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인근 철탑 위에서 280일째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병승 씨는 "두 눈 감고 희망버스만 끝나면 내려갈까 했다"고 말했다. 철탑의 폭염보다 "잊혀간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던 그들이었다.
철탑에 오른 비정규직 해고자의 말에 좌중은 숙연해졌다. 일부는 경찰과 현대차 사측이 쏜 물포에 맞아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였다.
희망버스 참가자, 현대차·경찰과 충돌…부상자 속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희망버스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버스 42대와 기차를 타고 온 참가자 3500여 명이 울산 공장 인근 철탑 농성장에 모인 가운데 20일부터 1박2일간 열렸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20일 오후 7시께 울산 공장 앞에서 집회를 여는 과정에서 사측 및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일부 참가자가 '대법원 판결 이행'을 촉구하며 공장 진입을 시도했고, 사측은 소화기와 물포를 쏘며 진입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소화기 분말을 얼굴에 맞은 참가자 다수가 구토감을 호소했다.
공장을 둘러싼 철조망을 뜯어낸 일부 참가자들은 만장에서 깃발을 뗀 대나무를 휘둘렀고, 현대자동차 용역 경비와 관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돌을 던졌다. 참가자 10여 명은 날아온 돌과 쇳조각에 머리가 깨지고 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몸을 다쳐 구급차에 실려 갔다.
오후 9시께 경찰은 "불법 집회를 중단하고 해산하라"는 경고 방송을 한 뒤, 살수차를 동원해 물포를 쐈다. 참가자들은 스크럼을 짜고 "폭력 경찰 물러가라", "비정규직 철폐" 등의 구호를 외쳤다.
▲ 20일 저녁 철탑 농성장이 있는 현대차 울산 공장 명촌 중문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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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 상황은 오후 10시 30분께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참가자들은 문화제를 시작했다.
"'명박산성'보다 높은 '몽구산성'"
복기성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과 함께 지난 5월 171일간의 농성을 마무리하고 쌍용차 인근 철탑에서 내려온 한상균 전 쌍용자동차지부장은 "너무나 미안하게도 우리는 먼저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두 동지들(천의봉·최병승)에게 이 땅의 노동자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전 지부장은 "이제 두 동지들을 무사히 내려오게 해야 하는데 현실이 만만치 않다"며 "'몽구산성'은 이명박(전 대통령)이 쳤던 광화문의 산성보다도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새벽 1시 20분께 최병승 씨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쓰는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는 농성을 이어가기로 했지만, 올해 들어 비정규직 동료들의 자살이 잇따라 이어진 것에 대해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최 씨는 "(고민 끝에) 동지들, 부모님을 더 괴롭히기로, 농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한 첫날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박정식 동지의 죽음을 접했다"며 "영정 앞에 술 한 잔 따르지 못하는 내 처지가 한스러워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중공업 이운남, 기아차 윤주형, 현대차 박정식 동지도 죽었다"며 "(반면에)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아직 성과를 못 얻었다. 동지들의 피값이 보상 받을 수 없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최 씨는 "현대차는 아직도 신규 채용만 주장한다"며 "선심 쓰듯이 얘기한다. '제발 채용해 주십시오' 이런 것 아니냐고 막말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차는) 비정규직 파업을 불법이라 얘기하며 경총의 입을 빌려 공권력 투입을 주장한다. 최소한 10년 넘게 몇 만 명의 불법 파견 노동자를 사용한 현대차가 법을 말한다"고 그는 꼬집었다.
최 씨는 "동지들을 죽인 건 우리가 아니다. 사람을 착취하고 불법을 자행한 현대차 총책임자인 정몽구 회장"이라며 "우리가 또다시 포기한다면 정몽구 회장은 우리 동지들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모든 사내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쟁취하자"며 "살아서 내려가겠다"고 다짐했다.
21일 새벽 2시께 문화제를 마친 희망버스 기획단은 아침 집회를 연 뒤 이날 오전 10시께 행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편, 최 씨와 함께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의봉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은 희망버스 참가자와 사측 간의 대치 상황을 장시간 서서 지켜보다가 건강에 무리가 와 이날 발언하지 못했다.
▲ 문화제를 보고 있는 희망버스 참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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