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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가 말하는 '독일식 철도 모델', 독일에 없다"

[기고] 수서발 KTX 운영권 넘겨 경쟁 체제 도입…민영화 길 터놓나

23일 국토교통부는 철도 산업의 전망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고 몇 차례 열린 민간자문위원회의 권고를 바탕으로 독일식 모델로 철도 산업을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철도 산업에 독점 문제가 있고, 경쟁 도입이 필요하다는 민간자문위원회의 검토 의견을 수렴하여 수서발 KTX를 비롯해 신규 노선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국토부의 입장이다.

국토부는 세계 철도 산업의 현실을 모르는 국민에게 선진국형 모델을 제시해 한국 철도의 새로운 발전 전망을 여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상은 현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국토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신규 사업자 참여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신규 노선과 민간 참여에 따른 공공성 훼손 논란이 적은 기존 적자 노선부터 단계적으로 경쟁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 주장의 실제 속내는 신규 사업자 참여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수서발 KTX 같은 노선에 경쟁을 명분으로 민영화의 길을 터놓겠다는 것이다. 일단 수서발 KTX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데 성공하면 이후에는 얼마든지 철도 산업의 각 분야마다 민영화를 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런 상황에서 적자선의 경쟁 도입 운운은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서만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기존의 비판을 피해가는 안전장치 역할도 하고 있다.

한국 철도가 당면한 문제는 독점의 폐해가 아니다. 규모의 경제조차 달성하지 못한 채 선로 용량 한계로 철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형적 운영이 문제다. 그러나 이 점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국토부의 꼼수는 보도 자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수서발 KTX에 "철도공사가 참여하는 출자회사를 설립하되, 철도공사의 부당한 간섭이 없도록 회계와 경영을 독립시킨다"고 했다. 이는 철도공사에는 부담만 지우고 수익은 온전히 신설되는 회사의 몫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수서발 KTX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한국 철도의 적자 구조를 해소하는 데 일조하고 철도 네트워크의 완결적 구조를 이루겠다는 처음의 구상은 사라져버렸다.

ⓒ뉴시스

철도 민영화론자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민간 전문가들의 모임이라고 불리는 자문위원회가 참고한 철도 발전 방안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에 재앙을 선사해 온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인천공항철도, 김해 경전철, 용인 경전철 같이 시민들의 혈세를 뽑아먹는 애물단지로 둔갑한 시설들은 모두 한국교통연구원의 장밋빛 전망에서 시작됐다.

민간자문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구성 당시부터 철도 민영화를 적극 찬성해온 사람들로 자리를 채우고, 일부 인사들을 들러리로 세웠다. 회의 과정에서도 의견을 듣고 대안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국토부의 일방적 주장을 관철하는 행태가 계속되었다. 일부 위원들은 더 이상 허수아비 역할을 할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런 구태의연하고 일방적인 자문위원회가 마련한 안을 마치 철도 전문가들의 고견인 것처럼 치장하는 국토교통부의 행태는 세련된 사기극과 무엇이 다른가?

독일식 모델의 실체 : 강력한 공기업이 고속철도 운영권 확보

독일 철도가 지주회사 방식을 갖고 있다고 한국도 지주회사 체제를 만들면 독일식인가? 독일 철도의 지주회사 방식을 구현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철도 산업 전체를 총괄하는 강력한 국가 주도의 공기업이 있어야 한다. DBAG(독일국영철도공사)는 일관된 조직 체계 안에 철도 운송과 시설을 포함한 모든 기능을 통합하고 있으며, 각각의 자회사가 유기적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미 운영과 시설이 통합된 프랑스의 과거 철도 체계나 스페인, 스웨덴, 네덜란드의 철도가 독립적인 기구로 분리된 데 반해, 독일 철도는 국영 기업 내에서 기능적 역할 분담 체계를 갖고 있다. 독일식 개혁을 하려면 현재 분리되어 끊임없이 충돌과 잡음을 양산하는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국영 철도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더 중요한 점은, 독일이 자국의 가장 중요한 간선 노선과 독일 철도의 얼굴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고속철도 이체(ICE)의 운영권을 확고하게 소유·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철도의 10배에 이르는 3만5800km의 네트워크망을 갖고 있는 독일 철도는 그 규모에 맞춘 운영·관리 시스템을 갖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현실을 호도한 채 3500km에 불과한 협소한 한국 철도망에 다수의 사업자를 진출시켜 철도를 효율화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국토부의 정책은 한국 철도를 회생 불가의 수렁으로 밀어 넣을 위험성이 크다.

국토부는 이번 철도 개편 방안이 독일식이라고 주장하지만, 시설과 운영을 분리한 채 선별 입찰 제도를 통해서 민간 사업자를 진출시키는 것은 이미 실패한 영국식 철도 정책과 다를 바 없다.

국토교통부는 수서발 KTX에 민간 지분을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하는데, 이는 민간 지분을 포함할 경우 '철도 민영화'라는 비판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민간 지분 없이 철도 공사와 독립된 회사를 세우는 안을 내놓음으로써, 국토부가 그동안 '제2 철도공사'라는 이름으로 구상했다가 더 큰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판단에 유보했던 안으로 돌아간 셈이다. 어떻게든 경쟁 체제만큼은 도입하고야 말겠다는 국토교통부의 의지가 담긴 고육책이다. 100년 대계의 철도 정책을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하고 졸속으로 추진하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백번 양보해서 전 세계 어느 나라가 자국의 주요 간선 전체 노선을, 그것도 고속철도를 분할해서 나눠 먹는지 알고 싶다. 철도의 미래와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눈앞의 이권과 수익만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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