한 것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죠. 미국은 이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제까지 국제법정에 의해 국제테러의 책임자로 비난을 받았고 동시에 국제법을 준수하자는 유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나라는 미국 하나밖에 없습니다.
니카라과는 이 문제를 다시 유엔 총회에 상정했습니다. 총회에는 법적으로는 거부권이 있을 수 없지만 미국의 부정적 표결이 거부권에 해당하는 효력을 발휘하죠. (국제법을 준수하라는) 유엔 총회의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나라는 미국, 이스라엘, 엘살바도르 뿐이었습니다.
다음해에 똑같은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 상정됐는데 반대한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니카라과가 법에 호소해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보았으니까요.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법이 통할 리가 없었던 거죠.
니카라과의 사례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사례는 아니죠.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또 얼마나 얘기하고 있는가, 학교에서 얼마나 배웠나, 언론에서는 얼마나 다루고 있나’ 등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그 사태의 본질은 물론 우리 자신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통찰력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시작일 뿐이죠.
미국은 전쟁을 대단히 빨리 격화시키는 것으로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에 응답했습니다. 그것도 초당적 합의에 의해서 말이죠. 전쟁의 양상도 또한 바뀌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테러군들에게 소프트 타겟, 즉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공격해도 좋다는 공식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이 니카라과 영공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테러 용병들에게 첨단 통신장비들을 지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통상적 의미의 게릴라가 아니었습니다. 니카라과군의 배치를 샅샅이 알 수 있었고 따라서 니카라과 군의 반격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농장이라든가 병원 등의 소프트 타겟들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것도 공식명령에 의해서 말입니다.
***미국의 반응은 어땠나**
우리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다 잘 알려져 있죠. 진보적 리버럴들은 이 정책을 양식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주류의 논의에서 좌파를 대변하는 마이클 킨슬리는 휴먼 라이츠 워치가 했던 것처럼 너무 성급하게 이 정책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논평을 썼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양식있는 정책’이란 ‘비용-효과 분석의 틀에 맞는 것’이라 했습니다. “테러에 의해 발생하는 피와 고통, 그 결과로 민주주의가 생겨날 가능성”을 비교하자는 것이죠.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 그것은 미국의 주변국들에서 생생하게 그 사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이, 즉 미국의 엘리트가 비용-효과 분석을 행하고 이 분석틀에 맞는 정책들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가히 신성불가침이라 할 수 있죠. 그들은 분석을 행했고 이 분석틀에 맞는 정책들은 과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마침내 니카라과가 초강대국의 끊임없는 공격에 굴복했을 때, 논평가들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아주 기분좋다는 듯이 이 방법들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면서 그 성공을 찬양했습니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예를 들어보죠.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국의 성공을 이렇게 칭송했습니다. “경제를 파탄시키고, 길고 치명적인 대리전을 계속함으로써 탈진한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정부를 전복하도록 만들었”고 미국으로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희생자들에게는 “부서진 다리와 파괴된 발전소, 황폐해진 농장들만을” 남겨줌으로써 미국을 지지하는 후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슈”를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뉴욕 타임스는 “니카라과 국민의 빈곤을 끝장냈다”면서 이같은 결과에 대해 “미국인들은 환희 속에 단결했다”고 말했습니다.
***테러는 통한다-테러는 약자의 무기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화입니다. 그리고 이 문화는 몇가지 사실을 드러내 보여 줍니다. 그중 하나는 테러리즘이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테러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테러는 목표 달성에 아주 유용한 수단입니다. 대체로 폭력은 통하기 마련입니다. 세계 역사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흔히 말하듯이 ‘테러는 약자의 무기’라고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분석상의 오류라는 겁니다. 다른 폭력 수단과 마찬가지로 테러도 실상은 엄청나게 강력한 자의 무기입니다. 테러를 약자의 무기라고 말하는 것은 강한 자가 지배적 담론 구조를 장악하고, 이에 따라 자신들의 테러는 테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같은 측면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역사적 예외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상 최악의 대량학살도 세상은 그런 식으로(강한 자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 보고 있습니다.
나치의 예를 들어 봅시다. 그들은 유럽의 점령지에서 테러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빨치산의 테러로부터 현지 주민을 보호한 것이죠. 모든 저항운동은 테러리즘으로 분류됩니다. 반면 나치의 행위는 대(對) 테러 행위로 인식됩니다. 물론 미국도 이같은 인식과 분류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차대전이 끝난 뒤 미 육군은 나치가 유럽에서 행한 대테러 작전을 면밀하게 연구했습니다. 우선 말해두어야 할 것은 미군은 나치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 자신이 이를 수행했습니다. 어떤 때는 동일한 타겟, 즉 2차대전중에 활약했던 레지스탕스 세력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미군은 나치의 수법을 연구하고 이를 책으로 펴냈을 뿐만 아니라 나치의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도 했습니다. 이른바 비판적 분석이라는 것이죠. 이건 잘했고 저건 못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중요한 것은 미군이 데려온 독일 육군 장교들의 조언에 의해 확립된 이 수법들은 미군의 중요한 전투 교범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폭동 진압(counter iusurgency), 대테러(counter terror), 저강도 전쟁(low intensity conflict) 등 뭐라고 이름 붙여도 좋습니다. 어쨌든 이런 수법들이 미군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수법을 사용한 것은 나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서양문명의 지도자들은 이런 수법들을 정당한 것으로서 사용할 수 있다고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죠. 지금은 미국이 서양문명의 지도자이고 따라서 미국도 이같은 수법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테러는 약자의 무기가 아닙니다. 테러는 ‘우리’-‘우리’가 누가 됐든-우리들에 대한 무기입니다. 만약 여러분중에 역사적 예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찾아보십시오.
***우리 문화의 본질-우리는 테러리즘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데 이 모든 것들, 즉 테러리즘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는 우리 문화, 우리 고급문화의 본질을 드러내는 흥미있는 사례입니다. 논의 자체를 아예 못하도록 억누르는 것도 인식의 한 방법입니다. 테러가 바로 그러한 예에 속합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죠.
게다가 미국적 이데올로기와 그 선전력은 너무나 엄청나서 희생자들마저도 미국의 테러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미국의 테러를 주제로 얘기를 꺼내려면 ‘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우리는 잊어먹고 있었네’ 하고 그 사실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논의 자체가 아주 심하게 억압되고 있으니까요. 폭력의 독점은 이데올로기나 다른 분야에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나카라과도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
테러에 대한 우리 자신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로 나카라과도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 대한 반응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자료조사 등을 통해 매우 면밀하게 조사해 본 적이 있습니다.
나카라과도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류 언론의 논평 중에서 니카라과의 자위권을 인정하는 글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그리고 이같은 점을 레이건 행정부와 그 선전요원들은 매우 흥미있는 방식으로 이용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니카라과 내전 당시에 니카라과가 러시아로부터 미그 전투기를 구매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미 정부가 정기적으로 퍼뜨린 소문이지요. 그러자 엘리트들은 매파와 비둘기파로 갈립니다. 매파들은 말합니다. ‘그래, 그들을 폭격해 버리지’라고. 비둘파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소문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자.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때 가서 폭격하면 돼.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니까’
어째서 니카라과는 미그기를 구입하려 했을까요. 사실 니카라과는 유럽으로부터 전투기를 사려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압력을 넣어 팔지 못하게 했지요. 왜냐구요. 니카라과의 자위 수단을 봉쇄함으로써 그들이 러시아로부터 전투기를 사도록 만들기를 원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선전전에 아주 좋은 소재가 될테니까요. 즉 니카라과는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니카라과는 텍사스에서 이틀 거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1985년에 니카라과의 위협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사실상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러니 니카라과로서도 러시아제 무기를 구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니카라과는 왜 전투기를 구입하려 했을까요. 앞에 내가 말한 이유들 때문입니다. 미국은 니카라과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 영공을 비행하면서 테러 용병들에게 온갖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따라서 니카라과 군과 마주칠 염려 없이 소프트 타겟을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니카라과는 자국의 영공을 지키기 위해 전투기가 필요했던 것이죠. 그러나 비무장 민간인들을 공격하라고 지시하는 초강대국의 침략 행위에 맞서 니카라과가 영공을 지킬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외는 거의 없었습니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니까요.
***온두라스-존 네그로폰테의 주 유엔대사 임명**
미국이 테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또 다른 사례는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은 주 유엔대사를 임명했습니다. 누구겠습니까. 그의 이름은 존 네그로폰테로 1980년대 초에 온두라스 대사를 지낸 인물입니다. 당시 미국의 지원에 의해 온두라스 보안군들이 자행한 대량 학살 행위를 그가 모를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당시 온두라스 총독으로 불렸던 그는 온두라스내 테러리스트 기지의 현지 감독관이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 안보리의-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 자체는 무산됐지만-비난을 받은 바로 그 기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 주 유엔대사로 임명됐습니다. 이에 대한 세계의 반응이 어땠는지 여러분이 직접 한번 살펴 보십시오. 직접 살펴볼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테러와의 전쟁이란 게 도대체 뭔지, 나아가 우리들 자신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알게 될 테니까요.
미국이 다시 니카라과를 접수한 이후 이 나라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물론 80년대에도 많이 파괴됐긴 했지만 미국 접수 이후의 피폐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화라든가 모든 면에서 말입니다. 니카라과는 현재 서반구(아메리카대륙)에서 2번째로 가난한 나라입니다.
사실 난 니카라과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미 말했듯이 니카라과를 예로 든 것은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남미 지역의 다른 나라들을 본다면 국가테러가 훨씬 심한 곳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항상 워싱턴으로 귀착되지요.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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