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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롤링·스필버그에게 누진세 걷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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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롤링·스필버그에게 누진세 걷으면 안 된다?

[복지국가SOCIETY]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길

지난 2008년 말 미국발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변화가 생기리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세계 최대의 증권 회사들이 연쇄 도산을 일으키는 등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응해 그동안 느슨하게 완화되었던 금융에 대한 규제의 고삐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며, 이러한 방향으로 변화를 낙관한 이들도 많았다. 또한 금융 위기가 발생한 데는 자유 시장을 극단적으로 미화한 경제학자들의 잘못도 컸다며, 새로운 경제 이론의 출현을 기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1930년대의 뉴딜에 비견할 정도의 대대적인 개혁 입법은 실현되지 않았으며, 경제학의 근본적인 쇄신 작업 역시 본격화되지는 못했다.

금융 위기 이후, 불평등 문제에 대한 인식과 공감 확산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자유 시장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믿음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불평등의 문제와 관련해서 특히 두드러졌다. 위기 이전에는 경제적 불평등이 시장의 힘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면 내버려 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기술 발전이나 세계화와 같은 객관적 요인의 변화로 자본이나 기술이 있는 상위 1%의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돈을 벌 기회가 생긴 반면, 그렇지 못한 나머지 99%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은 어쩔 수 없으며 이는 전체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금융 위기의 발발 이후 불평등의 흐름은 전 세계적으로 더욱 거세졌고, 이 과정에서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특히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폴 크루그먼 등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고, 앞으로 금융 위기의 재발을 막고 모든 이에게 기회가 열린 동반 성장의 경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불평등의 문제와 정면 대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 지난해 1월 24일(현지 시각) '부자에게 과세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는 월가 점령 시위대들. ⓒAP=연합뉴스

불평등 확대를 정당화하는 그레고리 맨큐의 논리

이러한 상황에서 얼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경제학 교과서를 쓴 그레고리 맨큐가 1%를 옹호하며 불평등을 지지하는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맨큐는 완전한 평등이 실현된 사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가들이 출현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자며 일종의 사고 실험을 제안한다. 이때 그가 명시적으로 거론한 기업가들로는 아이팟을 만든 스티브 잡스,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J.K. 롤링,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있다. 이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은 이들의 창의적인 제품을 기꺼이 구매하게 되고, 이러한 교환은 자발적이어서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후생이 늘어난다.

하지만 다수 구매자들의 돈이 극소수 판매자의 수중으로 이전됨에 따라 이제까지는 없던 엄청난 소득 불평등이 발생한다. 맨큐는 이처럼 새로운 상황 속에서 정책 당국이 어떻게 대응을 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묻는다. 여기에서 발생한 불평등은 구매자와 판매자 양쪽의 동의 아래 자발적으로 일어났고, 양쪽 모두 후생도 늘어났으므로 정책 당국은 개입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불평등 그 자체가 문제이므로 큰돈을 번 기업가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사후적으로라도 불평등을 줄여야 하는지 판단을 해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맨큐의 대답은 물론 전자이다. 만약 기업가에게 세금을 부과하면 스티브 잡스나 롤링이 더 이상 창의적인 활동에 최선을 다할 동기를 잃음으로써 아이팟이나 <해리 포터>처럼 멋진 제품이나 작품을 소비하는 즐거움도 없어지리라는 것이다. 요컨대 맨큐는 스티브 잡스 등을 대표로 설정한 간단한 사고 실험을 통해 부자가 많은 몫을 챙겨가는 것은 그만큼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불평등의 확대란 더 창조적이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사회가 치러야 하는 불가피한 비용임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여기에는 이러한 불평등의 확대가 정치적 특권이나 시장의 왜곡을 통한 게 아니라 시장의 자연스런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른 결과라면 그 어떤 명분으로든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책적 함의도 수반된다. 한편, 맨큐의 논의는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더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하고, 그 대표적인 해법을 누진세율 인상에서 찾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는 최근의 분위기를 이론적으로 제압하려는 의도를 띤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맨큐의 사고 실험은 불평등 문제를 역설하는 최근의 논의들에 맞서 1%를 옹호하는 나름의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의 논증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1%를 옹호하는 맨큐 논리의 한계와 문제점

무엇보다도, 불평등을 초래하는 기업가의 사례로 잡스, 롤링, 스필버그를 가정한 것부터가 증명해야 할 것을 전제로 삼았다는 의혹을 품게 만든다. 당장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서 1%의 대표로 지목되었던 사람들은 천문학적 고액 연봉을 챙겼으나 자산 시장의 거품을 부풀렸고 마침내는 자신의 회사를 파산으로 내몰며 경제 위기를 불러와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애버렸던 금융 기관의 임원들이었다. 맨큐의 사고 실험이 이러한 금융 기관의 최고경영자를 상정했다면 불평등을 옹호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잡스와 롤링 그리고 스필버그를 가정하더라도 문제는 있다. 이들의 경우, 금융 기관이나 여타 회사의 최고경영자들과 달리 소비자들이 기꺼이 주머니를 털게 만들 정도의 높은 가치를 창조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이들의 천문학적 보수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이들이 엄청난 숫자의 고객들을 상대로 막대한 부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노력과 재능보다는 외부의 사회적 요인에 힘입은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엄청난 소득을 한꺼번에 거둘 수 있었던 건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대중문화 영역에서 '네트워크 효과'의 힘이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스필버그는 할리우드가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바로 그 시점에 영화감독을 시작했다는 점이, 롤링은 특정 작가에 대한 쏠림 현상이 본격화되었던 2000년대 초반 활동을 본격화했다는 점이, 이들의 엄청난 부를 설명해주는 주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미적 감각과 애플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종류의 디지털 제품을 세상에 선보였던 잡스조차도 그가 거둔 성공은 실리콘 밸리의 우수한 인력풀과 기술력, 다양한 협력사, 첨단 IT 기술의 발전, 시장의 형성과 같은 사회적 요인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셋째, 잡스나 롤링이나 스필버그가 없었더라면, 아이팟이나 <해리 포터>나 <인디아나 존스>도 없었겠지만, 그와 비슷한 제품과 작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역량이 여타 경쟁자들에 비해 훨씬 뛰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경쟁자들에 비해 재능이나 역량이 '아주 약간' 뛰어났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며,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능력의 차이는 작거나 거의 없었지만, 해당 산업 고유의 특성인 높은 네트워크 효과 덕분에 성과의 차이는 엄청나게 컸던 것이다.

오늘날 연예 오락이나 스포츠와 같이 슈퍼스타에게 대중의 사랑과 관심과 돈이 쏠리는 산업에서는 재능과 더불어 운도 성공의 아주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다. 그리고 운과 재능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따라서 잡스나 롤링이나 스필버그처럼 성공한 기업가로서 보수를 독식하는 상황에서, 그 금액으로 이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따라서 부자들이 소득이 높은 것은 그만큼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노력과 재능을 많이 발휘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높은 생산성을 거두었기 때문이라는 맨큐의 주장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로이터=뉴시스

승자 독식 시스템에 대응하는 두 가지 방식

뛰어난 기업가가 성공을 거두고 그에 따라 성과를 독식하는 것의 이면에는 가치 생산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나 노력과 능력 못지않게 운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승자에게 판돈의 전부를 몰아주는 시스템은 윤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제가 많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의 대응이 가능하다.

첫째, 시장의 힘으로 이루어진 소득 분배에 누진 과세를 적용하는 것이다. 시장에 의한 분배가 공정한 소득 분배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진 과세는 부자와 빈자에게 모두 공정한 재분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정부는 누진 과세를 통해 확보한 세원으로 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클러스터나 사회적 연계망을 유지하고 가꿔나간다. 한편 운이 나빠 시장 경쟁에서 승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소득 부족분을 보전해 줌으로써 새로운 경제 활동에 나설 기운을 북돋운다.

이때 맨큐는 누진 과세가 부자들이나 기업가의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리라 우려하는데, 그 근거는 그리 튼튼하지 않다. 과거 미국은 1950년대 최고 소득세율이 90%를 넘었으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소득세율이 70%대였다. 그렇다고 해서 소득세율이 훨씬 낮은 지금이 그렇지 않던 예전에 비해 경제가 더 좋다고 할 수도, 최고경영자들이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맨큐가 주인공으로 상정한 스필버그, 잡스, 롤링은 지금보다 세율이 훨씬 높았던 시절에 또는 미국보다 세율이 더 높은 나라에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더 많은 고객을 얻기 위해 영감을 발휘하며 분투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사실 소득세율의 인상이 그동안 열심히 활동하던 사람들의 경제적 의욕과 창조성을 꺾으리라는 우려는 인간이 금전적 동기에 더해 성취감이나 사명감 그리고 타인과 맺는 관계 등 다른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의 영향도 받는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단견에 불과하다.

둘째, 승자에게 모든 열매를 몰아주는 시스템에 대한 또 다른 대응으로는 그동안 약화되었던 사회적 규범과 제도, 그리고 관행을 다시 강화해 임금 결정 및 소득 분배의 과정에서 공정성의 문제를 명시적으로 고려하는 길도 있다. 여기에는 노조의 단체교섭권 강화, 최저임금 인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등의 방안이 있고, 주식회사 이외의 협동조합과 같은 방식으로 경제 활동을 조직화하고 생산물을 분배하는 더 근본적인 대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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