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진보신당의 당 대회 결정을 보고 썼던 글의 일부다.
"진보신당 내부의 분열이 보다 가시화될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는 대중적 영향력이 급속히 소멸할 수도 있으며 예상 밖으로 진보신당의 의지에 동의하는 진보대중이 모여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의 진보신당은, 너무 비관적인 비난처럼 들릴지 모르나, 정치적 변방에 잔류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으로서의 유의미한 존재가치를 지니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럴 때 노회찬, 심상정 등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결단해야 한다고 본다. 결단의 구체적인 내용은 본인들의 선택이겠지만 그 방향은 무엇보다도 통합정치와의 결합이다. 이만한 진보적 정치자산을 이뤄내는 일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도정치권 무대에 진출하지 못한 채 소수파 지도자로서 남는다는 것은 국가 전체로 보아도 손실이다." (3월 29일 프레시안)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노회찬, 심상정의 진보신당 탈당은 예상된 수순이었고 이제 새로운 방식의 정치적 생존과 통합정치의 구상에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였다.
통합파의 진로, 참여당의 문제
그런데 문제는 계속 되고 있다. 참여당과의 관계 설정에 각을 세우고 있는 대목이다. 당장9월 25일에는 민주노동당의 결정이 남겨져 있다. 논란은 있지만 참여당과의 결합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들 보고 있다.
진보신당 내부의 통합파는 좌절했고, 결국 당을 떠나 새로운 살림을 꾸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세력도 훨씬 약해졌다. 하지만 진보대통합 논의 구조에서 참여당 반대를 공식화한 세력과 하나가 되어 출구를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 민노당이 참여당과 진보대통합의 구성을 하겠다고 하면 진보정당의 역사를 허물고 배신하는 것이라는 극언까지 나오고 있는 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희망이나 전망과는 달리 굴러갈 공산이 크지 않는가? 그러면 어떻게 하려는가?
민노당 분당 당시 노회찬, 심상정 등은 새로운 진보세력의 재구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일대 실험과 도전에 나섰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다.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애초부터 민노당과의 재결합을 절박하게 바랬던 것도 아니었다. "도로 민노당"이라는 말을 통해 민노당의 현실에 대해 날을 세웠었다. 이제는 "진보세력 통합 우선론"으로 도로 민노당의 기존 논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진보세력의 재구성론"은 이들에게 사라졌다. 자신이 한 말을 뒤집는 것은 아닐까?
지금 진보정당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절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이 얼마나 될까? 안철수 하나를 상대하지 못하는 진보정당의 현 좌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는 대중들은 어디에 있을까?
▲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왼쪽)과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연합 |
"참여당의 진보정당화", 진화 아닌가?
참여당과 유시민 대표가 자유주의 세력이기에 민노당과의 결합은 기형이라고 지탄한다. 아니다. 그건 진화다. 그 말대로 자유주의 세력이 맞는다면, 이들이 진보세력과 함께 하겠다는 것은 역사적 성숙이고 정치적 진화가 아닌가? 바라던 바 아닌가? 참여당이 계속 자유주의세력으로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 진보의 희망인가? 끊임없는 의심과 과거행적에 대한 규탄으로 지새우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행이다.
상대가 다른 정치구도에서 활동하겠다고 하는데 너는 아냐, 라고 심사하는 자격과 권리는 진보대통합 구성원 누구에게도 없다. 지난 5.31 합의는 진보정당의 개방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 않는가? 그게 새로운 진보정당의 모습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중들이 정치적으로 정리하고 심판할 것이다. 자신들에게 그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세력은 대중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 오면서 민중진영 내지 노동진영은 숱한 고난을 겪었다. 민주정부라는 모습과는 다른 배반감과 고통을 치르면서 진보진영의 독자적 성취를 염원해왔다. 그러니 그러한 시기에 책임있는 세력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 이 시기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비판을 전개해온 바 있다. 거의 모든 진보적 지식인과 운동가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에도 비판의 칼을 맹렬하게 겨누었다. 이 점에 대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힘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가 세운 역사의 틀이 얼마나 허약하고 얼마나 많은 이들과 손잡고 가야 하는지 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종식되었다. 현실에서 완료되진 않았으나 그 위력은 감소했다. 그리고 이걸 바탕으로 집권하겠다는 세력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논쟁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집권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먼저 집권하고 논쟁은 계속되면 된다. 그 과정에서 권력은 새로운 기회와 토대 위에서 끊임없이 발전해나갈 것이다.
이 시대의 진보는 "집권"에 있다
진보정치는 이 나라 대중을 위한 정치다. 진보세력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이 시대의 진보는 "집권"이다. 집권을 초점으로 노력하지 않는 일체의 진보정치는 헛되다. 이걸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이 나라 역사의 발전을 가져오고 대중의 고난을 극복하는 길을 뚫어내는 열쇠다.
권력이 역사를 바꾼다. 대중의 강력한 지지 속에 태어나는 진보정권의 수립이 우리의 과제 아닌가?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제발 가지치기 함부로 하지 마라.
민노당과 참여당만이 새로운 진보통합의 구성원이 아니다. 시민사회와 기타 진보대통합당의 길에 뜻을 같이 하고 함께 하려는 이들 모두가 다 진보정당의 정당한 구성원이다. 진보의 재구성은 이렇게 대중의 정치적 의지와 감성 모두를 포괄하는 기초 위에 가능해진다.
민노당의 분당과 진보신당의 실험은 끝났다. 독자적 진보세력의 정치적 존립은 불가능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새로운 수혈과 융합이 요구된다. "도로 민노당"은 안 된다면서?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다. 한나라당 집권을 좌절시키고 새로운 민주정부, 진보적 역사를 세워나갈 과제에 힘을 모으겠다는 그 모두가 다 집결하는 것뿐이다. 거기에서 "진보의 새로운 시너지 위력"이 나온다. 이걸 거부하는 자와 세력이 도리어 진보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닐까?
정당의 몰락이 아닌가 할 정도로 정당체제에 대한 불신과 약화가 진행되고 있는 이 시기에, 진보대통합의 정당체제 건설은 폭넓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우경화? 대중을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진보대통합의 비밀은 대중에게 묻는 것이다. 대중은 합치라고 할까, 갈라서라고 할까? "우리들이 보기에는 그게 그거 같은데...." 하는 대중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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