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지난 15일부터 16일자 가판을 폐지하자 언론계를 비롯해 홍보업계와 광고업계, 가판시장 등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앙일보의 가판 폐지로 인한 편집국 등 주요부서 운영시스템 변화, 언론계와 홍보업계 등의 반응을 살펴봤다.
지난 15일 오후 6시 30분 16일자부터 가판(초판) 폐지를 실행한 중앙일보 편집국은 비상 대기체제를 가동해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편집국은 주요부서 차장급 이상 기자들이 사내로 들어와 기사 마감상황을 점검하며 미주판 용으로 만든 교정판 대장을 교정하고 타사 초판신문을 비교․검토했다. 초판 대장은 이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제작됐으며 일부 취재기자들은 국회 등 현장에서 후속취재를 담당했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초판이 폐지됐다고 해서 근무형태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마감시간도 이전과 동일하며 후속취재가 필요한 경우 40판 마감시감인 8시 30분까지 계속 취재를 하고 있다”며 “일단 폐지 이후의 상황을 더 지켜봐야 구체적인 문제점이나 변화 등이 감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제부 사회부 등 주요 스트레이트 부서는 출입처 홍보담당자들로부터 많은 전화질의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어떤 기사가 실렸는지, 어느 정도 비중으로 다뤄졌는지 등을 집중 질의했으며 일부는 9시 30분경 발행되는 지방 배달판(가판 폐지 이후 사실상의 초판으로 판수로는 40판)을 보겠다고 직접 중앙일보를 방문하기도 했다.
편집국은 이외에도 15일부터 제작회의와 지면평가회의 등의 시간과 운영방식을 조정해 시행에 들어갔으며 편집부 교열부 등 내근기자들은 40판이 제작되는 시점까지 일단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가판 폐지가 처음 실행된 15일 저녁 중앙일보 사내는 편집국외 전략기획실과 광고본부 경영지원실 판매부서 등 주요 제작관련 부서도 만일에 대비한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가 지방 배달판이 나오는 10시경까지 당직자를 정해 대기상태에 돌입하기도 했다. 특히 광고본부의 경우 광고지면의 칼라인쇄 상태 등을 점검하는 당직자를 두고 순번제로 인쇄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가판폐지에 대해 중앙일보 구성원 모두가 절대적 지지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중앙일보 노조는 가판 폐지의 목적과 취지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기자들의 노동강도 강화가 대안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가판 폐지가 회사측의 일방적인 주도로 시행돼 조합원들의 의견수렴과정이 미흡했다는 점과 근무시간 연장이나 노동강도 강황 등에 따른 대비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노조측의 지적이다. 노조는 앞으로 2~4주간 상황을 지켜본 뒤 조합원 설문조사와 노조대의원 면담 등을 통해 구체적인 대안과 근무형태 수정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언론계는 중앙일보 가판 폐지에 대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평가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다수 종합일간지들은 “적어도 한달 정도는 지나야 가판 폐지가 실효성을 갖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앙일보만의 가판 폐지는 신문의 정체성 회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른 신문들이 동참해야 가판폐지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사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다른 신문사 가판은 보면서 가판을 폐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언론.시민단체는 중앙일보 가판 폐지가 신문들의 차별화와 정체성 회복을 위해 바람직하다며 찬성하는 입장이다. 신문개혁국민행동 성유보 이사장은 “신문의 가판시장이 로비와 흥정의 대상으로 변질된 상황에서 중앙일보가 가판을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평가할 만하다”며 “가판폐지가 신문사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계기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업체 홍보실과 정부부처 공보관실 등 가판 신문을 통한 관련기사 점검이 주요 업무인 홍보업계 관계자들에게 중앙일보 가판폐지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 할 수 있다. 15일 저녁 중앙일보 가판이 사라진 이후 나타난 신풍속도 중의 하나는 지방배달판 초판이 나오는 오후 9시 30분경 중앙일보 사옥 주변에 검은색 고급승용차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주로 기업체 홍보실 담당자나 고급간부들이 배달판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중앙일보를 찾아오고 있다고.
17일 가판시장에서 만난 한 공기업의 홍보실 관계자는 “공기업의 경우 언론과 직접 부딪치는 경우가 많지 않아 큰 우려는 하고 있지 않지만 혹시라도 뒤통수를 맞을까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공기업보다는 기업체 홍보담당자들이 가판 폐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는 이와 관련, 지방 배달판을 보겠다고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외부 유출은 허용치 않으나 사내에서 열람하는 것은 막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중앙일보의 방침이 미국 뉴욕타임스의 방침을 따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
광고업계도 중앙일보 가판폐지에 촉각을 세우기는 마찬가지. 한 메이저 광고대행사 마케팅 담당자는 “최신형 윤전기 도입 등으로 신문 광고의 인쇄상태가 많이 좋아졌으나 광고인쇄상태에 광고주들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에 따른 대비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관행상 신문사측의 잘못으로 광고가 잘못되면 한번 더 광고를 내주는 것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가판 폐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은 아무래도 신문 가판 시장. 가판폐지는 가판시장 업자들에게 직접적인 생존의 문제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16일 오후 7시경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가판 신문을 정리중이던 한 가판업자는 “중앙일보의 가판 폐지가 전 신문사로 확대되면 가판업자들은 실직자가 되는 것 아니냐”며 “시장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일자리에 대한 걱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현재 가판시장에는 경제지 4개지와 조간 종합일간지 8개지 등 총 12개지가 나오고 있으나 중앙일보 가판폐지 이후 11개지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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