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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참으라'는 어머니가 야속한 철탑의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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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참으라'는 어머니가 야속한 철탑의 폭염

[기고] 잊혀가는 철탑 농성, 7월 20일 희망 버스를 기다리며

7월 첫날 새벽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연일 계속된 폭염으로 불덩이 같던 철탑이 새벽이 되어서야 선선해진다. 이 철탑에 올라온 지 258일, 9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먹구름이 몰려올 모양인지, 울산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세차다.

지난 해 10월 17일 철탑에 처음 올랐을 때 어머니는 "아들아 미안하다. 너는 그 높은 데 바깥에서 자는데 따뜻한 방에 누워있는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한 달만 있으면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어머니를 위로했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흐르고, 가을과 겨울과 봄이 지나 여름을 맞았다.

낮에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서 전화를 거셨다. 258일 하루하루가 나보다 더 아프신 어머니다. 어머니가 수화기 너머 힘없는 목소리로 날씨를 물으시며 무심코 "이제까지 참았으니 조금만 더 참으라"고 하신다.

아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할 말이 없어서 그냥 하신 말씀일 텐데 오늘따라 그 말씀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내려오라고 따끔하게 말씀하시면 그냥 미련 없이 내려갈 수도 있는데 하는 서운한 생각이 든다. 내가 지쳐가고 있는 것일까?


조금만 더 참으라는 얘기가 야속하게 느껴지고

▲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위)과 최병승 조합원(아래) ⓒ프레시안(최형락)
몇 년 만에 최악의 한파가 몰아쳐 동상 걸린 발을 감싸 안고 엄동설한을 버텼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폭염과 폭우, 태풍에 대한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 그런 생각이 계속 들어서 그랬는지 6월 한 달이 견디기 힘들었고, 매 순간 나의 존재감을 실험하게 만들었다.

내일부터 장마라고 한다. 장마 대비라고 해봐야 천막 하나랑 텐트가 날아가지 않게 버티고 있는 내 몸뚱이가 전부다. 그런데 이 몸뚱어리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안 쑤시는 데가 없다.

더욱 더 아픈 건 마음이다. 여기에 원래 사람이 살고 있었던 마냥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철탑은 잊혀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불법 파견에 맞서 싸워왔던 10년의 시간을 신규 채용과 바꾸지 않기 위해 우리 조합원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이것마저도 사람들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걸까?

회사가 요구해서 불법 파견 특별교섭이 열렸지만 지난 6월 26일 열린 16차 교섭에서 회사는 불법 파견된 사람이 대법원에서 이긴 최병승 혼자라고 우겼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도,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도 현대차에게는 휴지 쪼가리인가 보다. 정말 뻔뻔하다.

회사는 교섭을 통해서 신규 채용 인원을 조금 늘리고 경력을 일부 인정하게 해서 우리를 무너뜨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 혼자만 정규직이 되기 위해 여기 철탑에 올라온 것이 아닌 것처럼, 전국의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내 하청과 비정규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데,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그런데 걱정스럽다. 우리 조합원들이 버텨야 되는데….

철탑은 잊혀갈 수 있지만

한여름이 다가오면서 계속 우울하고 속상했다. 잊혀간다는 두려움, 이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자꾸 생겨나고, 우리만 이런다고 되는 걸까 하는 고립감이 점점 커져왔다. 밥맛도 없어지고 전화 통화도 싫어졌다.

그러다가 희망 버스가 울산으로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6월 26일 김진숙 지도위원, 쌍용차 한상균 전 지부장, 용산 철거민 이충연 위원장까지 50명이 넘는 고공 농성자들의 기자회견 소식이 페이스북을 타고 철탑에 전해졌다. 한 가닥의 빛처럼 느껴졌다.

내가 본 희망 버스는 시대를 역행하는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횃불이었다. 2011년 부산으로 향하던 희망 버스에 함께 한 이유였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국정원은 선배들이 피를 바쳐 수 십 년 싸워서 만들어놓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짓밟았다. 이에 맞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촛불이 광화문을 밝히고 있다.

현대차와 정몽구 회장은 노동 현장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짓밟았다. 지난 10년 동안 불법 파견을 저지르고도 지금 이 시간에도 불법을 계속하고 있다. 짓밟힌 노동자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현대차 희망 버스가 시동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 철탑에서 258일 동안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것처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1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다. 그래서 침묵하고 있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어서고 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이, 현대위아 비정규직이, 삼성전자서비스, 인천공항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렇다.

고립감이 짙어질 때 한 가닥 빛으로 온 희망 버스

희망 버스가 제안되고 나서 민주노총 회의에서도 함께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곳저곳에서 전화도 계속 온다. 나도 바빠지고, 옆에 있는 병승이 형도 바쁘다. 오랜만에 병승이 형의 얼굴이 밝아 보인다.

지난 1월 26일 이후 6개월 만에 찾아오는 희망 버스다.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로 괜히 마음이 들뜬다. 앞으로 20일이나 남았지만 뭔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내 얼굴은 강렬한 태양 때문에 새카맣게 그을렀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의 환한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2평 남짓한 공간도 행복이라는 희망의 미소를 지으며 희망 버스를 만날 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며.

2013년 7월 1일 새벽, 현대자동차 철탑 농성장에서 258일차 천의봉

* 이 글은 레디앙, 참세상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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