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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심리전에서 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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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심리전에서 밀린다

테러 위협, 민간인 희생자 등 전쟁 끌수록 불리

미국과 영국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옥죄고 있으면서도 내심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슬림 및 국제사회의 여론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심리전에서 중동국가 및 테러범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초조감 때문이다.

실제로 서방의 한 분석가는 이번 공습에 대해 “미국의 아프간 공습은 ‘테러와의 전쟁’의 서막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이는 기나긴 전쟁의 과정에서 가장 쉬운 부분에 해당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지난 주 “아랍 및 무슬림 세계에 대한 언론 및 여론조성 작업을 좀더 강화할 필요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슬람세계와) 보다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블레어 총리의 이 발언에 대해 서방측이 회교도 국가들과의 선동전에서 패배할 가능성을 ‘이례적으로’ 인정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블레어 총리의 한 고위 측근은 미 공습 직후 오사마 빈 라덴측이 TV를 통해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메시지들이 중동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적 중동정책에 대한 비판이 무슬림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면, 최근 미국내 3곳에서 탄저병균이 발견되면서 미국인들의 테러 공포가 증폭되고 있어 심리전 패배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인 희생자 점점 늘어나**

여기에 지난 13일 오폭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 발생이 확인되면서 미국의 입지는 더욱 축소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이날 카불 근교 탈레반 정권의 군사시설을 겨냥한 900kg짜리 스마트탄이 목표지점을 1마일(1.6km) 이상 빗겨가 민간인 거주지역에 떨어졌으며 이로 인해 4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아프간 공습이 시작된 이후 미국측이 민간인 희생자 발생을 공식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아프간내 또다른 지역에서 미군의 오폭으로 민간인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 가디언은 현지 목격자의 말을 빌어 미 전투기 2대가 아프간 동부지역의 한 마을을 폭격했으며 이로 인해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잘랄라바드 서쪽 30km 지점에 있는 카람 마을에 대한 오폭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이는 연합군측의 치명적 실수가 될 것이며 이로 인해 미국이 그토록 힘들여 구축해놓은 국제공조전선도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그동안 입지가 흔들렸던 탈레반 정권에 대한 아프간 국민의 지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망했다.

실제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反)테러 전선에는 미세하지만 균열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회교국가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아프간 공습의 중단을 요구해 왔으며 인도네시아 의회는 메가와티 대통령에 대해 워싱턴과의 관계를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국 국민들은 아직 미국의 아프간 공습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 그리스에서는 지지율이 절반 이하로, 노르웨이에서는 반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러시아 국민들은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수반하는 미국의 무력행사에 우려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테러 전선의 미세한 균열**

미국의 반테러 전선에 참여한 나라중 아직까지 공개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공습 중단 등을 요구한 나라는 아직 없다. 그러나 지난 10일 카타르에서 열린 이슬람 외무장관 회의를 통해 아랍국들은 테러전쟁이 아프간 국경 너머로 확대되는 것에 대해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중동지역내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사우디의 내부 사정도 심상치 않다. 이슬람세력을 중심으로 한 반미감정이 점점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의 보도에 따르면 9.11 테러 직후 사우디내 종교지도자들은 미국에 대한 성전을 촉구하는 칙령(파트와)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미군을 포함한 사우디내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이들 이교도(異敎徒)들을 보호하는 국내 정치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성전을 촉구하고 있다. 가장 존경받는 이슬람 지도자중 한명인 셰이크 하무드 빈 오클라 알슈아비는 9.11 직후 파트와를 통해 “무슬림을 적대하는 이교도들을 돕는 자는 누구든 이교도로 간주돼야 한다... 누구든 아프간 공격을 돕는 자와는 성전에 나서는 것이 무슬림의 의무”라고 말했다.

사우디 왕족에 대한 암살 명령이나 다름없는 이 칙령을 철회시키기 위해 내무장관 나이프가 셰이크 오클라를 만났으나 이 종교지도자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이슬람 지도자들이 발표한 파트와 중에는 파드 국왕에 대한 성전을 명시한 것도 있다.

***사우디 이슬람세력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

사우디 반체제 인사들의 결집체로 런던에 망명중인 ‘아라비아 이슬람 부흥운동’의 한 관계자는 “지금 사우디 왕족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우디의 존경받는 언론인 자말 카쇼기는 “갈수록 오사마 빈 라덴은 저항의 상징이 돼가고 있다”면서 “누구든 미국의 오만에 저항하는 사람은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중동지역을 순방중인 블레어 총리가 사우디 방문을 요청했으나 사우디 정부는 이같은 국내의 반서방 정서를 고려, 방문을 수락하지 않았다.

한편 일반 시민들의 반전평화운동도 점점 더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13일 영국 런던에서는 2만명의 시민들이 반전집회를 가졌다. 독일에서는 베를린 1만4천명, 쉬투트가르트 4천명 등 9.11테러 이후 최대의 반전평화시위가 열렸다. 스위스 수도 베른에도 5천명이 모여 미국의 아프간 공습 중단을 촉구했다.

***확대되는 반전평화시위**

호주에서는 시드니, 멜버른, 퍼스, 아델라이드 등지에서 반전평화집회가 열렸으며 멜버른 미국 영사관 앞에서는 24시간 철야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반전평화시위를 벌이는 군중들을 향해 경찰이 발포, 2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이란, 터키 등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수천의 군중들이 반미 반전 시위를 벌였다. 인도의 무슬림들도 뉴델리 1만명, 캘커타에 4천명이 모여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탈레반을 지지한다” 등을 외쳤다.

미 현직 관리들은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이 심리전에 밀리고 있다는 초조감은 미 국내에도 만연돼 있는 것같다. 워싱턴포스트는 14일 걸프전 당시 남서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했던 전직 미 육군 정보분석가 로버트 스튜어트의 칼럼을 실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길 수 없다’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 스튜어트는 “미국은 테러범을 보호하고 있는 국가들과의 사상의 전투에서 지고 있다”면서 테러전쟁의 궁극적 승리를 위해서 홍보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주말 국가안보회의를 소집, 탈레반 이후의 아프간 신정권 구성에 관해 논의했다. 아프간 공습이 새로운 내전으로 이어진다면 군사작전은 헛수고라는 사실을 서방측은 잘 알고 있다. 또 신정권 구상에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면 아프간 국민을 포함한 아랍 및 이슬람권의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미국 관리들은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탈레반 정권이 축출된 후 아프간 재건은 유엔의 임무라는 사실을 공식 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아프간에 파견될 유엔 평화유지군(PKO)도 가급적 이슬람권 국가의 병사들로 구성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미국은 중동평화 정책을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현재 분쟁의 초점인 예루살렘 문제에 대해 양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가 자신의 수도라고 주장하는 예루살렘을 양측이 공동 수도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중동평화가 성사돼야 이슬람권의 여론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미국측의 생각이다. 사실 미국은 9.11테러가 발생하기 직전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평화협상안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측은 미국이 이 문제를 자신들은 빼놓은 채 사우디, 이집트하고만 논의했다고 해서 발끈하고 있는 실정이다.

군사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전쟁, 여론을 사로잡아야 이길 수 있는 전쟁, 이것이 바로 21세기 벽두에 벌어지고 있는 테러전쟁의 본질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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