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과연 ‘테러와의 전쟁’을 아프가니스탄 국경 너머로까지 확대시킬 것인가. 지난 8일 존 네그로폰테 유엔 주재 미 대사가 다른 조직이나 국가들에 대한 추가행동의 가능성을 밝힘으로써 미국의 확전 가능성에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아랍 등 회교권 일반 시민들이 아프간 공습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데다 테러와의 전쟁의 최대 맹방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사우디 아라비아 등도 확전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어 미국의 확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네그로폰테 유엔 주재 미 대사는 유엔에 보낸 서한을 통해 “미국의 자위를 위해 다른 조직들이나 국가들에 대한 추가적인 행동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군사작전이 아프간 이외의 지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확전 대상 지역으로는 우선 이라크가 손꼽힌다. 이미 이번 공습 이전부터 폴 월포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미 정부내 강경파들이 이라크 공격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이는 상당히 개연성이 높다. 유엔에 서한을 보낸 네그로폰테 대사도 미국의 중남미정책 등과 관련해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보스턴 글로브는 9일 미국이 겨냥하는 국가는 이라크와 소말리아라고 보도했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에 따르면 이 두 나라는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를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라크와 관련해서는 9.11테러의 범인중 하나인 모하메드 아타가 지난 해 미국에 입국하기 직전, 체코 프라하에서 이라크 정보 관리를 만났다는 것이다. 또 소말리아와 관련해서는 알 카에다 조직의 일부가 소말리아로 근거지를 옮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이번 9.11테러 직전 알 카에다로 가는 것이 분명한 무기들이 소말리아에 입하됐다는 것이다.
***미국, 필리핀 등 아시아지역도 겨냥**
사실 테러를 근절하기 위한 미 군사작전의 범위는 중동에 한정되지 않는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도 군사작전의 범위에 포함돼 있다. 미국 정보기관에 가장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뉴욕타임스의 팀 와이너 기자는 10일 미국 정부가 이들 국가들도 장래 군사작전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미 정보 관리들에 따르면 이들 국가들에도 알 카에다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일례로 9.11테러 직전 알 카에다 조직원 수명이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공항을 통해 외국으로 빠져 나갔다. 또 인도네시아에는 빈 라덴 그룹으로부터 자금과 조직원, 무기 등을 공급받고 있는 무장 과격파 단체들이 다수 있다.
특히 필리핀은 아시아지역 알 카에다 조직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내 독립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아부 사야프 그룹은 아시아 지역내 알 카에다 조직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오는 19일 중국 샹하이에서 열리는 APEC 총회에서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정상들을 만나 테러 근절 대책을 협의할 예정이다.
물론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 군사행동은 당장의 현안은 아니다. 와이너 기자에 따르면 미 정보관리들은 정확한 일정은 밝히지 않은 채 테러와의 전쟁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이같은 계획은 미국이 매우 원대한 구상 아래 테러와의 전쟁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테러와의 전쟁은 전투력의 우위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전통적 전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여론을 등에 업어야 하며, 특히 이슬람권 민중들의 반발을 초래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미국 정부가 테러 참사후 근 4주간에 걸쳐 빈 라덴의 범행 증거를 제시하고 아랍권 등 40개국의 협조 약속을 받아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서방측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이 서방문명 대 이슬람문명간의 대결로 비쳐질 경우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아랍 민중을 대상으로 한 심리전에서 미국이 빈 라덴에게 패배했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했다.
***전쟁의 승패는 무력이 아닌 심리전에**
실제로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등 아랍권에서는 미국의 아프간 공습에 대한 민간의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확대할 경우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 탈레반 정권의 탄생을 도왔고 이번 사태 전까지 아프간의 주요 맹방이었던 파키스탄에서는 내정 불안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종교세력을 포함, 일부 국민들은 탈레반 정권에 대한 무샤라프 정권의 ‘배신’을 격렬히 비난하고 있다.
이번 공습 직전 무샤라프 대통령은 쿠데타 동지 2명을 포함, 정보기관 ISI의 사령관 등을 전격 인사조치했지만 군 내부에는 아직도 친 탈레반 세력이 상당수 포진돼 있다. 이번 테러와의 전쟁으로 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최대 맹방이며 핵무기 보유국인 파키스탄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다는 것은 미국이 결코 원치 않는 결과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전쟁의 주요 맹방인 영국과 사우디 등이 확전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사우디는 이번 전쟁이 내정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의 이번 군사작전에 찬성했지만 자국내 군사기지의 사용은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사우디 정부는 아프간 공격에 따른 민간인 희생자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다른 아랍국가로의 확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아랍권에서 이집트와 함께 미국의 최대 맹방이다. 9.11테러 직후 미국 정부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사우디 측의 중동정책 재고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9.11테러가 나기 열흘전 사우디의 압둘라 황태자가 부시 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미국의 중동정책 재고를 촉구했으며 부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사우디측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압둘라 황태자는 이 친서에서 미국의 친이스라엘적 정책 때문에 사우디 정부가 미국과 사우디 양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따를 수 없는 입장임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국이 사우디의 입장에 정면 배치되는 확전을 단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라크와 소말리아가 빈 라덴 그룹과 연관돼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미국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혐의와 의혹만으로 전쟁을 확대하는 것은 분명 무리수다.
***미 정부내 강.온파 갈등 소산일 수도**
9.11참사 이후 대응 방안을 놓고 미 정부 내에서는 끊임없이 강경파와 온건파간의 노출이 표출돼 왔다. 네그로폰테 대사의 이번 확전 가능성 발언도 국제 협조의 확보, 제한되고 분명한 군사 목표를 선호하는 파월 국무장관 중심의 온건파와 이라크 공격 등 일방주의적 군사행동을 주장하는 강경파간 갈등의 소산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 서한에 대해 아리 플레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갖는 권리에 따른” 의례적인 서한일 뿐이라고 그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어쨌든 아프간 공습이 거의 끝나감에 따라 미국은 확전이냐, 수습이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영국 BBC 방송의 데이비드 슈크만 기자는 테러와의 전쟁에 임하는 미국의 딜레마를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은 지금 2개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대다수 회교도들의 여론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미국이 이번 전쟁에서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 반면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군사행동을 더 넓게, 더 깊이 진행시켜야 한다. 이 2가지를 이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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