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기업별 노조주의에 미래 없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기업별 노조주의에 미래 없다

[복지국가SOCIETY] 기업별 노조의 한계와 유럽의 복지 제도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앞으로는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자리 창출과 고용률 증대는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주요 정책 공약 중의 하나였는데, 다시 한 번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이를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정책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더욱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시간제 근로 활성화를 제시한 후 거센 사회적 비판을 받았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떠한 일자리를 창출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거나 하청업체에 종사하는 것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요인이 되는 현실에서 단지 고용률을 제고하는 것은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실업률보다 높은 상대빈곤율이 의미하는 것: 나쁜 일자리의 창출

OECD 주요국의 2010년 실업률과 상대빈곤율(중위 소득의 50% 이하 소득자의 비율)을 살펴보자(그림 1). 우리나라는 실업률은 낮지만 상대빈곤율이 높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미국, 캐나다와 같은 자유주의 복지국가에 속하는 국가들과 함께 실업률보다 상대빈곤율이 훨씬 높은 데 반해, 유럽의 복지국가에서는 실업률과 상대빈곤율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거나 오히려 실업률보다 상대빈곤율이 더 낮은 국가도 있다.

▲ (그림 1) 주요 선진국의 2010년 실업률과 상대빈곤율. 다만 2010년 상대빈곤율 데이터가 없는 국가는 2009년 데이터를 사용. ⓒ출처 : OECD. SocialExtractrator에서 필자 작성

이러한 수치는 한국의 고용과 복지가 안고 있는 두 가지 문제점을 보여준다. 첫째는 일을 해서 임금을 받더라도 그 수입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저소득층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고, 둘째는 실업 상태에 빠진 사람을 구제하는 사회 안전망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고용률 제고만을 중시하는 정부 정책으로는 근로빈곤층이 증대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결국 일자리 창출과 함께 나쁜 일자리를 줄이고 사회 보장 제도를 확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권리로서 노동과 복지: 사회권의 제도적 보장

나쁜 일자리를 줄이고 사회 보장 제도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고용과 복지의 이면에 있는 국민의 권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고용을 먼저 살펴보자. 자본주의 발달 초기인 18~19세기에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와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력을 제공받는 기업 간의 거래는 큰 제약 없이 이루어졌다. 노동에도 자유주의 원칙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큰 비용 없이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 기업과 임금으로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노동자 사이에는 힘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기업은 이러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노동자에게 더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했고 노동 조건은 열악해졌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노동3권이 제도화되었다. 즉 노동자가 기업의 막대한 힘에 대항해 자신의 노동 환경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 것이다. 이는 노동자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마지못해 노동해야 하는 것을 막고,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노동자에게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복지 또한 시혜적 수급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권리로 보장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얻은 교훈에서 비롯되었다. 즉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노동의 상품화를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인간이 질병, 고령, 실업 등으로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에도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민에게 사회권을 보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권은 노동자에게 기대 이하의 노동 조건을 거부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회권 확립은 노동권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시장 경제 속에서도 노동과 복지에 대한 권리가 확립되어 왔다.

유럽 노동조합의 역할과 기업별 노동조합의 문제점

노동과 복지에 대한 권리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연적으로 부여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권리를 요구하는 세력의 정치적 투쟁과 이에 대한 타협의 산물로 정착된 것이었다. 여기에 큰 기여를 한 것이 노동조합이었다. 유럽에서는 노동조합이 산업별로 조직화되어 기업 규모나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동일 노동, 동일 가치'를 확립해 나갔고, 사회 보장 제도를 확충하는 데도 힘을 썼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유럽과는 다른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즉 한국에서는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기업별로 노동조합이 조직화되어 노사 협상 또한 기업별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결과 노동조합은 산업 전체의 고용 조건과 사회적 위험을 분산시키는 복지 제도 확충을 등한시한 채 필연적으로 기업 내의 고용 보장과 임금 인상 등을 추구하게 되어 버렸다. 결국 노동조합의 구조는 기업 규모와 고용 형태에 따른 임금과 복리후생의 차이를 더욱 심화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한국뿐 아니라 노동조합 구조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노동조합이 시민적 권리 확립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옅었던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노동조합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귀족 노조라는 비판마저 들어야 했다. 물론 기업별 노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는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지만,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노동조합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과 사회권 확립에 기여한 노동조합의 역할까지 부정하는 비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이 가야 할 길: 좋은 일자리와 사회 보장 제도의 확충

한진중공업의 정리 해고 같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희망버스가 가야 한다면 그 비용은 너무나 크다. 이러한 사태가 근원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역할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노동조합에 그러한 힘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저하되고 노동 운동이 쇠퇴하는 현상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일어나고 있다.

그 속에서도 특히 한국과 일본의 기업별 노조는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활동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세계화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 양국 노동조합의 전략은 어떠한지 두 가지의 선택지에 비춰 비교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그림 2)의 왼쪽 부분에 보이는 것처럼 '인사이더 전략'을 사용하는가, '아웃사이더 전략'을 사용하는가 하는 선택지이다.

▲ (그림 2) 노동조합 전략의 두 가지 선택지. ⓒ안주영

여기에서 인사이더 전략은 노사의 협력적 관계에 기반하여 노동조합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고, 아웃사이더 전략은 협상의 장에 머무르지 않고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림 2)의 오른쪽 부분에 보이는 것처럼 사회운동 세력과 비조합원을 포섭하고 연대하려고 하는 '제휴 전략'을 사용하려고 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선택지이다.

이 두 선택지 간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인사이더 전략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고, 아웃사이더 전략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구성원들만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국한하지 않고 비조합원과 사회 운동 세력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목표 설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노동조합 간부조차 총파업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다른 사회 세력과 연대하는 데 무관심하다는 노동조합 내부의 자조적인 평가가 있다. 노동조합이 노사 협력에 기반한 인사이더 전략을 고수하고 다른 사회운동 세력을 포섭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 운동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너무 전투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불법 파견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조차 무시하고 노동자의 단결권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기업이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노동조합에만 전투적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전투적이냐 협력적이냐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아웃사이더 전략이 기업 내 이익 실현에 제한되지 않고 비조합원과 다른 사회 운동 세력을 포섭하려는 시도 속에서 사용되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기업별 조직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만으로 고용과 복지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할 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 정책만으로 고용과 복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통해 증명되었다. 좋은 일자리와 사회 보장 제도의 확충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경험에서 살펴보았듯이,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필요조건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시도하고 있는 산별노조 전환과 노동운동의 실체적 발전에 여전히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