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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말한다

프레시안 창간을 준비하고 있던 7월 어느날 오후, 사무실로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농민운동을 하는 고교 동창이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울진 어딘가에서 엄청나게 큰 유기농 공동체를 보고 왔다는 것이었다. 자그마치 1천5백명, 여태까지 본 유기농 단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데다 주민들이 완벽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취재를 권했다.

창간호 아이템으로는 제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실천을 통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2,3년 동안 독서와 선후배들과의 대화를 통해 생태환경의 보존과 복원 없이 인류의 미래는 없다고 믿게 된 나는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1천5백명이 한곳에 모여 자연을 살리고 서로를 섬기며 새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가슴떨리는 일인가.

하지만 왕피골행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취재를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다 한농복구회(유기농 공동체의 이름이다)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미 지난 5월경부터 TV와 잡지 등에 적지 않게 소개돼 있었다. 아무리 중요한 사안이라도 이미 다른 매체에 보도됐다면 재고의 여지 없이 관심을 끊어버리는 것이 우리네 기자들의 생리다. 게다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체의 금전적 욕심을 버리고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면 필시 종교적 바탕이 있을 것이라는 일부의 쑥덕거림도 왕피골행을 망설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5일 왕피골을 찾은 것은 그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20년간 몸담았던 언론판을 뛰어 나와 새 신문을 만들어 보겠다고 노심초사하던 터라 그들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을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곳은 오지였다. 어스름 무렵에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마중나온 분은 승용차를 두고 자신의 무쏘에 타라고 했다. 승용차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리는 17km이지만 1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6.25 난 줄도 몰랐다는 곳, 뭍에서는 가장 외지다는 그곳을 캄캄칠흑 속에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찾아가며 그 분과 얘기를 나눴다.

20년전부터 준비했단다. 병든 땅, 병든 몸, 병든 마음을 고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공부, 다짐과 함께 개별적으로 농사를 짓다가 8년전 이곳에 모였다고 했다. ‘나홀로 유기농’은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에서였다. 주변에서 농약과 비료를 마구 뿌려대는데 내 논만 깨끗할 수 있겠는가. ‘한곳에 모이자, 그래야 진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생긴 유기농마을이 울진 왕피골 등 전국에 10개, 회원이 7천명이라고 한다.

7년을 또다시 준비했다. 유기농으로 땅심을 살리고 공동체 생활을 다져나갔다. 오지 속으로 들어갔던 그들은 올해 다시 세상 속으로 나왔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무공해 농작물들을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언론 취재에도 응했다. 운전을 하던 서동문씨는 올해 언론에 보도된 것만 50건은 될 거라며 지금도 추석특집 다큐멘타리를 찍기 위해 MBC 취재팀이 9일째 마을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왕피골 12개 마을중 본부마을. 두충 국수와 우리밀 빵, 옥수수 등으로 차려진 늦은 저녁상 앞에 둘러 앉은 이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선하고 평온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회사를 다녔지만 농사가 너무 좋아 가족 몰래 농사를 짓다가 20년전부터 아예 농사꾼으로 나섰다는 이명우씨(올해 69세인 그는 천연농법의 권위자로 한농복구회 농사기술의 총책임자다).
요즘 들어 우리 농법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농사꾼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오는 사람마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놀라워 한다”고 말했다. 최근 벌어진 미국 항공기 자살테러보다도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단다.

언론 보도가 나간 이래 공동체에 들어와 살고 싶다는 전화도 엄청나게 많아졌다고 한다. 서동문씨는 “그동안은 기존 회원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지만 앞으로는 세미나 등을 통해 회원 확대를 모색하겠다”고 말한다. 지난 20년간 갈고 닦은 슬기와 기술을 이제는 세상과 나눌 때가 됐다고 느낀 걸까.

이들의 실험이 ‘그들만의 낙원’으로 끝날지,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 소중한 씨앗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나름대로의 희망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것도 세상사람들이 벤처다, 닷컴이다, 주식열풍에 미쳐 돌아가고 있을 때, 삶의 근본인 대지를 살찌우며 서로를 섬기면서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모두가 “아”라고 말할 때, 나 홀로 “어”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년간 제 고집을 지키면서 희망을 키워가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프레시안을 만들어 가고 싶다.

경북 울진 왕피골에서=박인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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